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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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낡은 창고 같은 곳이 아니면 거미집이나 거미가 쳐 놓은 줄을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우리 어렸을 적에는 여름날 특히 가을날에는 일부러 거미줄을 찾으러 다니곤 했다. 그 당시 코스모스 위로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닐 때 우리들은 철사와 나무 막대로 만든 잠자리 채에 거미줄을 씌우기 위해 아침마다 거미집을 찾아다녔다. 이런 거미집은 창고뿐 아니라 처마 밑에도 있고, 무성한 나무들에서도 발견이 되었다. 그 거미집에서 뜯어낸 거미줄을 채에 두루 말면 접착제 이상으로 아주 끈끈해서 날아다니는 잠자리 잡기에는 그만이었다. 하늘하늘 한 잠자리 날개가 잠자리 채의 거미줄에 살짝 닿기만 해도 여지없이 잡히곤 했다. 그래서 한나절 그렇게 잡다 보면 잠자리를 엄청 잡을 수 있었다. 어렸을 적 아이들의 놀이 중의 하나였다.
이 거미줄이 얼마나 접착력이 강하냐 하면은 웬만큼 큰 풍뎅이나 매미, 혹은 사마귀 같은 벌레 들도 한 번 걸리면 꼼짝없이 거미에게 먹힐 수밖에 없다. 거미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벌레들을 서서히 피를 말리면서 포식하는 것이다. 거미가 거미줄을 쳐 놓고 벌레를 기다리는 모습을 주라대충(蜘蛛待蟲)이라 하고, 촘촘하게 짜인 거미의 그물을 주라지망 (蜘蛛之網)이라고 한다. 이것은 거미줄이 워낙 교묘해서 범인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쳐 놓은 그물망 같은 수사망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거미줄은 먹이가 걸려들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잘 해놓고 기다린다는 의미를 띠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기획하거나 성사시키려 할 때는 먼저 계획을 철저히 짜고, 다음으로는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인력이나 자원을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를 해도 일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아무런 기획도 하지 않고, 준비도 하지 않고, 사람이나 자원도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일을 할 수가 있을까? 이는 한 마디로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라는 말처럼,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공짜로 얻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물론 그런 경우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확률상 대단히 낮다. 일을 그렇게 우연에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우리가 시작한 <에세이철학회>는 여러 면에서 새롭고 창의적이고 그 비전의 규모도 대단히 크다. 일단 <에세이철학회> 사이트는 단순히 연구자들의 블로그형 사이트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첫째, 우리는 이 사이트를 연구와 비즈니스를 통합한 새로운 의미의 '벤처 사업'으로 구상했고, 또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학문적 연구를 하는 '철학회'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를 접목시킨 것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우리가 최초이다. 인문학자나 철학자, 기타 다른 분야의 학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은 이슬만 먹고사는 존재가 아니다. 이들도 먹여 살려야 할 처가 권속이 있고, 자신들의 품위도 유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 생산하는 지적 생산물은 다들 공짜로 생각하지만 우리들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고, 그 대가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방법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반드시 그 일을 할 것이다.
둘째, <에세이철학회>는 무너져 가는 인문/철학 생태계를 다시 되살리려는 야심찬 꿈을 가지고 있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이런 생태계가 복원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 할 지라도 생존이 쉽지가 않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피로사회>로 잘 알려진 에세이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몇 년 전 고대 철학과의 초청을 받아서 강연한 적이 있었다. 그 강연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한 교수는 자신의 책이 그 해 전세계적으로 무려 100만 권이 팔렸다고 자랑을 했다. 한국에서도 예전에 독서율이 아주 높았을 때는 그런 베스트 소설들이 나오기도 앴지만 지금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좋은 이론서들도 이제는 초판 500권 조차 소화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 땅의 인문 철학자들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환경 때문이고, 텍스트 생태계의 파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그 일을 <에세이철학회>가 하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단체들, 학회들과 연구소들 그리고 출판사들과 연대 협력해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할 것이다. 한국에서 어떤 누구도 이런 일을 구상한 곳이 없다.
셋째, 우리는 <에세이철학회> 사이트를 처음 설계할 때부터 다국어 버전으로 만들었다. 한 마디로 한류의 다른 콘텐츠들처럼 한국의 수준 높은 글과 책들을 외국인들에게 읽히려는 것이다. 이미 다른 한류 콘텐츠들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과 열망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인문과 철학 사상 등은 여전히 외국에서 수입 번역 그리고 해석하는 데에 그치고 있다. 물론 그런 작업들이 전혀 의미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런 방식을 벗어나 우리들의 지적 생산물을 내보낼 때도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과 채널이 없어서 못한 것인데, 우리 <에세이철학회> 사이트가 그것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사이트에는 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과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고 들어오고 있고, 영어로 댓글도 달리고 있다. 우리들도 점차로 프랑스와 독일을 위시한 유럽권 및 영미권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한 달 내에 크게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어서 우리 사이트가 외국에서 먼저 뜰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금까지 많은 한국의 철학자들은 한글만으로 철학을 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영어가 그랬던 것처럼 한글'이야말로 철학을 할 수 있는 '최적화된' 언어라 생각하고 있다. '에세이철학'은 일상언어에 기반한 한글 철학을 세계인에게 선보일 것이다.
이 밖에도 우리가 할 일은 여러 가지 많다. 그런데 이런 거창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자 하면서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바한다면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맹자는 그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盡其心者 知天矣)고 했다. 우리들 자신이 열심히 준비를 하고 노력하려 할 때 비로소 일을 도모하고 성사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