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철학과 비판> 독후감
  • 이종철 기자
  • 등록 2026-05-19 06:37:51
  • 수정 2026-05-19 07:29:13

고등학교 친구 김창인의 솔직하고도 거침이 없는 독후감입니다. 가방끈 길이 하고 상관없이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노력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절대로 전문가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새로 개설한 사이트에 실을 글을 정리하다가 발견해서 이곳에 올립니다.


------------------

철학과 비판 - 이종철 - (2021,6.15)

 

고등학교 동기 이종철 교수의 「철학과 비판」 부제 ‘에세이 철학의 부활을 위해’ 읽었다. 제목부터 쉽게 재미있게 읽어가는 책이 아니란 것을 느끼고 목차도 뭔가 중량감이 있어 완행 속도로 가야함을 엿보게 한다. 난 저자한데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그어가며 읽겠노라고 약속을 했고 8개 낯선 도시를 밑줄을 그어가며 여행을 했다. 익숙한 여행지도 있고 낯설게 느껴지는 여행지도 있었다. 친숙한 여행지에서는 방문에 대한 소회와 나름의 밑줄이 있었으나 처음 본 듯한 여행지에서는 다른 여행지를 건너기 위한 다리처럼 건넜다. 이 두 곳의 차이를 느껴가면서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경비를 정산하듯이 밑줄 여행을 떠나보자.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철학”에서 실천철학은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세상에 뛰어들어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싸워야 한다. 난 이곳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세상을 바꾼 두 사람을 생각했다. 군사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음성 불로 소득의 원천인 지하경제를 뿌리 뽑아 공정한 금융거래인 금융실명제를 이룬 작고하신 김영삼 대통령과 가진자와 못 가진자. 자본가는 갈수록 더욱 더 파이가 커지고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초라해 가는 세상을 노동자들이 자본과 권력에 맞서 노동자의 단결을 외쳤던 칼 마르크스. 그가 주장하고 꿈꾸었던 공동체들은 오래전에 무너지고 이데올로기에 따라 분류됐던 지도의 색깔 표시도 퇴색 된지 오래된 것이다. 예전 보름동안 쿠바 여행하면서 체 게바라가 이루고자 혁명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 있다. 성공한 혁명이냐, 실패한 혁명이나, 혁명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길을 확 바꾸고 좋은 방향으로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꿔야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관광산업이 국가의 주된 수입원이며 수십 년간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제재를 받고 있는 쿠바는 교통망 통신망 등 기간산업 낙후되었고 일부 상점에 진열된 공산품과 생필품 등은 빈자리가 많았지만 내가 만나고 부딪친 쿠바인들은 물질에 대한 빈곤함에 비해 훨씬 더 여유롭고 낙천적으로 생활함을 느꼈다. 게바라가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꿈꾸었던 사회는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 했다는 것을 보았다.

 

“和而不同” 일찍이 공자님께서 군자는 ㄷ 화합을 하되 붙어 다니지 않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저자의 말처럼 달라도 어울려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할 덕목이다. 동양에 화이부동 사상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똘레랑스가 있다. 난 오래전에 퇴직하고 첫 배낭여행을 스페인 산티야고 성지순례와 서유럽 일부 국가를 3개월 여행한 경험이 있다. 그때 빠리를 비롯한 몇 군데 도시에 머물면서 프랑스 사회의 똘레랑스 맛보았다. 이 말을 처음 접한 것은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에서 였다. 그는 20년 동안 낯선 동네에서 망명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와 다른 남을 그대로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똘레랑스 때문 가능했다고 한다. 다양성과 다름을 존중하여 신앙, 사상, 출생지, 피부색 등 다른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름으로 인해 차별, 억압, 배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

 

“玩索而有得” 가지고 놀다 보면 저절로 얻는 바가 있다는 中庸 말씀, -知之者보다는 好之者가 좋고 好之者보다는 樂之者 최고라는 論語 말씀-. 과거의 제도와 풍습, 관행과 불법에 눌리지 않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망각한 아이의 정신을 가지라는 짜라투스트라 말씀, 저자는 이렇게 놀다보면 늙는 것도 잊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한다. 1920년생인 김형석 명예교수님의 「백세일기」 산문집을 보면 “나이가 같아도 늙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신체 나이는 어쩔 수 없어도 정신의 젊음을 유지한다면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을 해본다” 정신의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Latte is horse로 시작되는 지나간 과거는 묻어버리고 언제 몰지 모를 미래를 위해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을 지양하고 하루하루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 아닐까?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사상은 우리의 현실세계는 결국 무의함이 반복되고 종결되지 않는 허무의 세계이다. 천 년 뒤에도 천 년 후에도 무엇을 할지 모를 반복될 것이라고, 그러니 과거와 미래의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조르바처럼 살아가는 것도 지금 나이에 괜찮다는 생각이다.

