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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의 속담철학 10탄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 타라고
  • 등록 2026-04-08 22:30:59
  • 수정 2026-05-07 11:16:23


한국의 1980년 대는 정말 대단한 시대였다. 1980년 5월 전두환은 순식간에 '서울의 봄'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바로 그 여세를 몰아 광주에서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살육전을 벌였다. 이후 한국의 1980년대는광주항쟁의 진상을 밝히려는 반 군부 독재 투쟁이 강력한 시대정신을 형성했다. 대학가는 연일 매케한 최루가스로 뒤덮였고, 연세대 옆에 위치한 세브란스병원의 환자들까지 곤욕을 치뤘다. 캠퍼스 곳곳에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무장 학생들이 몽둥이들을 들고 지키고 있었다. 대학의 정문은 상시적으로 학생들과 전경들이 밀고 당기는 전투를 벌이는 장소였다.




길게 이어진 백양로 옆의 게시판들은 군사정부를 성토하는 대자보들로 가득찼다. 특히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도서관 앞은 운동권 학생들의 데모가 매일같이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공장의 불빛' 같은 사회극도 벌어지고, 하회탈을 뒤집어쓴 춤꾼들의 탈춤놀이도 이루어졌다. 현실은 엄혹했지만, 학생들 얼굴의 면면에는 저항으로 똘똘 뭉친 투쟁의식이 넘쳤다. 따지고 보면 그 때처럼 대학가의 언로가 활성화된 적이 없었다. 비록 강의실은 휴강이나 공강 등으로 텅텅 비어 있었지만, 캠퍼스 곳곳은 학생들의 뜨거운 열기로 왁자지껄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더이상 독재정권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던 전두환 은 노태우 6.29 선언을 하면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일정 부분 받아들였다. 1987년은 시민들이 이룩한 민주화 혁명이 성공한 해였다. 물론 그 해 겨울 양김씨의 분열로 정권은 노태우에게 넘어갔지만, 시민들의 뜨거운 열기는 1980년대 내내 이어졌다.




이 당시에는 단순히 반독재 투쟁만 한 것이 아니다. 이른바 지식인 이론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의 성격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이어졌다. 한국은 식민지인가, 독립된 자주의 국가인가, 한국 경제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혁명의 주체와 적은 누구인가 등 오늘날 처럼 해외에서 빌려온 추상적인 이론들의 디스플레이를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한국사회를 대상으로 삶의 현장에서 숙성된 이론들 간의 투쟁이었다. 이때 식민지반봉건사회론, 남미의 종속이론과 같은 주변부 자본주의론, 국가독점 자본주의론, 민족 민주 혁명론(NDR), 민중 민주 혁명론(PDR) 등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자고나면 이론 투쟁의 전선이 수시로 달라졌다. 사상 투쟁이 너무 격렬하고 분화도 빠르게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투쟁 현장에 연관되지 않는 한 이론들의 정체성을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생인 이진경이 <사회구성체방법론>이라는 책을 내면서 일거에 실타래 같은 사상투쟁들을 정리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은 박사학위를 받고서도 자기 말 한 마디 하기도 힘든 현실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당시보다 지금이 학문적으로 퇴조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거진 40년 전 이야기지만, 그때처럼 한국의 지식인들의 이론 논쟁이 격렬한 적이 없었다고 본다. 한 마디로 한국의 1980년대는 한국사회가 드물게 경험한 지적 르네상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사회변혁을 위한 이론적 협력을 위해 10여개의 학술단체들이 모여 '학술단체협의회'를 구성해서 활동을 했고, 한국 헤겔학회와 서울대 사회철학 연구실 팀은 '변혁의 무기로서의 철학'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한국철학사상연구회'를 새롭게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1990년대의 소강상태를 거치고, 특히 1997년 IMF를 경험하면서 이론적 열기는 상당히 식어 버렸다. 그후로는 사회 변혁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생존과 관련된 '각자도생'(各自圖生)이 훨씬 더 중요했다.




(AI의 그림)


2000년대 들어서면 정치적 논쟁과 비판 운동은 더 이상 대학 안이 아니라 대학 바깥의 다양한 형태의 시민운동으로 바꼈다. 대학은 점점 더 침묵과 냉소의 분위기로 흘러갔고, 지식인들의 자기 검열 분위기가 일상화되었다. 이제는 학내 문제들 조차도 외면할 만큼 대학 내 지식인들의 묵시적인 순종이 일반화되었다. 1980년대에 보여주었던 자유로운 언론이나 비판이란 개념은 거의 완벽하게 실종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도대체 자유와 민주, 비판과 창의를 말할 수 있는 집단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대학은 점점 더 '지식 기술자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대학은 박사급 연구자를 70% 이상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바깥의 연구소나 기업 소속 연구소의 생산성 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AI의 급속한 발전은 지식 생산 기지로서의 대학의 위상을 위협하고, 줌(Zoom)이나 기타 국경을 넘어선 온라인 강의는 대학 건물에 고정된 대학 강의실의 존립도 위협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학 안팎으로 달라진 환경 문제가 크다 하더라도 지식인들의 자기검열과 침묵의 책임이 탕감될 수는 없다. 지식인 집단들 사이에서 "모난 돌이 정을 맡는다"는 피해의식이 점차 확산된 탓이다. 이런 분위기에 저항하던 소수의 지식인들은 부산대의 한 교수처럼 학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살을 하거나 대학을 떠나 바깥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는 말은 이 시대 지식인들의 생존방식이 되고 말았다..




이 모든 현상은 대학과 사회, 문화와 출판을 포함한 한국의 지식 생태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무너진 지식 생태계를 복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살아 남을 수 없다. <에세이철학회>의 최대 목표 중의 하나는 이런 생태계의 복원에 있다. <에세이철학회> 는 몇몇 인문학 스타들의 탄생이 아니라 한국의 지식 문화계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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