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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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문주란의 음성을 저음 혹은 허스키라고 한다. 여자의 목소리라면 우선 높고 맑은 소리가 연상되며 그것이 또한 여성 노래의 주류라고 볼 수 있다.
낮고 허스키한, 통상의 여성답지 않은 목소리로 하는 노래는 주로 순종적인 여성상을 거부하는 페미니즘과 현실을 맑고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저항주의적 성격을 띤 분야에서 통용된다. 민중저항가요, 언더그라운드 하드락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문주란의 노래는 전혀 그런 쪽과는 무관하다. 단지 가장 정통적인 가요로서 그 청취계층은 어떠한 특정한 사회의식도 가지지 않은 이 사회의 소시민들이다.
문주란 노래의 청취계층을 굳이 분류하자면 현실과의 갈등을 남에게 돌리지 못하는 자들의 노래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인 목적의식을 갖거나 현실부정을 주장하는 노래의 부르고 듣는 자들은 혹 나중에 무언가 이 사회의 현실이 바뀌어서 자신들의 현재의 '암울한'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책임을 지우고 탓할 수 있는 대상을 갖고 있기에 자기 자신의 책임에 대하여서는 당당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비록 사회의 비주류를 자처한다고 하더라도, 거시적으로 분류되고 주목받을 수 있게 집단화된 존재들이다.
그러나 문주란의 노래를 듣는 자들은 거시적인 분류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사회 각부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공통되게 정서적인 비주류성을 가진 자들로서 세상과의 갈등은 그대로 자신의 내부에 머물고 어떤 반항의 힘은 기대할 수 없다.
"남들은 행복하게 임마중 오는데 나에게는 마중할 사람 아무도 없는" 이유는 자기가 세상 처신을 잘못하고 인간관계를 잘 관리하지 못한 탓이지 다른 누구에게도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그러한 자들에게는 문주란의 노래가 위안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