 

“글쓰기와 도구” 이 여행지에서 지금과 여기를 벗어나 반세기 전 추억 여행을 떠나게 한다. 펜글씨. 타자. 속기. 부기. 주산, EDPS 등 일반 인문교와 달리 상업학교 특정상 배우는 과목이다. 아마 이런 교과목들의 일부는 세월의 뒤 언저리에서 사라져 갔을 것이라 생각이다. 저자의 따귀를 때리고 발로 차기까지 했다는 이모 국어 선생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선생님인지 모르겠다. 나이는 30대 중후반이며 한글 사용을 적극 홍보하고 우리말 화 외래어는 할 수 없지만 국어로 정착되지 않은 외국어는 사용하지 말고 한글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한글홍보대사 라고 할까? 고등학교 일-이학년 때 이모 선생님의 권유인지 동아리 행사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글날 공휴일 아침에 세종대왕 동상 주변 청소를 하고 동상 앞에서 행대로 줄 맞쳐 사진 찍었던 기억이 난다. 상업학교에서 조금은 아웃사이더인 진학반 친구들은 한 번 정해진 반과 번호로 2년간 그대로 명찰을 달고 졸업을 하였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도 내 앞뒤 친구들 번호는 기억한다. 내가 13번, 앞 번호 길병권. 뒤 번호 허용석, 길병권 이름에 아득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아마 2학년 초인가 반친구들 여럿이 학교 앞 평화시장 중국집 밥 먹으로 가서 돈이 모자라 외상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중국집 주인이 길병권의 이름을 중국식 순서로 권병길로 적은 것이다. 학교 철봉대 뒤 담벼락 옆에 있던 햄버거집, 주인아주머니 남편이 액션배우이고 간혹 가게에 딸과 함께 나와 있어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밖에도 생각나는 것은 학교 구내이발소, 작은 운동장과 학교 주변의 소음과 동대문 운동장 등 이런저런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글쓰기와 인문학”에서 저자는 ‘깊어가는 고령화시대에 자기를 배려하고, 영혼을 배려하는 새로운 방식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하고 글쓰기와 인문학을 권한다. 75년도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나이 주류는 병신년생이다. 조금 늦은 양띠도 있고 빠른 닭띠도 있다. 이 세대는 사회의 격변기에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평할 수 있다. 부마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을 보고 느끼고 산업전사의 자부심을 가지고 수출 산업현장 최일선을 담당했고, 민주화를 위한 시민항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서정주 시인의 <국화옆에서>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시어처럼 거울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을 반추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반추된 모습을 베틀에 앉아 씨실과 날실로 베를 짜면서 노후를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한 폭의 베를 짜려면 씨실과 날실로 끊어지지 않고 충분히 공급이 되어야 하듯이 책을 읽든지 공부를 하든지 취미활동 등을 가지고 인연의 끈들을 많이 확보할수록 베를 촘촘하게 짤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의 즐거움” 이교수와 난 오랜 시간을 함께 있지 않아 기억이 뚜께가 뚜겁지가 않다. 그래서 그가 살아온 발자취를 모른다. 그러나 “글쓰기의 즐거움‘을 읽고서 그의 생애 일면목 궤적을 볼 수 있었다. ’살면서 부당한 대우 -특히 장애로 인해-를 너무 받아서 그런지‘ 문장에서 한 인물이 떠오른다. 우리보다 조금 먼저 용띠로 태어났지만 생은 너무나 일직 마감한 장영희 교수다. 그 역시 우리사회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했던 삶이 녹녹치 않았음을 이야기 하면서 고통이 은총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수필집 <내 생애 단 한 번> 표지를 보면 ’남보다 천천히 걷기 때문에 세상을 더욱더 가볍게 보고 느끼는 여자‘라고 쓰여 있다. 집 앞 태화강변 십리길 앞에 펼쳐진 솔마루길 능선을 차창을 통해서, 자전거 타면서, 달리면서, 걸으면서 보았다. 솔마루 능선이 부드럽고 완만하게 보이고 산기슭에 놓여있는 정자의 아름다움과 곡선과 곡선사이에 고즈넉이 숨어있는 집들이 보이는 것은 걸을 때 보였다. 이처럼 속도의 완만함으로 사물을 보는 시야의 폭이 넓고 깊어 졌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저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으면서 소개된 책들을 읽었고 특히 ’내 영혼에 촉촉하게 가량비 오는 11월이 오면 나는 빨리 바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라고 <백경>의 시작부분을 소개하여 도서관에서 빌려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 나중에는 너무 무거워 힘들었다. 6개월간 중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 파나고니아 동선을 다시 함 그려보고파 다시 책을 빌려와 포경선 피궤드호가 모비 딕을 쫓는 향로 여정 중 파타고니아와 관련된 부분만 읽고 지도에 표시한 일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보이니까 즐겁고 즐거우니 빠지게 되고 빠지다 보니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지내는 일이 종종 있다.

