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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의 인간관과 그 비판
  • 타라고
  • 등록 2026-04-10 11:29:40
1. 들어가는 말 20세기 근현대 한국 사상사를 서술할 때 다석 유영모는 대단히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사상사의 맥락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그에 관한 연구는 YMCA 연경당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이 그의 강연록을 정리하면서 그의 사상의 단초를 푸는 데서 시작하고 있고. 그리고 이들은 주로 기독교 신학 연구자들이다. 한국의 철학계가 다석 유영모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석에 관한 철학적 연구는 거의 전인미답의 상태다. 다석에 관한 본 연구는 처음부터 이런 제한된 한계를 넘어 근대 한국 철학사에 다석의 사상을 정초시키고 그의 사상과 철학을 보다 보편적인 맥락에서 재해석해보고자 하는 데 있다. 다석 류영모는 서구의 문물이 충격적으로 유입되고 대한제국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던 시기에 대부분의 근현대 사상가들이 보이던 반응과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당시 한국의 근현대 사상가들은 서구와 식민지 체제의 문화적 충격 하에서 어떻게 하면 전통 사상을 재구성하고 재해석해서 새로운 충격에 대응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고심을 했다. 그들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유불도에 관한 한국의 전통 사상의 상당 부분을 수정하고 재구성하고 새롭게 정립하는 문제에 치중했다. 간단히 말하면 대부분의 근현대 사상가들은 외부의 충격에 대해 수동적으로 대응하면서 적응하는데 더 치중했다고 볼 수 있다.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이나 박은식의 유교개혁론의 경우가 그렇다. 이러한 현상은 서구 문물의 유입에 충격을 받은 대부분의 동아시아의 사상가들의 반응과 다르지 않다. 이에 반해 류영모는 한국 전통 사상, 보다 폭 넓게 본다면 동아시아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유불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서양의 기독교 신관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유불도 삼교와 회통 시키고자 한 점에서 다른 사상가들의 태도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다석 류영모에 대한 철학적 관심은 극히 최근에 들어서 이루어졌다. 물론 그 이전에 독일에서 하이데거를 전공해서 학위를 받고 온 외국어대의 이기상 명예 교수가 개별적 차원에서 다석의 사상에 주목해서 글을 써왔다. 그는 다석과 하이데거를 동서 비교 철학의 관점에서 연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철학’에 대한 관심에서 다석 류영모를 연구해온 이기상의 교수의 작업은 외연적으로 확장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다석을 한국의 철학계가 주목하게 된 것은 의외의 해프닝에서 이루어졌다. 2008년 <세계철학자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었을 때 서구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다석 류영모와 그의 제자인 함석헌 선생이 선정되어 그들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이 발표된 것이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철학과에서 전혀 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철학계나 기타 연구 세미나에서 거의 언급이 되지 않았던 현실을 감안 한다면 이 사건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다석 유영모의 사상이 대단히 한국적이고 독창적이며 동시에 세계 학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창의적임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석의 연구에서 특별히 주목할 점이 또 있다. 다석은 그 이전의 다른 어떤 사상가들과도 다르게 –유일하게는 한글 가사 『용담유사』를 쓴 수운 최제우 선생이 있다- 한글에 주목해서 서양의 기독교와 동양의 유불도의 핵심 사상을 한글로 번역하고 의미를 부여한 독특한 사상가이다. 대부분의 동서양 철학들이 기존의 중국식 한자어나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양식 개념을 별다른 검증 없이 사용하면서 철학을 현실과 유리된 추상적 학문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에 반해 다석은 끊임없이 한글식 조어를 만들어 자기 사상의 핵심을 표현해왔다. 이를테면 탐진치에 사로잡힌 보통의 인간을 ‘제나’로, 이런 인간을 넘어서 영적인 인간을 ‘얼나’라고 한다든지, 기독교의 인격적인 하느님을 부정하면서 동아시아의 오랜 전통 사상인 유불도에서 익숙한 천(天), 공(空), 무(無), 도(道) 등의 개념과 회통하는 의미로서 한울님을 ‘빈탕한데’라는 말로 대신했다. 나중에 제자인 함석헌이 깨어 있는 민중(民衆)을 지시하기 위해 사용한 ‘씨ᄋᆞᆯ’이란 개념도 다석이 만든 개념이다. 과거 한국의 어떤 철학자도 이렇게 독특한 시도를 한 적이 없다. 이는 『존재와 시간』에서 기초 존재론을 정초한 하이데거가 일상 독일어를 통해 새로운 철학적 개념을 만든 것과 비견될만한, 사상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이라 하겠다. 