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과 사라예보 폭격전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5-16 21:56:20

1990년 11월 18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최초로 다당제 총선이 열렸고 2차 선거는 11월 25일에 열렸다. 그러면 형성된 보스니아 최초의 국민의회에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이 축출되고 3개 민족을 기반으로 한 민족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게 된다. 이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선언을 하는 가운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계속 존속해 있으면서도 3개 민족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이후 보스니아에는 유고슬라비아 내에서 계속 존속해 있는 것을 세르비아계는 강력히 지지했고 크로아티아처럼 독립을 선언할 것을 원하는 보스니아인과 이를 크로아티아인들이 강력히 지지하면서 양측이 견해를 달리하게 되었고 이는 무력 충돌이 이어지면서 불행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폭격 이후,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참상, 출처 : 필자가 사라예보 "희망의 터널"에서 전시된 사진을 직접 촬영


이후 1991년 10월 24일, 세르비아인을 기반으로 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인 민주당 소속의 국회위원이 사라예보의 국민의회를 아예 나와 탈당해버렸다. 이들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세르비아계 의회로 합류하면서 1990년부터 시작된 3개 민족 연합 통치는 완전히 붕괴했다. 1992년 1월 9일에는 이 의회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계 공화국으로 바뀌게 되었고, 1992년 8월에는 스르브스카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보스니아 연방 탈퇴를 선언한다. 세르비아인과 세르비아계 스르브스카인들은 동부 보스니아의 보스니아인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시작으로 보스니아 정부군을 압도하고 영토 대부분을 점령했다. 세르비아군, 경찰, 민병대들이 도시와 마을을 공격하고 난 이후 지역에 거주하는 세르비아인의 도움을 받아 표준 행정 절차를 거쳤다. 


이와 같은 표준 행정 절차는 보스니아인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주택을 체계적으로 약탈하고 불태웠으며, 민간인은 체포당했고 일부는 구타 당하거나 살해당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남성은 여성과 떨어져서 지내게 했으며 보스니아인 남성의 대부분은 강제수용소로 보내서 학살했다. 여성은 매우 비위생적인 구금 시설에서 수감 당한 채로 잔인한 학대를 받았다. 많은 여성들은 반복적으로 강간을 당했다. 이곳 생존자는 세르비아 군인과 경찰이 구금 시설을 방문해서 한 명 이상의 여성을 골라 강간 했다고 증언했다. 1992년 4월 22일, 공화국 의회 건물 앞에서 평화 집회가 열렸으나 할리데이 호텔에서의 총격으로 와해 되었다. 이어 4월 말부터는 포위 공격의 형태로 진행되었고 이것이 3년을 끌게 됐다. 


3년이 넘는 포위전 당시 사라예보는 세르비아계로 인해 심한 피해를 입었다. 계속해서 고통받는다는 인간적인 비용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힘든다는 것은 제쳐두더라도, 도시의 여러 건축물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하수 시설, 전기, 수도, 통신 시설과 같은 인프라 시설은 심한 손상을 입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구조적으로 큰 손상을 입었고 아마도 모든 건물이 유리창이 깨진다던지 하는 작은 손상부터 큰 손상까지 모든 종류의 손상을 입었다. 그러자 시민들은 사라예보 공항과 시내 외곽을 연결하는 터널을 뚫었다. 내전 당시 이 터널을 통해 외국 구호단체로부터 생필품을 공급받으면서 버텼다. 그래서 이 터널은 희망의 터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터널은 800m 구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터널 전체가 개방되어 있지 않고 특별히 폐쇄되어 있는 구간이 대부분이다. 현재는 상징적인 부분만 개방되어 있으며 그 길이는 약 100m 정도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