 

“동아시아 사상” 저자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동아시아 역사나 사상에 더 많은 관심이 간다’. 라고 했다. 그리스 신화를 읽는 동양인과 서양인들이 받아들이는 감흥이 다르듯 역시 삼국지를 읽는 동,서양인들의 느낌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동,서양인들의 사상의 DNA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에 퇴계 이황선생의 성학십도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듣기 들었는데 한문 실력과 배경이 되는 동양철학 지식이 비천해 시간과 경비만 날려버렸다. 그것을 계기로 한문 공부는 명심보감강해를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함 써봤다. 계속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야 기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듯이 한자도 지속적으로 쓰고 읽어야 되는데 손을 놓아버리니 산행을 하다가 묘지의 비석을 봐도 긴가민가하고 고개가 갸우뚱 거린다. 죽간의 가죽 끈이 세 번이니 끊어지도록 공자가 읽었다는 주역을 저자는 실업자 생활을 할 때 읽으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현직에 있을 때 나보다 8살 연상인 공장장이 있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이고 집에 불당을 차려 놓고 약간의 신끼도 있는 분이다. 회사에서 안전기원제 혹은 행사를 할 때 날짜를 잡기도 하였고, 간혹 四柱單子 택일과 四柱八字 풀이해 달라고 전화를 받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술 한 잔 사라고 농담을 하고 했다, 옅에서 보니 흥미가 생겨 도서관에서 周易 책을 빌려와 공부를 하였다. 주역 글자 그대로 주나라 역사 경험과 문화사상이 기본 틀이면서 점을 보는 책이다,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고 팔괘는 세 개의 음양을 나타내는 효가 있고 팔괘가 64괘 대성괘에 정보가 담겨 있다. 몇 달을 공부하다 보니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집에서 회사를 출퇴근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강변길과 호숫길을 통해서 또 하나는 반대길 물과 동 떨어진 길이다. 시간과 거리는 비슷하다. 어느 날부터 괘에서 알려준 정보에 따라 가게 되고 업무상 일 보고 가는 날짜도 택일을 하는 요상한 버릇이 생겨 선무당 사람 잡는다 싶어 책을 덮었다. 우리가 앞날 일어날 일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본인의 의지와 지혜에 의하여 해야 하는데 점에 의하여 결정 한다는 것은 조금은 그렇다.

 

