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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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시절도 말엽에 접어들 즈음에 나는 친구 몇 명과 함께 1박2일의 야유회를 갔다. 엄밀히 말하면 그냥 따라갔다고 볼 수 있었다.
일행 중에는 우리 일행 모두와 잘 아는 여학생과 그녀의 동생과 후배를 합해서 아무튼 총 남자 5명 여자 3명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행은 그 날 저녁 숙소에서 짐을 풀고 즐거운 분위기속에 가벼운 농담을 하면서 저녁채비를 하였다.
한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대화상대의 중심이 되었던 여자가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모두들 어안(魚眼)이 벙벙하며 말을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그녀는 울먹이며 계속 말을 해대었다.
"정수야(가명) 너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장난삼아 농담을 했지만 나에게는 자존심에 비수를 꽂는 상처를 주는 이야기였어. 너는 저주를 받을 거야."
나는 그동안 오가던 이야기를 옆에서 듣기는 했지만 그게 그럴 정도의 이야기인지는 객관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의 '독무대'는 한참동안 계속되고 이윽고 (전기가 나갔는지 일부러 불을 껐는지는 기억 안 난다.) 방안이 어두워졌다. 일행 중에 기타를 잘 치는 친구가 그녀의 계속되는 '독백'에 맞추어 기타를 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친구들도 하나둘 이야기를 했다.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들은 기억 안 나고 나는 그녀와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나도 남들은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느낀 적은 있었다. 그러나 감히 이러한 행위를 한다는 것은 관습상으로도 용납 못하는 것이고 설사 용납된다 해도 그렇게 터져 나오지를 않는다."
제멋대로 분위기를 반전(反轉)시킨 그녀에 대해 그런 류의 '특권'을 갖지 못한 자의 푸념이라고나 할까.
한참이 지난 뒤 이윽고 불이 켜지고 저마다 술도 마시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녀는 일단 상황이 종료되니 다시 웃는 낯으로 일행을 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울먹이며 말할 때 기타로 독백의 반주를 쳐준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며 그걸 누가 녹음 좀 하질 그랬냐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때 직접 그녀의 표적이 되었던 친구와의 대화에서 나는 "여자는 사고의 차원이 전혀 다른데 무심코 남자들끼리의 사고방식으로 대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라고 한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러한 막연한 구분이 아니라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이전에 어린소견에 의문을 품었던 것. 왜 우리가 배운 여성스러운 서정시의 작자는 전부 남자들일까 하는 물음에 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자는 자신에게 닥쳐온 감성의 밀물을 그때그때 '소화'해낼 수 있기에 어느 면에서 더욱 이 세상을 무리 없이 살 수 있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자신이 느낀 그때 그때의 감정과 한이 '제때에' 분출되지 못하고 가슴속에 응어리져 쌓일 수 밖에 없던 자들, 이들의 맺힌 마음이 그중에서 일부 감성의 결정(結晶)능력이 있는 자들에 의해서 서정시로 이루어 졌던 것이다.
전(田)혜린이라는 번역문학가가 있어 (건전한 여자임에도)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여자'의 원조로서 간주되어 왔고 그의 뛰어난 재능에 장래에 문학가로서의 큰 기대를 본인과 타인 공히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평범이라는 것 자체를 의도적으로 거부했다.
이러한 그도 '천재성의 발현 시효'인 30세가 다다랐다. 그때에도 분명 엘리트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불멸의 창작가'와는 좀 달랐던 것이다. 범인(凡人)이 납득하지 못하는 높은 이상을 품은 이에게 '평범한'삶의 지속은 소월(素月)의 '길'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바이 갈 길'을 찾기 어려웠으리라.
그의 어록 중에 '노을이 새빨갛게 타는 내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었지요.','…황홀하도록 그 광경이 아름다와서 울었지요.' 등의 구절이 있다.
이러한 감정이 어찌 남자인 나로서도 공감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한 번도 그러한 적은 없다. 남들이 남자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 할까봐 그런 게 아니다. 아무도 없을 때도 그렇게는 안 된다. 감성의 오르가즘은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맥이 빠져 버린다.
남자의 이러한 특성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부딪치고 느껴야할 일들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제대로의 분출구를 찾지 못하는 많은 이들을 흐트러진 정서생활로 유도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 못하게 하는 원인도 되지만 그중 몇몇의 이에게는 이로 인한 담석의 결정체를 만들어 내라는 의무부여이기도 하다.
그가 그 자신의 풍부한 감성을 그대로 '흘려버리지'말고 그것을 공감하여 흡수할 수 있는 '결정력(結晶力)있는 영혼'에게 '잊혀지지 않는 무엇'이 되도록 했더라면 사라져야만 했던 많은 창작물은 우리에게 주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가가 되려는 여성분들 안 그래도 그러시겠지만 '여성적'인 글을 쓰려고 하지는 마세요. 나름대로의 언어구사의 강점을 활용해 좀 더 기교 넘친 글을 쓰든가 성을 초월한 뛰어난 능력으로서 선 굵은 대하소설을 쓰던가. 기왕에 같은 유형의 영혼을 가진 이라면 남자의 탈을 쓴 자가 더 '여자의 마음'을 간직하고 모아두고 있답니다. (19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