이 글은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면서 다석 류영모에 대한 개론적 소개를 넘어 그의 사상의 핵심을 연구하고자 하며, 어떤 부분이 독창적이고 어떤 부분이 21세기에 새롭게 해석되고 보편화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할 것이다. 이제는 한국의 철학도 일방적으로 서양 사상이나 전통 동양 사상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단계를 넘어서 독자적으로 자신의 목소리와 언어를 가지고 자기 철학을 제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석 유영모는 그런 점에서 충분히 하나의 전범(典範)이 될 수 있는 한국의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2. 다석 류영모의 신관과 ‘없이 계신 하느님’ 2.1. 다석의 인간관은 그의 신관과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먼저 그의 신관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다석은 YMCA 총무 김정식을 통해 기독교에 처음 입문한 이래 전통적인 기독교관을 액면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와 같은 서양 학문을 배우기 전에 이미 서당에서 한문을 띄고 동양의 여러 고전들을 익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조선의 다른 사상가들처럼 서양 사상의 충격을 받고 전통적인 한국 사상이나 동양 사상을 수정하는 데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기독교를 유불도의 핵심 원리에 기초해서 주체적으로 해석한 측면이 훨씬 강하다. 불교의 공(空)이나 노장의 도(道)와 태허(太虛), 그리고 유교의 천(天)이나 무극(無極)과 같은 개념들은 동양 사상에서 일맥상통하는 근본 우주관담고 있다. 이런 개념들은 경험적으로 확인하기는 힘들어도 자연을 드러내는 가장 원초적인 형이상학적 원리를 담고 있어서 한국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다. “선생님의 기독교 이해는 한마디로 기독교의 동양적 이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선생님은 한학에 능하여 동양의 고전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유교의 성리학, 불교의 철학 그리고 도교의 현학에 깊이 관심하고 있었고 기독교의 성경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반면 서양의 전통 기독교는 단순한 자연의 원리가 아니라 인격적인 창조주의 존재가 전제되어 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의 ‘창세기’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흑암(무)에서 여호아 창조주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런 의미의 창조주는 존재와 무를 초월하고 시간을 넘어선 절대자이다. 그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나다”라고 답변을 했을 뿐이다. 만일 절대자가 나는 여호아이고, 너희들을 창조한 신이다는 식으로 설명한다면, 이러한 절대자는 규정한 만큼 한정된 유한자로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절대자는 동어반복 외에 달리 규정될 수 없는 것이다. 인격적 절대자인 기독교의 신은 인간의 역사에 개입해서 이 역사의 창조와 종말까지 주도하는 존재이다. 때문에 기독교의 신은 유학에서 말하는 천(天)이나 무극과 같은 원리적 의미의 존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석은 기독교의 이런 전통 신관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이적(異蹟) 행위에 대해서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는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 알게 된 춘원 이광수를 통해 톨스토이 사상에 심취했다. 톨스토이는 작가로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사상에 대해 독자적인 입장을 밝혀서 서구 기독교계에서 상당한 배척을 받았다. 그는 예수의 사랑이야말로 신약의 가장 중요한 사상으로 간주하고, 그 밖에 귀신을 쫒거나 죽은 자를 살리는 등 합리적인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수의 이적 행위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종교를 믿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런 특이한 사건이나 행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기독교 복음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이다. 다석도 톨스토이의 이런 사상에 동의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동양의 형이상학적인 원리에 입각해서 기독교의 신을 해석하고자 했다. 다석은 기독교의 이런 전통 신관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이적(異蹟) 행위에 대해서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는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 알게 된 춘원 이광수를 통해 톨스토이 사상에 심취했다. 톨스토이는 작가로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사상에 대해 독자적인 입장을 밝혀서 서구 기독교계에서 상당한 배척을 받았다. 