“신학은 철학보다는 역사에 가깝다” 저자는 ‘신학은 철학보다는 구체적인 역사의 현장 속에서 신을 만나야 된다’ 고 말한다. 요즘 붙여 있지 말고 떨어져 살아야 하는 답답함 코로나 시대에 위안을 주는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로 시작하는 <수선화> 시를 쓴 정호승 시인은 천주교에 입교하게 된 까닭을 그의 수필집에서 읽어본 기억이 있다. 샤룰르 달레 <한국 천주교회사> 공부하다가 가톨릭에 입교했다고, 12년 전 2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사 강의를 한 달에 한 번씩 들었다. 상 ,중, 하 3권으로 되어 있는 책으로 부피가 있는 책이다. 상.중 2권으 그의 생전에 출판되었으나 하권은 사후 그의 동료에 출간되었다, 우리말 번역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부 경향잡지에 연재되다가 80년대에 완역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사는 서양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소개했고, 당시 조선 사회를 움직이는 주된 정치세력과 그것으로 말미암은 사회상, 특히 양반 중심의 사회이며 양반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국가는 부패하고 가난해졌으며 상업이나 과학은 거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여 사회는 진보하지 못하고 반미개의 상태이며 이로 인하여 백성들에 반란의 요소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기운이 싹트고 있다고 했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순교사중심이다. 조선에 생긴 천주교 집단은 세계 교회사에서 그러한 예를 찾아볼 수 없고, 한국인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천주교로 개종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 개종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과정을 거쳤는가를 그중에서 일부는 배교하였고, 배교자에서 다시 순교하는 과정을 거친 순교자가 많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배교자에서 순교자로 바뀌는 역사의 중심은 지식인과 지도자에 움직여졌다기보다는 일반 백성 힘없고 고통 받는 민중에 의하여 실질적으로 움직여졌다.

조선인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수용된 천주교는 조상숭배를 우상숭배라 여기고 지배 종교인 유교와 대립하여 이 교리가 국민신앙의 밑뿌리를 흔들어 났다. 이것을 시작으로 한 박해는 유교와 천주교의 종교 대립 문제를 떠나 정치적인 사건으로 확산하였다. 정조 사후 노론과 벽파가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남인에 대한 정치적 원한을 풀 수 있었다. 당파간의 철저한 정치적 원한과 당쟁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여 온 산야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1784년 가을 수포교 근처 이벽의 집에서 최초의 천주교 신자 이승훈의 주례로 정약전, 정약용, 권일신, 이벽 등이 첫 번째 세례식을 베풀었다. 이해가 한국교회의 창설년이고 200년이 지난 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르 2세에 의해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를 비롯한 103위 성인 품의를 받았다. 순교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믿음을 이웃에게 전교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역사의 기록물에서 시인은 신을 만나 볼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해본다.

 

“나는 왜 무신론자인가” 저자는 ‘종교가 이런 비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고했다. 카톡애 있는 24명의 영우회 친구들 중 천주교 신자는 안대표, 성당에서 아들 결혼식 한 것을 봐 유동선, 피정 이야기를 한 박병조, 홍민화, 나 확인된 신자만 5명이다. 불교 개신교 신자를 합치면 상당한 숫자가 되리라고 생각을 한다. 이렇게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신앙인들이 많은데도 사회는 갈수록 양극화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예수는 산상수훈에서 제자와 추종자들을 항아여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빛이란 어둠을 밝히고 타인에게 본보기가 되는 존재를 뜻하고, 소금은 부패하지 않게 하고 간을 조절하듯 타인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라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사이 만남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본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빛과 소금의 존재가 아니고 빚과 수금의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갖지 못한자는 가진자에게 빚을 지게되고 가진자는 빚진자에게 수금을 하는 사회,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빚진자와 수금하는자. 그리고 종교상 교리는 보편적인 평등을 원한다. 하지만 갑과 을의 불평등 상하관계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과 신앙을 가진 이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간혹 가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는 피켓을 들고 선교하는 사람들과 차에다 확성기를 설치하여 경건하게 들려야 할 찬송가를 소음공해로 유발하는 차량들을 본 일이 있다. 볼 때마다 저들의 믿음의 확신, 진리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 선교의 사명을 생명처럼 여기는 용기 등 한편 이해를 하지만 광신에 대한 생각도 떨칠 수 없다. 신을 너무나 사랑하여 신의 이름으로 벌어진 역사적 결과물인 십자군전쟁, 마녀사냥, 종교재판 등 광신의 에피소드가 너무나 많다. 옴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진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광신이 되어 나중에는 잿더미만 남게 된다. 물론 열정 없이 위대한 일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에서 동쪽 인도까지 점령한 알렉산드로스, 반대로 동쪽에서 서쪽 헝가리까지 속도전으로 몰아 부친 칭키스칸, 나폴레옹과 현대의 마오쩌뚱, 호치민 등 정복자 혁명가들은 하나같이 열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열정을 이끌어 냈기에 위대한 인물이 되었지만, 죽자 살자 열정만 가지고 덤비는 사람들은 광신이라는 병을 낳으리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1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