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이탈리아의 정치인 마키아벨리(1469-1527)는 근대 정치학의 지평을 연 정치 철학자로 인정되고 있다. 그가 쓴 『군주론』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의 다양한 언어로 번역이 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오늘날에는 리더십과 자기 개발서의 차원에서 기업의 경영자들이나 새로 인생을 개척하는 젊은이들도 많이 읽고 있다. 『군주론』은 근대 사상 가인 데카르트나 홉스보다 거진 100년이나 앞선 상태에서 근대의 핵심 사상을 열어주었다.
마키아벨리는 개인의 자발성이나 역량(virtus)보다는 운명(fortuna)에 훨씬 의존하는 고대의 인간관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한 바 있다. 당시 서양인들도 동양인들의 사주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미래를 태어난 별자리와 같은 운명으로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리스의 신탁(oracle)은 오이디푸스의 경우에서 보듯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취한다는 신탁을 피하기 위해 테베로 보내졌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 돌아와 신탁의 예언을 실현한 것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런 숙명론에 반기를 든다. 그렇다고 그가 운명과 환경의 힘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한 개인의 운명과 그의 역량이 그의 미래를 반반으로 결정을 한다고 말한다. 매년 여름날 홍수가 심하게 날 경우 이런 홍수에 대비를 한 쪽과 그렇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맞는 쪽의 피해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홍수가 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Fortuna)이지만 그것에 대비해서 피해를 줄이는 것은 인간의 역량(Virtus)이다. 운명의 여신은 자신의 힘을 키우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도전적 자세를 갖춘 젊은이를 좋아한다고 그는 적었다. 이런 의미에서 마키아벨리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근대적 인간상, 주체상에 어울리는 인간관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사실 근대인은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탁이나 신(God)의 존재, 사회 역사적인 배경과 환경적인 영향 등과 맞서 가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새로운 세계의 주인이라 할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우가 항해 중에 표류를 하다가 무인도에 정착했을 때, 그의 생존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영국에서 믿던 종교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영국 사회의 전통이나 습관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 무인도에서 생존하기 위해 오로지 자신의 머리로 지혜를 짜내 생존의 설계도를 만들었고, 손과 발을 이용해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막막했던 무인도라는 환경을 점차로 자신에게 익숙한 삶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제 무인도의 주인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로빈슨 크루소우다. 마찬가지로 자의식의 주체인 근대인은 자신의 머리와 손발을 가지고 종교 개혁을 하고, 민주주의 혁명과 계몽주의를 통해 중세 봉건 사회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를 통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하는 등 새로운 사회를 개척해왔다. 근대의 실험은 더 이상 운명에 안주하지 않는 근대인들 자신의 역량의 실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 마당에 갑자기 '논두렁의 정기' 이야기를 하는가? '논두렁의 정기'는 서양인들의 '별자리'나 중국인들의 '사주'에 버금가는 한국인들의 운명관인가? 내가 직접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번 물어보았다. 성공을 하는 데 운(運)과 기(技)가 각각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 선배가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자기 경험으로는 운이 90%고 노력은 10% 정도인데 그마저도 잘 쳐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도 운이고, 건강한 몸에다 좋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운이고, 고등 교육을 받은 부모의 높은 교육열 덕택에 대학을 졸업한 것도 운이고, 좋은 직장을 잡는 것도 운이라는 것이다. 그 선배는 거의 생물학적인 유전자의 영향과 환경의 절대적 영향을 당연시하고 그 모든 것들이 우연적인 운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닌가라고 주장한다. 반면 열심히 노력을 했어도 그 노력이 대가를 얻는 것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어요."라는 자조적 발언까지 이어진다. 개인적인 노력을 거의 무시하는 듯한 결론이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를 예외로 친다 해도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은 너무도 당연시되고 있다. 이쯤 되면 고대인들처럼 사주팔자와 운명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크게 성공을 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능력을 갖추고 열심히 일을 한 탓에 성공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고서도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의 불운한 처지나 주변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잘되면 제 탓이고, 못되면 조상탓"이라는 말이 그렇다. 하지만 직접 자신이 사업을 벌이거나 큰일을 기획할 때는 혼자 힘만으로는 벅찰 수가 있다. 이럴 때는 주변의 조력이나 협력이 절실한 경우가 많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은 『논어』 「이인편」에 나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적용이 될 것이다. 평소 덕을 쌓아 이웃이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그들이 강력한 조력자이자 협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논두렁의 정기'를 말할 수 지 않을까? '논두렁의 정기'를 받은 사람은 자기 사업에 타인들의 도움과 힘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의 '논두렁의 정기'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운명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평소 쌓아온 인덕에 가깝다. 때문에 이것을 순전히 우연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다. 3주 전 평소 생각한 '에세이철학'에 관한 내용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에세이철학회'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생각한다는 것과 그것을 현실화 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나는 관념적으로(ideally) 생각을 할 수 있어도 그것을 실현하는 데는 기술적인(technological) 수단이 있어야 한다. 과거에도 약간은 차원이 다른 일을 시도했을 때 이 부분에 대한 전문적 식견이 없어서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세이철학'의 이념을 같이 하는 분 중에 20년 경력의 전문 웹사이터가 함께 했다. 그분의 도움으로 단 3주 만에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웹사이트를 만든 것이다. 2월 말까지는 계속적으로 테스트를 해야 하니까 아직은 완성된 사이트가 아닌데도, 보는 사람들마다 '프로의 냄새가 난다'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한 마디로 내가 귀인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에는 과거 <노바 토포스>의 팀들이 옛 인연을 잊지 않고 참여해서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도움을 주는 분들이 한 둘이 아니다. 내가 늘 글을 쓰면 여러 단톡방으로 글을 올리는 데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있는 친구들의 무언의 도움도 적지 않다. 페북에서도 관심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아직 그분들이 선뜻 발을 들여놓고 있지는 않지만, 때가 되면 언제든지 우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대통령이 된 전두환 씨가 "대통령이 되려면 논두렁의 정기라도 타야 한다"라고 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무너져 가는 텍스트 생태계를 되살리고 인문과 사상으로 불투명한 미래를 열어가고자 하는 일이다. 우리의 이 일에도 보이지 않는 '논두렁의 정기'의 큰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 자신들도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논두렁의 정기'가 함께 한다면 호랑이가 날개를 다는 격이 될 수 있다. 아주 크게 비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