그는 예수의 사랑이야말로 신약의 가장 중요한 사상으로 간주하고, 그 밖에 귀신을 쫒거나 죽은 자를 살리는 등 합리적인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수의 이적 행위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종교를 믿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런 특이한 사건이나 행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기독교 복음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이다. 다석도 톨스토이의 이런 사상에 동의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동양의 형이상학적인 원리에 입각해서 기독교의 신을 해석하고자 했다. 2.2 다석은 일찍부터 한학을 배우면서 유학의 경전을 읽었고, 독서가 점점 깊어지면서 불교와 도교에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 다석은 노년에 『도덕경』을 특유의 언어를 통해 우리 말로 옮겼고, 한국의 가장 오래된 경전 중의 하나인 『천부경』도 우리 말로 옮겼다. 다석의 일차적 관심은 기독교의 예수라 할지라도 이를 동양의 전통 사상에서 독특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모색하고자 했다. 공자의 천의 개념을 인격적인 천주로 해석하고, 중용에 나오는 “천명지위성, 솔성지위교”(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처럼 천과 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나아가 주렴계의 태극도설을 해석하면서 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특별히 주목을 했다. 유학의 자연철학에 대한 관심은 모든 존재의 궁극적 원인이자 원리를 기독교의 신과 접목시키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접근은 불교를 해석할 때도 일관되게 드러나 반야심경의 공관(空觀)이나 무(無)사상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면서도 형이상학적 의미의 도(道)를 만물 운행의 궁극 원리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경향이 크다. 그가 유학의 무극이나 태극, 불교의 공이나 무, 도교의 도와 같은 개념을 끌어들이는 것은 만물의 창조주이자 만물을 주재하는 일자로서의 기독교 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전통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격체로서의 신을 넘어서 있다. 그가 의미하는 신은 있음의 차원에서는 태극을 말하고, 없음의 차원에서는 무극과 같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 것들은 다석이 말하는 ‘없이 계시는 하느님’을 원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동양의 형이상학적 배경이라 할 수도 있다. 그가 진정으로 의미하고자 하는 신은 다른 어떤 존재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궁극적인 일자이고, 만물의 원인이고 주재자이자, 인간적 지혜를 넘어서 있는 존재이다. 3. 다석 유영모의 인간관 3.1 다석 사상의 특이성은 한글의 고유한 장점을 살려서 독자적인 철학의개념을 만든 데도 있다. 다석만큼 빼어난 한글 사상가를 찾아볼 수 없을정도이다8). 신을 가리키는 ‘바탕할데’, 인간을 가리키는 ‘긋’과 신을 향한인간의 실존적 지향을 의미하는 ‘가온찍기’9), 인간의 영성을 의미하는 ‘얼바탈’, ‘한웋님’ 등이 그렇고, 제자 함석헌을 통해 널리 알려진 ‘씨알’이란 다석이 만든 개념이다. 글월(文章), 빈탕(허공), 바탈(天性), 알맞이(哲學), 맞긋(종말), 누리(세상), 여름질(농사), 늙은이(老子), 꼴위(形而上), 꼴아래(形而下), 은혜(힘입어), 시간(덛) 등등 이런 예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많다.이러한 다석의 노력은 한글만으로는 철학의 추상 개념을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저간의 인식을 무색하게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독일의 하이데거가 일상어를 통해 현존재의 존재론을 펼친 것에 필적할 사건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다석은 동양의 주요 경전에 대해서 순 우리말로 번역을 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1959년에 노자와 반야바라밀다심경을 번역했고, 1968년에 중용을 완역했다. 그밖에 장자, 논어, 맹자, 주역, 서경 등은 부분적으로 번역했고, 한국의 오래된 경전인 천부경도 1963년에 번역했다. 다른 어떤 번역과도 다르게 다석이 번역한 고전들은 거의 외국어를 읽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거듭 읽다 보면 감칠맛이러날 정도로 빼어나다. 이렇게 그가 우리말로 만든 개념과 번역한 것들을8) 우리는 말(言)을 타고 하늘 나라 하느님 아버지에게 가야한다. 기차를 철마라고 불렀지만하늘로 치솟는 로케트야 말로 용마(龍馬)일 것이다. 우리는 예수ㆍ석가가 준 하늘 말을타고 하느님께로 솟아나자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천마이다.(박, 133)9) “가온 찍기야 말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다. 찰나 속에 영원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래서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하늘을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며, 가온 찍기( 「⦁」)’가 인생의핵심이다. 