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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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우리나라 조선보다 먼저 나라를 개방했다. 아유타야 왕조부터 외국과의 교류를 활발히 했고 외국인의 경우 아유타야에 거주할 시 국왕의 친위군으로 병역에 임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아유타야에서는 외국인의 정계진출이 상당히 활발한 편이었다. 개방정책은 계속되어 17세기 중반 나라이 왕 때는 그리스계 영국인 콘스턴틴 풀콘(Constantine Phaulkon; 1647~1688)이 고위직에 오르고, 프랑스에 친선사절을 보냈으며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도 친하게 지냈다. 당시 프랑스 및 서양 세력과 평화적으로 대등하게 교역한 나라는 태국이 유일했다. 차크리 왕조 라마 5세 쭐랄롱꼰 대왕 시대에는 재임 기간 동안 태국의 현대화와 개혁정책을 패기 있기 몰아붙였다. 1905년에 노예제를 폐지하고, 교통망과 법체계를 선진화하는 등 빠른 속도로 근대화를 추진했다.

태국의 상징 "대나무",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러한 개혁적 성격은 그가 서구식 교육을 완전하게 이수한 최초의 태국 국왕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당시에 우리는 일본의 침략이 가시화되고 을사조약 이루어져 나라의 주요 중요한 부분들이 일본에게 내주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이는 철저히 비교가 된다. 라마 5세의 개혁적 추진이 쏟아지며 제도적으로는 추밀원과 내각평의회, 재무부를 신설했고 국가 제도를 비롯한 문화에 이르기까지 서구적인 개혁을 선호하면서 왕자들에게는 정부의 요직을 맡기는 동시에 유럽 파견을 통해 선진 제도와 문화를 도입했다. 전임 왕이었던 라마 4세는 라마 3세가 전쟁을 선호하지 않았던 것처럼, 외세의 침입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쪽을 택했다. 당시 위협적인 두 국가는 프랑스와 영국이었는데, 이 둘 사이에서 대나무 외교를 펼쳤다. 과거 루이 14세부터 이어져 온 프랑스와의 관계로 인해 친숙한 국가라고 생각했던 프랑스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베트남을 합병하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만들자 태국의 입장에서 프랑스는 가장 위협적인 국가가 되었다.
이런 프랑스로부터의 위협을 막기 위해 미얀마를 영국령 인도로 편입하는 작업을 하고 있던 영국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아 1896년에 영국-프랑스 양국 간의 조약에 따라 독립을 지키게 된다. 이러한 라마 5세의 현명한 대나무 외교가 태국을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지 않는 국가로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에 태국은 일본과 동등한 입장에 놓일 정도로 발전한 국가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태국의 외교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다시금 "대나무 외교"를 재현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적극적으로 친밀관계를 맺어 많은 경제원조를 받았지만 공산국가들과도 돈독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게다가 동남아시아 지역 내의 정치적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제 아무리 미국이나 소련도 이와 같은 태국을 감히 건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철저히 실리외교를 추구한 덕택에 미국과 중국 입장에서도, "태국은 원래부터 그런 국가" 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관계도 매우 좋다. 미국도 태국에 압력을 가했지만 태국은 이를 듣지 않고 러시아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러시아는 유럽을 가기 어렵게 되니, 따뜻한 동남아시아로 발길을 돌렸고 러시아인 관광객들이 태국과 캄보디아, 베트남에 대거 몰렸다. 많은 수의 러시아인들이 원래부터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했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를 제재하자 러시아 관광객들의 상당수가 동남아시아로 몰린 것이다. 때 아닌 러시아인들의 급격한 "관광 러쉬"에 동남아시아, 특히 태국과 베트남의 관광업은 연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이, 태국에게 무기와 자금 제공 등을 해달라고 하면서 러시아인들의 입국을 막아 달라고 압박했어도 태국은 이런 우크라이나 정부의 말을 듣지 않고 꾸준히 러시아 관광객을 받아들이며 대나무 외교 방식을 유지했다. 서구와 미국의 마수가 동남아시아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 요구와 더불어 무기와 자금 지원 등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외교적으로 동남아시아 일대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더 가깝지 유럽이나 미국은 매우 멀다. 이러한 모습들로 볼 때 서구나 미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 특히 태국이나 베트남에 대한 회유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도 형식상 동맹체제이기는 하지만 태국을 더는 진정한 동맹으로 생각하지 않고 친중 성향의 중립국으로 간주하고 있는 편이다. 단, 코브라 연합훈련과 같은 지속적인 군사교류를 통해 유사시에 공조할 가능성 정도는 열어두었지만 러시아나 중국 편을 들어 딱히 견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 모습들로 볼 때 우리 한국도 태국의 "대나무 외교" 같은 중립외교 및 실리외교가 가능할까? 지금 상태로 보면 불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