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T.Kuhn이라는 과학사가를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과학철학을 하던 오영환 교수의 수업에서 였을 것이다. 그 당시 <시간철학>이라는 다소 특이한 수업에서 그의 T.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1961)이 소개되었다. 이 책의 번역본이 1980년대 말에 나왔으니까 당시 우리는 영어 원서로 읽은 셈이다. 생각보다 영어가 어렵지 않았고, 내용이 흥미 진진해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혁명의 발전에서 길어낸 Paradigm이라는 용어에 매료돼서 그것을 T.Kuhn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른 학문이나 현상에도 적용해보기도 했다.
T.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1961)은 발간 당시부터 과학 및 철학계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하버드 대학의 과학사가인 T.Kuhn은 과학사와 과학혁명의 변화와 발전을 보면서 과학혁명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발견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 혁명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이고 파국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주장은 과학 혁명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정상과학'(normal science)은 과학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패러다임(Paradigm)들 가운데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은 기존의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이거나 시각 혹은 방법론과 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런 지배적 패러다임 안에서 주어진 문제를 풀이(Problem Solving)한다. 그런데 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의 설명에 맞지 않는 현상이 발견되면서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가 올 때 새로운 과학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령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지구중심의 우주론, 즉 프톨레마이오스 우주 체계가 그것을 기초로 확립한 율리우스력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에 반기를 든데서 시작했다. Copernicus의 이러한 발견은 천문학 체계 자체에 대한 사고의 전환을 야기할 만큼 너무나 엄청나서 그 이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불리게 되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도 이를 벤치마킹해 기존의 철학적 인식의 틀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과학혁명은 I. Newton의 근대 기계론적 역학관과 또 그것을 근본적으로 뒤엎은 A.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T.Kuhn에 따르면, 정상과학의 균열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Paradigm Shift)은 점진적으로(progressively)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이동(radical shift)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존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계는 연속이 아닌 단절이자 불연속이고 파국(catastrophy)이다. 때문에 이것은 일종의 '세계관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후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과학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 사회, 경제, 교육, 예술 등 다방면에서 일반화되어 사용되는 핵심적 사고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창작자 고유의 작품 활동이라는 예술에서도 AI가 개입하면서 점차 고유의 의미와 배타의 의미가 희석화되고 있다. 오늘 날 인간 예술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롬프팅을 통해 '큐레이팅하는' 존재로 바뀌고 있다. 이제는 지식이나 예술적 창작에서도 '창조와 창작'의 의미를 전통과 달리 정의할 수밖에 없다.
<에세이철학>은 몇 가지 면에서 기존의 '정상철학'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각주와 레퍼런스로 가득찬 A4 10장 짜리 논문 형식의 글쓰기를 거부한다. 논문쓰기는 현재의 철학을 지탱하는 연구자들의 필수 활동이다. 논문을 쓰지 않고서는 학위를 받을 수 없고, 각종의 전문 학술지에서 활동할 수 없고, 대학 안팎의 연구비 관련 프로젝트에 신청할 수도 없다. 연구자의 모든 활동과 관련된 것이 논문이다. 그런데 이런 논문이 지나칠 정도로 각주와 레퍼런스를 요구하다 보니 이제는 자기 생각과 남의 생각의 경계를 확정하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다. 철학은 어떤 경우든 단순한 과학이 아니다. 자연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 활동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서 사유의 힘을 발휘해야 할 철학적 사유가 단순히 과학성과 학문성이라는 명분 하에서 하청만 맡는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경우이다. 때문에 '에세이철학'은 철학적 사유 본래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 각주와 레퍼런스 없이 온전히 자기만의 사유를 주장한다. 이러한 '에세이철학'의 이념은 현재의 '정상철학'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자 반란이다.
