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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의 철학에세이(2)
  • 金耀燮
  • 등록 2026-05-18 08:18:26
  • 수정 2026-05-18 08:20:56
  • 기독교 배경에서 보는 성(性)

그래서 성인들이 결혼할 때는 본래의 외모가 알 수 없도록 부정확한 인공의 외모를 가지고 받아들이는 추세, 게다가 그 점은 부족한 결점을 보완하고 감추려는 점에서 좋게 이해한다. 성경험도 그렇지만 외모조차 기본적인 숨겨짐으로 작용한다.

두번째 가설, 첫번째가 매력의 욕구를 가짓수로 나눠 구분했다면, 두번째는 심리적 영향을 두고 한다.

앞서 말한 매력의 욕구의 기본조건(3요소)+자신의 性器로 나온 성욕구가 한마디로 말하는 성욕의 원인이고, 그로인해 심적 문제가 일어난다. 일어날 땐 오염된 마음으로 심리적 상황이 발생한다. 한가지는 인터넷 안의 성인 정보의 영향, 그리고 성인 정보라고 정의할 수 없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음란한 것들(이 표현조차 어떤 시각에선 안 맞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에서도 좌절을 느낄 때까지 심리적으로 몰아가고 감정의 심한 부분을 보이는 것은 생각하기에 음란하게 몰고 가는 구성으로 인해 음란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음란하다고 표현하는 기준은 드라마의 절대적인 부분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부분을 잡는것이 더 정확하므로

그 기준을 처음으로 잡는다면 처음엔 단순한 나체의 모습도 그 나체가 계속되고 자위행위(결론은 자위로 나기 때문)가 이어지면 즉, 나체는 곧 성욕 , 성욕해결은 곧 자위행위가 된다. 성욕해결을 자위로 하는 것은 후천적이라고 보기엔 생물학적 호르몬의 영향이 크므로 무시할 수 있다.(후천적인게 아니라면 선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체는 원래 아무 느낌도 안 나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러나 처음 호기심으로 인한, 성욕을 느끼고 싶은 상황에서 반복되면 나체는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그냥 성욕이 되는 것이다. 그 밖에 너무 다수가 이용하고, 나 혼자의 공간으로 비밀스럽게 하고 싶고 볼 수 없었던 그 매력, 그 느낌, 그 행위를 겪고 싶은 것. 그게 성경에 나온 잠언의 음녀에 빠지지 말라는 게 아닐까? 모든 쾌락, 쾌락의 나눔에도 이러한 요소가 있다.

그리고 합리화일 수도 있는 것이 어쩌면 최근에 나온 감정을 두고 자신 스스로 '이것이 옳다.'고 몰입하는 것이다. 지금 감정을 일으킬 때 '이것이 옳을까?'란 의문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앞서 말한 반복되면 생기는 나쁜 좋지 않은 현상인 것이다.


- 표현을 달리 해보았다. 기독교는 그것을 죄라고 규정지어서 죄로 단죄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며 성적인 방종을 막는 훌륭한 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기분, 어쩌면 양심이라는 것이 건드리는 이것이 옳을까란 물음, 죄책감이나 배덕감을 말한다. 배덕감이 심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나? 더욱 흥분되고 주체할 수 없는 길로 빠진다. 배덕감은 지루한 일상을 깨뜨리는 좋은 성격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곧 있으면 초파일인데, 석가탄신일인데 로봇스님이 이슈가 되고 있다. 이 로봇스님을 볼 때 기독교인은 '그것이 옳은 일일까' 판단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것은 틀에 박힌게 아니다. 오히려 틀을 깨려는 시도다. 질문과 특히 시비를 가리려고 하는 진지한 자세는 틀을 벗어나는 것이다.

다수에게 고착된 것을 다시 생각하는 것만큼 고정관념을 깨는 좋은 시도는 없다. 성경이 음행을 말하지만 그것은 아직 잘 정해지지 않았다. 아니, 영원히 정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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