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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과 의미
  • 이종철
  • 등록 2026-05-17 15:23:24

내가 오랫동안 휴먼 상태로 있었던 네이버 블로그 <바람부는 날>(https://blog.naver.com/jogel)을 다시 오픈했습니다. 마지막 포스팅을 한게 2021년 7월 경이니까 거진 19개월 만에 다시 연 것입니다. 그 당시 남들처럼 블로그를 만들어 놓고 이것 저것 끄적이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흥미도 없고, 의미도 모르겠어서 중단을 한 것입니다. 그

런데 이번에 다시 모종의 계기로 이 블로그를 다시 열고 메뉴와 글감들을 대대적으로 손을 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블로그의 효용성과 의미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페이스 북은 시계열로 짜여져서 매일 같이 새로운 글들이 올라오고 또 새 글을 써야 되지요. 그러다 보니 며칠 만 지나면 내가 무슨 글을 썼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가끔가다가 페북에서 오래 전 이야기를 들추어 주면 그때서야 생각이 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이런 현상은 통시적인(diachronic) 구조 하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구조는 시간의 진행에 따르기 때문에 역동성을 띄고 있습니다. 반면 블로그는 모든 것을 한 판에 올려 놓는 한국의 전통 밥상과 비슷합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한 메뉴들이 있고, 이 메뉴 하에 서브 메뉴를 두거나 아니면 각각의 메뉴에 글들을 올려 놓을 수가 있지요. 한번 이렇게 짜여진 공시적인 (synchronic) 구조는 시간이 흘러도 특별히 손을 보지 않는 한 그대로 남아 있고, 그래서 전체를 조망하고 각각의 위치에 따라 찾아보기도 쉽습니다. 대신 페이스 북과 같은 역동성 보다는 전체를 개관할 수 있는 통찰이나 지혜를 엿볼 수가 있지요. 전자가 서양식 사고라고 한다면, 후자는 동양식 사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이러한 분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통시적 구조 안에 공시적 구조가 들어 있을 수 있고, 그 역도 가능하지요. 이런 형태로 쓰여진 책이 유명한 M. 푸코의 <말과 사물>이지요. 영역판 이름이 The Order of Things인데 내용을 더 잘 반영한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그 책을 보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고, 논문도 한 편 쓴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아렇게 대비를 하면서 블로그 단장을 새롭게 하다 보니 그 의미가 눈에 들어옵니다. 과거에는 전혀 그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글만 산만하게 여기 저기에 배치를 해놓기만 했지요. 마치 공부나 논문을 쓴다고 책상 위에 잔뜩 이것 저것 널어 놓은 것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산만한 메뉴들을 재분류하고 적절히 그에 맞는 위치에 배열을 해 놓으니까 한결 보기가 좋습니다. 이렇게 한 판 모아두기 형태는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모든 글들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고 배치하는데 아주 유용하다는 느낌입니다. 내가 글만 잔뜩 써 놓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고 보면 공부도 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우리 학생들 대부분은 어렸을 적부터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귀에 박힐 정도로 들지요. 부모님들로부터 듣고, 학교에 가서는 선생님들로부터 수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 사회는 공부에 한이 맺혔는지 '공부하라'는 이야기가 차고도 넘침니다. 그래서 유치원에 다닐 때 부터 시작해서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과외와 학원까지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우리처럼 입시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학생들이 이런 타율적 요구를 거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지요. 거부하는 순간 문제아로 찍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왜 내가 이런 공부를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하기 힘들 뿐 아니라 그것을 한다고 해도 해답을 구하기가 힘들지요. 사실상 이것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타율적 요구와 타자의 욕망에 따라 열심히 살았을 뿐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거나 답을 구하려 하지를 못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정해진 궤도에 균열이 생기고 정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작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왜 그러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요. 인생은 어쩌면 이런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노력과 과정에서 비로소 의미를 깨치게 되고, 자신이 열심히 했던 것의 모습들이 보다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경험을 전혀 하지 못하게 무덤까지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이번에 <이종철의 구라철학>을 하려 하면서 <바람부는 날>이라는 블로그에도 손이 갔고, 그것들의 의미가 보다 선명하게 들어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페이스 북이나 유튜브, 네이버의 블로그와 티스토리 같은 것들이 하나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적당한 예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지요. 하나로 꿰어야지만 보배라는 것이 또렷하게 인식이 된다는 의미겠지요.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 라는 말하고서도 연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블로그 손을 보면서 이런 일들의 의미를 알게 되고, 앞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방식으로 실행해야 할 지가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옛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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