둘째, '에세이철학'은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나칠 정도의 수입철학과 유산철학 일변도의 철학 활동과 단호하게 결별하고자 한다. 수입철학과 유산철학이란 표현은 필자의 일방적인 매도가 아니다. 실제 철학 활동을 하는 많은 연구자들이 서양철학은 '오퍼상'이고, 동양철학은 '고물상'이라는 식의 자괴감을 보이고 있다. 왜 가장 주체적인 학문이어야 할 철학을 하는 연구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기 참담한 느낌이 드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가? 이러한 자괴감은 무엇보다 자신의 삶과 사유에서 걸러온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서양철학이 이 땅에 수입된 지도 100년이 훨씬 넘었음에도 여전히 한국철학은 자신의 자생적인 철학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끊임없이 서구에서 발생한 이론과 철학을 수입하고 번역하고 해석하는 활동을 '철학함'(philosophieren)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양철학의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20세기 현상학과 실존주의,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맑스주의와 비판 이론, 실용주의와 분석 철학등 서구 철학 일변도이고, 이런 것들이 대학의 카리큘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동양철학이나 한국철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은 무엇보다 '사상 속에 포착된 그 시대'라는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은 철학과 현실 혹은 시대와의 긴밀한 연관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2,500년 전 춘추 제자 백가 시대에 발생한 공맹의 철학과 노장의 사상을 현재까지 액면 그대로 반복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동양철학의 현실은 송나라의 주자학과 양명학을 거치면서 거의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철학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철학을 말하면, 여전히 원효와 퇴계와 율곡을 말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학이 치료 기술 뿐만 아니라 장비의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고 있지만, 한의학은 여전히 황제 내경이나 동의 보감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다 보니 오늘 날에는 그저 대체 의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지체 현상은 기존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벗어나려는 사유의 실험과 혁명의 전통이 마련되지 못한 탓이다. 공자왈 맹자왈을 단순 암송하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갈 수가 없다. '에세이철학'은 동서양 철학 모두에서 보여지는 지금까지의 구태의연한 모습에 결별을 선언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철학 활동이다.
셋째, '에세이철학'은 추상개념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글'이 철학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금까지의 편견에 도전을 하고자 한다. '한글'은 개국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세종의 천재적인 발명품이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들 때 사대 중국의 한문숭배를 분명히 거부하는 동시에 만백성이 쉽게 문자를 사용해서 자기 생각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민본주의 사상을 명백히 했다. 그런데 이런 세종의 한글을 세종이 죽었을 때 <조선왕조실록>에서 조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에도 최만리를 위시한 사대부 유생들의 반대가 심했는데, 세종이 죽자 마자 바로 그 흔적을 아예 말살하려는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 조선 500년 동안 조선의 선비들은 한문 숭배의 이데올로기를 철칙으로 삼았다. 이 프레임은 뛰어난 성리학 사상가인 퇴계와 율곡도 벗어나지 못했고, 실학의 선봉장인 다산 정약용도 벗어나지 못했다. 발랄한 문체로 당대를 사로 잡았던 연암 박지원도 못했고, 북학파의 거두 박제가는 오늘날의 영어 공용주의자들 처럼 아예 내놓고 중국어로 통일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만큼 조선의 사대부들은 한글이 갖는 중요성과 파괴력을 제대로 알 지를 못했다. 이런 편견은 20세기에 들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한글을 나라의 공식 문자로 인정한 19세기 말 대한제국의 결정과 20세기 후반 들어 한글 전용 운동이 펼쳐지면서 한글이 지배적 언어로 등장할 수 있었다. 한글은 똑독한 사람이라면 반나절이면 배울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는 <훈민정음언해>의 말처럼 너무나 간단명료해 20세기 한국의 문자혁명을 주도했다. 20세기 후반 디지탈 기술이 본격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소리 글자인 한글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한국이 IT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한글이 크게 작용했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문 학술계에서는 한글이 학문을 하는 데는 부족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일상언어에 기초한 '에세이철학'은 오늘날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것처럼 '한글'이야말로 철학을 할 수 있는 '최적화된'(opitimized) 언어임을 분명히 하고 철학적 글쓰기에서 그 말을 실천하고 있다. 입말과 글말이 일치할 수 있는 한글은 '에세이철학'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절한 언어 수단이다. '에세이철학'은 대중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추상개념들을 배제하고 쉬운 일상언어만을 가지고 얼마든지 철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액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에세이철학회>에서 매일같이 2-30편의 칼럼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것 자체가 한글철학이 가능할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몇 가지 이유에서 '에세이철학'은 기존의 '정상철학'의 강력한 패러다임을 깰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철학혁명의 기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철학적 실천을 이 시대의 새로운 문화혁명이자 사상혁명의 수준으로 끌어나가는 동시에 세계철학계에도 당당하게 보여줄 것이다. '에세이철학'은 주어진 패러다임 안에서 단순히 '문제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패러다임'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철학적 혁명을 모색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