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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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지면서, 과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20년 가까이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의 재심 절차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도 않은 살인죄를 뒤집어쓴 채 청춘을 빼앗긴 한 인간의 고통 앞에 대중은 분노했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사건은 단순히 과거 부실 수사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오랜 시간 공고하게 믿어왔던 하나의 '신화'를 무너뜨리는 계기를 제공한다. 바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며 내세웠던 '어린 백성(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을 구제하겠다는 신화다.
우리는 흔히 글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도 쉽게 제 뜻을 펴고 재판에서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글이 만들어졌다고 배운다. 실제로 오늘날 형사소송법상 피의자 진술서나 조서는 모두 한글로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회적 최약자를 기준으로 시스템을 맞추면 모두가 편해질 것이라는 이른바 '유니버설 디자인'적 사고가 언어 정책에도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과연 모두가 쓰기 편한 '쉬운 언어'와 '한글 전용'이 약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는가? 화성 사건 피해자의 진술서를 들여다보면 잔인한 역설이 드러난다. 당시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 불과했던 피해자의 진술서에는 수준에 맞지 않는 세련된 문어체나 한자어 표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강압적으로 받아쓰게 한 혐의가 짙은 조서였지만, 법원과 사회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모든 언어적 표현을 한글이라는 하나의 평평한 틀로만 규격화해 놓으니,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쓴 글인지,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억지로 쓴 글인지 언어적 개성과 수준의 차이가 전혀 드러나지 않게 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획일화된 '쉬운 한글' 체계가 피해자의 무고함을 증명해 줄 '학력과 지적 수준의 단서'를 지워버려 억울한 옥살이를 방조한 셈이 되었다.
본래 세종대왕이 국민정음을 반포했을 때의 본뜻은 이러지 않았다. 당대 최만리 등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세종이 추구했던 방향은 무조건적인 문자 통일이 아니었다. 가장 어리석은 자들은 쉬운 언어를 쓰게 하되, 상위 계층은 한자를 섞어 쓰며, 학자들은 더 깊은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수준별 단계적 언어 사용'을 배려한 구조였다.
하지만 현대의 언어 정책은 지적 수준의 하향 평준화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품격 있는 어휘나 지적 담론에 필요한 중·상위 수준의 어휘와 한자 표현들이 점차 소외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과 정교한 논리를 대변할 어휘력을 잃어가고, 의사 표현의 한계에 부딪힌 이들의 언어는 욕설과 거친 표현으로 획일화되곤 한다. 글쓰기에서 각자의 지적 수준과 개성이 드러나는 '주변 언어'와 '다양한 어휘 스펙트럼'이 살아있어야만, 진술서 하나를 보더라도 그것이 본인의 자발적 의사인지 타인의 강요인지 가려낼 수 있는 법이다.
더불어, 사법 권력을 집행하는 이들의 '철학 부재' 역시 무고한 피해자를 만드는 주범이다. 공직자나 사법 관리들은 이익(利)이 아닌 의로움(義)을 쫓아야 하는 자리다. 국가로부터 안정적인 녹봉을 받는 이유는 영리 활동에 연연하지 말고 공평무사하게 법을 집행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실적주의에 눈이 멀어 사건을 적당히 빨리 처리하려는 태도, 사회적 약자 한 명쯤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오만한 발상이 지배할 때 사법 정의는 무너진다.
진정으로 억울한 백성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단순히 제도를 '보여주기식'으로 쉽게 만드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개인의 지적 수준과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길 수 있는 다층적인 언어적 토양을 회복해야 하며, 공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확고한 도덕적 철학과 책임감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600년 전 세종대왕이 꿈꾸었던, 진정으로 제 뜻을 펴고 사는 '어린 백성'들의 나라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 인공지능 제미니)
그림 : 챗지피티(출처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ZX3pZNFyBO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