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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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에세이철학 네트웤>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은 현대판 르네상스같다. 중세 천년의 어둠을 깨고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연 르네상스(Renaissance)는 유럽에서 일어난 거대한 문화적, 예술적, 지적 부흥 운동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신이 지배하던 세계관을 벗어나 비로소 인간이 적극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휴머니즘). 근대에 '주체'(Subject)가 새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르네상스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부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지중해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상인 계급의 등장과 함께 메디치 가문처럼 이들이 예술가들의 생계를 적극 지원한 것도 크다.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작에 활동할 수 있었던 토대다. 이 때 진정한 의미의 르네상스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숭고함으로 보여준 미켈란젤로 같은 뛰어난 예술가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플랫폼 <에세이철학 네트웤>에 이름을 올리고 매일 같이 전문 칼럼을 올리고 있는 칼럼니스트들의 전공은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에세이철학 네트웤>은 통상 말하는 인식론과 형이상학,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대륙철학과 경험론, 분석철학과 해석학 등 수도 없이 많은 분과철학과는 의미가 다르다. '에세이철학 네트웤'이라는 의미는 이 모든 철학들이 소통과 융합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의 성격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철학이라는 담벼락을 넘어 모든 학문들이 깊이와 전체에서 만날 수 있을 만큼 외연이 넓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곳에는 철학과 역사, 신학과 예술, 공학도와 자연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연구자와 글쟁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저서가 무려 100권을 넘을 만큼 다양한 분야를 섭력하고 계신 문화인류학자 박정근 박사님도 이곳에 이름을 올렸다. 박정근 선생은 폐쇄적인 전문화의 벽을 넘어서려는 이 시대의 융합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르네상스적 인간이라 할 수 있다.
<페이스북>도 이런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그 한계가 너무나 크다. 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글과 사진들을 올리고 있지만, 너무 산만할 뿐더러 흘러가는 강물처럼 축적되지도 않는다. 광고가 너무 많고, 보고 싶지 않은 글들도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날 정도이다. 수시로 메신저나 댓글을 통해 묘령의 여인들이 유혹을 해오고, 정치성 글들과 정치인들의 메시지가 넘친다. 때문에 페이스북은 제멋에 흥겨운 사람들이 킬링 타임 식으로 놀기는 어떨지 몰라도, 전문가들이 몸담고 있기에는 여러모로 좋지가 않다. <에세이철학회>는 페이스북과는 결이 다른 새로운 플랫폼이다. <에세이철학 네트웤>에는 매일같이 2-30편의 전문 칼럼들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추세를 6개월만 지속해도 거대한 텍스트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 여기 올라온 칼럼들은 인터넷 게시판의 올라온 글들과 수준과 차원을 달리할 만큼 전문성과 깊이, 그리고 대중성을 골고루 갖춘 글들이라 앞으로의 귀추가 더욱 주목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추세를 바탕으로 과거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르네상스처럼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의 사물(Ding)은 그것이 존립할 수 있는 장(field)을 형성하고, 그것이 다른 사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네트웍을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은 새로운 접속으로 이어지고, 또 새로운 장과 네트웍을 형성하면서 거대한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플랫폼 <에세이철학 네트웤>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물질적 인프라를 마련했고, 그 이념에 뜻을 같이 하는 전문 칼럼니스트들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에세이철학회>는 더욱 많은 칼럼니스트들을 초대해 <100인 칼럼>을 운영할 수 있기 위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축적된 경험과 칼럼들을 가지고 다른 많은 한류 콘텐츠들과 함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