그러나 깨닫는 가온 찍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끝끝내 표현해보고 또 표현해보고나타내 보여야 한다. 내가 내 속 알(본바탕)을 그려보고 내가 참 나를 만나 보는 것이 끝끝내이다.”(박영호 엮음, 2002: 224-225) 재인용70 陽明學 第69보다 보면 우리말 개념어 역시 한국 철학의 내용을 풍부히 하는 데 얼마든지 이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0). 3.2 다석이 만든 개념 가운데 인간 자아를 표현하는 개념이 있다. 제나와 얼나가 그것이다. 제나는 탐진치(貪瞋痴)에 사로 잡혀 있는 육체적 자아이고, 얼나 혹은 참나는 이 삼독을 벗어난 정신적이고 우주적인 자아이다.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식욕과 색욕, 재물욕과 명예욕과 같은 욕망을타고난다. 이런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인간은 자신의 본 바탕(받할)을알 수 없다는 점에서 다석은 제나와 얼나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사람의 뚱이라는 것은 벗어 버릴 허물 같은 옷이지 별것 아니다. 몸에 옷을여러 겹 덧 입는데 몸뚱이가 옷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속옷 겉옷 아무리 겹겹이 입었더라도 벗어 버릴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옷은 마침내 벗어 버릴 것이라 결국 사람의 임자는 얼(靈)이다. 사람의생명에서 불하는 것은 얼나 뿐이다. 입은 옷이 아무리 화려하고 찬란해도 낡으면 벗어 던지게 된다...얼나는 영원한 생명인 하느님이시다.(1956)11) 다석에 따르면 사람의 몸뚱이는 옷으로 간주돼 언제든지 벗어 던질 수있는 것이고, 얼(靈)이야말로 사람의 임자다. 전자는 가짜 자아이고, 후자야말로 진짜 자아이다. 다석은 전자를 제나라고 하고, 후자를 참나 혹은 얼나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다석은 분명하게 인간의 자아를 둘로 나누고 있다.제나는 얼나에 이르기 위해 부단히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다석의 입장이다. 다석은 탐진치 3독(毒)을 벗어나 제나에서 얼나로 상승하려는 자세가유불도 3교와 기독교 모두에게 공통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고 본다. 예를 들어 공자는 군자로서 인생의 과정과 관련해 경계해야 할 것으로 세 가지를들고 있다. 첫째는 청년기의 색욕이고, 두 번째는 장년기의 다툼이며, 세번째는 노년기의 탐욕이 그것이다. 노자 역시 삼불사를 말하면서 싸움을하지 말고 도둑질을 하지 말고 음란을 하지 말라고 했다. 예수 역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누가 12:15), 성내지 말라(마태 5:22) 음욕을 품지 말라(마태5:27) 고 했다. 런 면에서 제나에서 얼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제나의 육체에서 비롯되는 욕망을 극복하는 일이 관건이라 할 수 있다.육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다석이 예수를 평가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다석이 전통 기독교의 많은 요소들을 부인했다는 점은 앞서 지적한바가 있다. 그중에서 예수가 인간의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었다는 대속(代贖) 사상도 예외가 아니다. 몸을 가지고 있는 예수는 우리 평범한 인간들과 아무런 차가 없다. 다석에 따르면 예수는 결코하느님이 아니고 어떤 선생도 미정고(未定稿)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의 죽음은 의인의 죽음이지 대속적 죽음이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꽃다운 피가 꽃피(花血)이다. 한 마디로 의인이 흘린 피다...한아님의 아들이란 몸의 죽음을 넘어선 얼의 나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예수는 범인하등 차이가 없다는 의미며, 양자의 차이는 오로지 얼나에서만 존재한다.마찬가지로 범인도 얼나를 깨달는다면 그들 역시 성인과 차이가 없다는것이다. “예수는 내 속에 있는 속알, 곧 한아님의 씨가 참 생명임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므로 먼저 내 속에 있는 속알에 따라야 한다. 그 속알이 참예수의 생명이요, 나의 생명이다. 예수의 몸도 내 몸과 같이 죽을 껍데기지 별 수 없다.” 다석에 따르면 몸뚱아리에 묶여 있는 제나의 측에서는 범인이나 성인 모두 별 차이가 없다. “예수하고 우리하고 차원이 다른 게 아니다. 예수 석가는 우리와 똑같다. 예수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고 하였다고 우리보다 월등한 것이 아니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이라소아(小我)가 믿고 쫒아 갈 목적이 될 수 있고, 성령의 부으심을 받았다 하면 대아(大我)가 성장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제나의 측면에서 성인과 범인의 차이가 없고, 범인도 얼나를 깨닫을 경우 성인과 차이가 없다면, 성인과 범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3.3 다석의 ‘얼나로서의 인간관’은 상반된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볼수 있을 것이다. 먼저 다석이 말하는 얼나로서의 인간은 모든 고등 종교들에 나타나 있듯, 인간의 본성에 신성(불성) 혹은 성스러움이 내재해 있음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인 한아님으로부터 오는 성신(聖神)이다는 것이다. 