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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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려 하다 보면 평소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많이 튀어 나온다. 잘 사용하던 컴퓨터가 오류가 생기고 작업한 결과물을 프린팅이라도 하려 하면 용지가 없다. 일 때문에 컨택을 하려 하면 전화 연결이 되지 않고, 평소 친하게 이야기하던 사람이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라 생각해서 그런지 갑자가 버벅댄다. 일이 진척이 안 되다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일을 진행하면서 리스크에 노출되다 보면 두려움도 생길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수도 없이 생긴다. 내가 헛짓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면서, 처음 먹었던 강렬한 동기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한 마디로 실수나 오류, 장애와 위험 등이 새로운 시작의 앞길을 가로 막는 것이다.
개미가 먹이를 구하는 동선을 보면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당히 어지럽다. 좌우로 갔다가 상하로도 움직이는 등 상당히 복잡하다. 그런데 일단 먹이를 구해서 개미집으로 돌아갈 때는 먹이 구할 때와 달리 동선이 단순하고 일직선이다. 먹이를 구할 때는 헤맬 수록 반경이 넓어 훨씬 효율적이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헤맬 필요 없이 직선으로 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개미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지 아니면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헤맴의 경험'이 없다면 먹이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이런 경험을 외면한 체 "꽃길만 가라"는 말은 덕담이 아니라 오히려 "지옥으로 가라"는 말도 될 수 있다. 현대인들이 알레르기성 피부염을 과거 보다 훨씬 많이 앓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나친 청결 때문이다라고 많은 피부과 의사들이 지적하고 있다. 꽃길이나 청결이 어떤 의미를 띄고 있는 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문호 Goethe는 '헤맨다'(irren)는 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적이 있었다. 진라를 구하는 과정에는 이런 헤맴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어떻게 바로 진리를 구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행위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물론 모든 '헤맴'이 유익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어떤고통은 깨달음을 주지 못하고 무한 반복되는 경우도 많다. 다시 말해서 시행착오의 경험을 통해 깨달음과 눈뜸의 과정이 일어날 때 그것이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20세기 영국의 뛰어난 과학철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인 K.R. Popper는 이런 헤맴과 시행착오를 과학방법론의 수준으로까지 끌어 오렸다. 포펴에 의하면 모든 과학자들은 새로운 현상을 탐구할 때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그런데 이 가설이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면 그것을 수정해서 다시 가설을 세운다. 이렇게 가설의 정립과 수정, 그리고 재 정립같은 시행착오의 과정이 가설의 완성도를 높여 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과 비과학의 차이는 이전의 Vienna Circle의 학자들이 주장했던 '검증원리'(Principle of Verification) 처럼 닫힌 원리가 아니라 끊임없는 수정과 반증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반증가능성'(Principle of Falsifiability)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이론은 반증이 가능할 때 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톤이나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의 사상들, 그리고 모든 종교나 20세기에 새로 주목받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Psychoanalysis) 이론은 반증을 배제함으로써 과학의 반열에 올라갈 수 없다. 이들은 한결같이 오류를 제시하면 다른 이유를 대서 빠져나감으로써, 논박을 허용하지 않고 그들 입장의 완결성과 전체성을 유지하려 들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어떤 경우이든 반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00년 서양철학사 가운데서도 가장 난해한 철학서로 알려진 G.W.F. Hegel의 <정신현상학>(Phenomenology of Spirits)도 따지고 보면 '자연적 의식'이 경험하는 오류의 역사나 다름없다. 이 책은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데, 하나는 실제 '세계 경험'을 하는 '자연적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경험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정신'이다. 이 자연적 의식은 의식과 자기의식, 이성과 정신, 종교와 절대지의 단계를 거치면서 궁극적인 앎을 추구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박에'(unmittelbar)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매개(Vermittelung)를 거쳐서 이루어진다. 직접성과 매개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의 하나이고, 오늘날 현대 분석철학에서도 분석 철학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주고 있는 개념 중의 하나로 논란이 많다. 자연적 의식은 나름대로 자가의 앎에 대해 확신을 갖고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등의 경험을 한다. 하지만 경험의 과정은 여지 없이 그것을 깨버린다. 여기서 자연적 의식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새로운 단계로 올라선다. 이런 앎과 그 앎이 해체되는 무수한 과정은 자연적 의식의 입장에서는 끊임없는 '회의'의 과정이자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은 진리를 구할 때 필요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말한 '호기심'(Taumazein) 이상으로 숱한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der Mut zur Wahrheit)라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의 음식에서 장은 거의 필수적이다. 이 장을 담그려 하다 보면 구더기기 끓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간장이나 된장을 재래식 항아리에 담가 장독대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런데 날이 좋아 햇볕이 들면 항아리 뚜껑을 열어서 햇볕을 받게 한다. 강렬한 햇볕이 장의 숙성을 돕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냄새를 맡고 벌레들이 들어올 수 있고, 구더기가 끓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을 포기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느 정도의 장애나 위험은 불가피하다. 그것이 무서워 새로운 일을 못한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