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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에서 이콘의 역할과 상징성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2 13:05:49

이콘이란 정교회에서 신앙의 중요 요소인 그리스도, 성모, 성인 등의 성화상을 그린 것을 말한다. 신도의 신앙 생활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성당 내부 뿐만이 아니라 신자들의 자택에도 안치되어지며 성상과 같이 숭배된다. 판화 형식의 것이 가장 많고 목판의 네 둘레를 남기고 안을 얇게 파고 거기에 마포를 붙이고, 위에 아교를 이용해서 석고의 가루를 도포하고, 이 위에 텐페라 그림물감으로 성화를 그리는 형식이다. 이러한 이콘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정교회가 두번째로 생기고 비잔틴 정교회에서 최초로 독립한 불가리아 정교회는 가장 오래된 이콘이 9세기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제1 불가리아 제국의 보리스 1세가 세례를 받으며 불가리아 정교회의 지지자가 될 때 이 때쯤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가리아 플로브디프에서 촬영한 정교회 이콘

그런데 이콘을 상세히 보면 수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성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예수도, 마리아도 수인 자세를 취하는데 아시아에서나 나올 법한 수인 자세는 아시아에서 볼 때, 적어도 9세기 이전부터 수인 자세를 한 불상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과연 이 자세가 불교만의 것일까? 이 분야에 있어 나는 단순히 이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나보다 더 뛰어난 이 분야 전문가 분들이 나머지는 판단할 부분으로 생각된다. 작년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저녁 수도 소피아의 소피아 광장에서 평화기원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유대교, 개신교, 이슬람, 아르메니아 정교회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정작 불가리아 정교회 지도자들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불가리아 제2의 도시 플로브디프의 니콜라이 주교는 이날 신도들 앞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 목적은 모든 교회를 교황 중심으로 통합해 적그리스도(가짜 그리스도)를 마중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니콜라이 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두고 이는 “정치적 행위이자 정교회에 대한 공격”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 불가리아 정교회 수장인 네오피트 총주교와 만난 후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에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불가리아 정교회는 사제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기도하거나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해 교황은 홀로 기도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불가리아의 냉대는 전부터 예견되었다. 11세기에 갈라진 정교회와 카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통해 화해의 계기를 마련했으나 완전한 화해에 이르지는 못했다.


불가리아 정교회는 그중에서도 가톨릭 교회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 인구 710만명인 불가리아에서 가톨릭 신자는 5만 8,000명으로 1% 미만이다. 불가리아 정교회는 난민 문제에서도 포용을 주장해온 프란치스코 교황과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불가리아 정교회는 유럽 난민 문제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5년 성명을 내 난민은 ‘침입자’라면서 난민을 수용하지 말라고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불가리아 정부는 2015년 터키와의 국경에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철책을 건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소피아 외곽의 난민센터를 방문해 난민들의 고통을 예수의 십자가 고통에 비유했다. 이전에 루멘 라데프 불가리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눈과 마음을 닫지 말아달라”며 적극적인 난민 수용을 요청했다고 한다. 


성당 내부와 외부에 그려 넣은 프레스코화들을 보면 엄숙함을 넘어 어떠한 철학적인 부분보다 불가리아 정교회의 정교 성인들을 그려 넣고 이를 기념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성인 뿐 아니라 성상을 많이 그려넣었는데 이는 아마 성상숭배금지령으로 인해 성상파괴운동이 진행되면서 성상 대신 성화를 선택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로마 카톨릭과 비잔틴 정교회는 성상(聖像) 사용 문제를 두도 대립했다. 그것은 8세기에 비잔틴 제국의 일부 황제들이 십자고상 등 예배에서 사용해온 성상을 금지한 반면, 교황청은 성상의 사용을 주장하면서 두 교회가 대립하게 된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성직자를 견제하고 교회에 대한 간섭의 기회로 삼기 위해 성상 사용을 금지하는 이른바 성상 파괴(Iconoclast) 운동을 일으키면서 교회나 수도원이 성상사용금지에 반발할 경우, 그것을 구실로 그들 소유의 땅을 몰수해서 국가재정을 확충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성상파괴운동이 정치적의 의도와 음모가 결부되어 발생되면서 성화, 프레스코화로 성인과 예수, 마리아를 그리는 운동이 빠르게 확산된다. 서기 6세기 이후에는 성상 대신 대부분 프레스코화 그림들이 유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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