동학의 내유신령(內有神靈)이란 개념도 인간 안에 내재하는 신령을 강조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내 몸을 한울처럼 모시라(侍天主)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안에 내재하는 신성의 측면에서 인간을 보고자 하는 이런 입장은 확실히 반 근대적 혹은 탈 근대적이라 할 수 있다. 데카르트 이래로 근대는 인간이 전면에 나서고 신은 뒤편으로물러간 시대다. 새로운 시대의 주인인 인간은 자신의 이성의 기획에 따라세계를 구성하고자 하는 주체이다. 마치 무인도에 정착한 로빈손 크루소아가 자신의 머리와 손발을 가지고 무인도를 개척하듯이, 근대의 인간상은자신이 살아갈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주체이다. 계몽주의의 이성이 봉건주의의 낡은 제도와 규범을 무너뜨린 것처럼, 자연과학은 숲속의 정령을 몰아내고 자연을 수학의 언어로 계량화할 수 있는 물질로 전락시켰다. 이제 종교는 공적 영역에서 쫓겨나 기껏해야 사적 영역에서 개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심리 치료 정도로 변질되었다. 이런 시대에 인간의 신성과 성스러움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다석의 인간관은 확실히 반시대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의 에너지가 소진되고 문명의 위기가 여러 부문에서 드러나면서 지금까지 지배해왔던 이성 중심의 세계관에 대한 반성이 많이 요구되고있다. 이제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인간관, 새로운 세계관이필요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석의 인간관은 탈근대에서새로운 인간의 전형을 예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기상은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실종된 신과 성스러움, 이성과 존재 중심주의에 의해 배제된 무의 세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3.4 다른 한편으로 다석이 말하는 제나와 얼나는 인간을 이원화시킴으로써 전통적인 종교와 플라톤적인 이원론적 인간관을 되살리고자 하는시도로 보일 수 있다. 다석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의 탐진치에 갇혀 있는 제나를 벗어나 얼나를 지향해야 한다. 그는 영혼을 육체의 감옥 속에 갇힌 것으로 본 플라톤처럼 제나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플라톤에게 철학은 이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기 위한 ‘죽음의 연습’이다. 육체로부터의해방이 플라톤에게는 초월적인 이데아의 세계로 가는 것인 반면, 다석에게는 자기의 내면에 있는 참나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있다. 다석의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이 점을 좀 더 분명히 해주고 있다. “초월해서 들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속에 자기의 뿌리 밑동을 자기가파고 들어간다.” 다시 말해 “한아님께 가는 길은 자기 마음속으로 들어가는길밖에 없다.” 플라톤과 다석 간에서 보이는 이런 차이의 의미는 크다. 전자는 검증되지 않은 초월적 세계로의 탈출이지만, 다석의 초월은 자기확신을 갖는 내면의 참나를 깨닫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석의 관점은 성격은 다르지만 칸트의 선험주의(transzendentalismus)와 마찬가지로 인간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초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성격의 차이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플라톤 철학과 칸트 철학 모두가 이원론에 빠진 것처럼 다석의 사상도 제나와 얼나의 심신 이원론에 빠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빠졌다는 표현은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다석의 과도한 '정신주의'(spiritualism)의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다시말해 전통적인 심신 이원론관점에서 보듯, 인간의 정신적인 면만 강조하고 다른 육체적인 면을 부인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나 불교 등 대부분의 종교나 플라톤철학에 공통적인 모습들이지만, 이런 인간관은 인간을 반쪽짜리로 왜곡하는 것은 아닐까? 심신 이원론은 대부분의 영지주의나 정신주의 철학에서 볼 수 있었던 현상들이다. 이들의 극단적인 관점은 소수의 인물들에게만가능한 것들을 요구함으로써 엘리트주의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3.5 마음과 몸을 하나로 볼 것인가 혹은 둘로 볼 것인가의 논쟁은 동서양과 고금을 통털어 이루어진 오랜 쟁점들 중의 하나이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원론과 정신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통합된 존재임을 분명히 했다. 데카르트는 연장된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와 자유롭게 생각하는 정신은 전혀 별개의 실체로 간주했지만, 몸이 아플 때 마음도 의기소침해지는 현상을 부인하지는 못했다.