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로 개설한 <에세이철학회> 흥보를 위해 오랜 친구들에게 소개 글과 함께 링크를 카톡으로 보내면 보통 세 부류의 반응이 있다. 하나는 나의 일을 반겨서 관심을 보이는 경우이다. 사실 이런 반응을 보면 진심 반갑고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부류는 간단한 인사가 와서 답변하면 그냥 묵살해 버리는 경우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텐데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다면 애초부터 반응하지 않아도 되지 않은가? 세번째 부류는 그냥 묵살하는 것이다. 사실 하루 이틀 만난 사이도 아닌 사람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최소한 궁금하거나 관심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냥 묵살해 버리는 심정은 무엇일까?
아마도 바뻐서 그럴 수도 있다. 한 참 나중에야 연락을 주는 사람도 있다.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다. 두번째가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부류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누가 자기보다 잘 나가는 것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경우이다. 쉽게 알 수는 없지만 인간들 마음 깊숙한 곳에 본능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시기심이고 질투심이라 할 수 있다. 나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행동 거지를 잘 보여주는 한국 속담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여기서 말하는 사촌을 꼭 혈연적 의미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말하자면 지연이나 학연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세가지 연(緣)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필수적이다. 사실 이런 연줄은 거의 우연적인 것인데 한국인들에게는 필연적 관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연줄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더욱 배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더 상처를 받을 수가 있다. 인간에게는 우애나 우정, 사랑 등의 긍정적 감정이 있는 반면 정반대로 시기와 질투, 증오와 같은 감정도 있다. 더욱이 상대가 비교와 경쟁 관계가 있다고 하면 긍정적 감정 보다는 부정적 감정이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경쟁이 심할 수록 부정적 감정도 비례해서 증가할 수 있다. 단순히 배갈 아픈 경우를 넘어서 상대의 앞날을 훼방하는 경우도 있고, 무력화하는 행동도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더 가까울 수록 위험한 존재인 것이다.
한국 속담을 예로 들었지만 이런 감정은 한국인들에게만 특유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독일어 Schadenfreude는 사촌이 잘 되는 것을 못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고통을 은근히 즐기고 기뻐하는 경우이다.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되고, 나의 불행이 곧 타인의 행복이 되는 관계라면 정상적이 아닐 수도 잇다. 그런데 이런 감정과 정서가 의외로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도덕적 비난 때문에 겉으로 표출되지 않을 뿐이다. "마누라가 죽으면 뒷간에서 웃는다." 오랫동안 살을 섞고 지낸 마누라가 미울 수도 있다. 하지만 대놓고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남들이 보지 않는 데서 웃는다는 의미다. 옛 서양 속담에는 극단적으로 이런 말도 있다. "A dead wife is the best goods in a man's house." (죽은 아내는 남자의 집안에서 가장 좋은 물건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지 몰라도 그게 바로 인간이다. 이런 인간의 양면성을 외면한 채 도덕이니 윤리니 떠든다면 공허할 뿐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 극작가이자 날카로운 독설로 유명했던 고어 비달(Gore Vidal)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친구가 성공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는다(Whenever a friend succeeds, a little something in me dies).".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직설적이라면 고어의 말은 똑 같은 현실을 아주 위트 있게 표현해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인간들은 왜 그러냐? <에세이철학회>가 이제 막 돛대를 올리려는 데 힘 좀 되어줄 수 없나? 인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