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의 이러한 상호 작용을 설명하기 위해서 송과선이라는 가설적 제안을 했다. 20세기 철학에 들어와서도 mind-body의 문제는 핵심적인 쟁점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의 오랜 전통에서는 몸과 마음은 대대(待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전일적이고 통일적인 인간의 양면을 구성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정신과 육체를 극단적으로 이원화하면서 플라톤처럼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간주하고 이 육체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정신의 해방으로 간주하는 것은 현대의 인간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다. 정신과 육체를 분리시키고자 하는 입장은 불교나 기독교를 위시한 다양한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종교를 떠나면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고수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분명 육체적인 욕망이 정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면이 있지만, 이것을 오로지 육체의 책임으로만 몰기에는 한계가 있다. 극단적인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고, 정신의 완전한 고양을 지향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몸이 받쳐주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는 현대 신경 생리학의 발달에 따른다면 단순히 수동적으로 정신의 작용을 받아들이는 용기(用器)가 아니다. 오히려 그 자체가 스스로 기억을 하고 능동적으로 작용을 하는 면도 많다는 것이다. 3.6 이런 식의 비판은 스피노자에서도 많이 보이지만, 여기서는 플라톤적인 영지주의 입장에 대해 단호하게 거부하던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라는 책에서 끌어온 몇 가지 인용으로 대신하겠다. 이 책에서 니체는 위버멘슈(초인)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어 이런 말을 한다. "지난날에는 영혼이 신체를 경멸하여 깔보았다. 그때만 해도 그런 경멸이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었다. 영혼은 신체가 야위고 몰골이 말이 아니기를, 그리고 허기져 있기를 바랐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신체와 이 대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 그러나 야위고 몰골이 말이 아닌데다 허기져 있는 것은 바로 영혼 그 자체였다. 잔혹함, 바로 그것이 그러한 영혼이 누린 쾌락이었으니! 그러나 형제들이여, 말해보아라. 너희의 신체는 너희의 영혼에 대해 무엇을 일러주고 있지? 너의 영혼, 궁핍함이요, 추함이며 가엾기 짝이 없는 자기만족이 아니냐?" 나는 신체이자 영혼이다...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것도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형제여, 네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너의 작은 이성, 그것 또한 너의 신체의 도구, 이를테면 너의 커다란 이성의 작은 도구이자 놀잇감에 불과하다...너의 신체가 자기인 것이다. (니체, <짜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체와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영혼은 오히려 궁핍이고 상실이고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니체의 이런 말을 과장할 필요는 없겠지만, 분명히 여기에는 서구의 오랜 정신주의적 전통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고 한다면 다석의 얼 사상, 얼나 중심의 인간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판을 가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다석의 얼 사상은 수행자나 근본주의적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을지 몰라도 지나치게 탐욕적이고 쾌락주의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경종의 의미를 담는 이상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4. 맺음말 지금까지 다석 유영모의 신관과 인간관을 중심으로 간략하고 고찰을 해보았다. 다석에 대한 독서가 일천한 필자가 이러한 다석 사상에 대해 평가하고 비판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듯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에서 간단히 세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평가할 때 여러 가지 기준점들이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명확성이나 깊이 그리고 독창성과 주체성들이 그것들이다. 이것들 모두가 하나같이 중요하겠지만 특별히 독창성과 주체성의 관점에서 볼 때 다석의 사상은 군계일학의 경우처럼 빼어나다. 이 글의 모두(冒頭)에서도 지적했다시피 근대화의 과정에서 서구 제국주의가 물밀 듯이 동아시아로 밀고 들어올 때 대부분의 동아시아의 사상가들은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입장을 보이거나 혹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신봉해왔던 전통 사상을 수정하는 일에 주력했다. 이것은 불교나 유교, 그리고 한국의 전통 사상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였던 모습들이었고, 중국과 일본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았다. 외부의 영향을 클 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석은 그들과 달랐다. 다석은 오히려 유불도 삼교에 대한 깊은 인식에 기초해서, 그리고 그것들을 회통한 상태에서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교를 재해석했다. 서구의 충격에 따라 동아시아의 사상을 뜯어고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의 깊은 토대 위에서 서구 종교의 핵심 가치를 재해석하고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도록 재구성한 것이다. 다석의 이런 태도는 대단히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외래 사상을 받아들여 온 한국의 입장에서 하나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외래 사상이 들어올 때마다 자신들이 믿고 따랐던 종교와 사상을 하루아침에 헌신짝 버리듯이 팽개쳤던 오랜 관행 탓에 이 땅에서는 사상과 철학이 깊이 있게 축적되지 못한 경험이 많다. 때문에 다석 유영모처럼 주체적이면서도 독창적으로 외래의 문화와 종교를 재구성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둘째, 영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다석의 사상에 대해 오늘날 적지 않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다석의 인간 해석은 근본주의 종교의 색채를 띠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근대에 상실한 신과 성스러움을 회복한다고 해서 반드시 과거로 똑같이 돌아갈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다석이 일일 일식을 하고 해혼(解婚)을 하고 매일같이 칠성판에서 잠을 잔 것은 다석 개인의 차원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쉽게 따르기 어려운 행동들이다. 다석을 성자로 떠받들고 다석 신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은 말릴 수 없지만, 엄정한 철학과 사상 면에서는 가당찮은 것들이다. 다석 사상이 한국의 좁은 틀을 벗어나 최근의 한류 현상처럼 세계의 다른 학자들에게서도 연구되고 해석될 수 있기 위해서는 그의 철학과 사상으로부터 이런 것들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것들에 매일수록 다석은 그의 철학보다는 그저 신비주의 사상가 정도로 치부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다석의 사상과 철학은 그런 신비적 요소들에 갇히기 보다는 얼마든지 재해석되고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다석 사상의 빼어난 장점이자 앞으로 후학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부분은 다석이 한글에 주목해서 지금까지 누구도 해오지 못했던 한글 추상 개념들을 만들고, 한글의 언어 구조에 기초해 독창적으로 사유를 펼쳐 나간 점들이다. 세종 대왕이 한글을 창제해서 반포한 것이 1443년이다. 세계 문자 역사상 제자 원리를 밝혀가면서 문자를 만든 경우는 거의 드물다. 이런 우수한 문자를 만들었지만 사대 중화사상에 매몰된 조선의 선비들은 그것을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서 오로지 한자를 가지고서만 글을 쓰고 생각을 펼쳤다. 한글은 조선 시대 500년 동안 뒷방으로 완전히 밀려나 언문(諺文) 취급 받으면서 근근히 명맥을 이어 왔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서양 철학이 이 땅에 수입이 된 지 백 여년이 넘지만 대부분의 추상 개념들은 일본식 한자로 도배되어 있는 상태다. 하지만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지금에 와서 이런 현실을 무시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누구도 그것을 벗어나서 사유하기 힘들어 하고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하나의 철학과 사상을 정립하는 데서 언어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다석이 한글을 중시하고 순 우리말로 추상 개념을 만들어 독립적으로 사유한 것은 쉽게 당연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 점을 귀중하게 생각해서 후학들은 다석의 이런 시도를 모범으로 삼아 더욱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석 사상에는 동서고금의 철학이 회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단초들이 많이 담겨 있다. 필자는 이런 문제 의식을 갖고 다석의 사상을 들여다보고자 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연구해야 할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하겠다. 다석은 20세기 한국이 배출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였고, 한국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미래의 사상가이다. 하지만 과도한 정신주의와 엘리트주의에 기초한 언어 순결주의로 인해 그의 사상을 바로 현재화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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