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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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성령원에 장식을 했다는 기록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첫 기록이며 1600년대에는 독일 전역에 기록이 남아있다. 이 때문에 프로테스탄트의 창시자 마르틴 루터가 기원하여 이어왔다는 설이 있다.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서로 기원이 1441년 탈린의 트리로 알려져 있지만 1510년 라트비아 리가의 검은머리길드에서 유래한 것이다며 서로 논쟁 중에 있다. 이 당시에는 이 지역 모두 독일령이나 한자동맹 권역이었기 때문에 독일에서 기원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반면 이전부터 상록수가 고대 종교에서 생명력의 상징이었고 기독교가 동지와 함께 이 상징을 물려받은 것이란 주장도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게르만족의 영지에서 인신공양 풍습을 대체하고 나무를 베어버린 성인인 성 보니파시오라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그는 웨섹스 출신으로 7~8세기에 활동했으며 헤센 지방에 있던 도너 혹은 토르의 나무가 우상 숭배라며 그 나무를 벤 뒤 그것을 가지고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역시 설에 불과하다.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크리스마스 트리,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일부 기록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는 500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전설들 중 하나에 따르면, 1510년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리가의 상인과 장인들이 모인 무역 상인 연합, 즉 길드였던 중세시대의 검은머리형제단에 의해 세워지고 장식되어 졌다고 검은 머리 성당(House of Blackheads, Melngalvju nams)은 기록하고 있다. 이 크리스마스 트리는 견과류, 사과, 말린 딸기류, 꽃, 리본, 장난감 수공예품 등으로 장식된 다음 검은 머리 성당 근처의 중앙 시장 광장에 멋지게 전시되었다고 한다. 한편, 또 다른 설화에 따르면 검은 머리 형제단이 연휴가 끝날 무렵, 나무를 종이꽃으로 장식하여 불을 붙여 태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늘날, 리가 시청 광장에는 옛날 리가의 상인들이 세계 최초로 ‘장식된 나무’인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던 곳 부근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기념하기 위한 표식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해마다 라트비아 리가 시장(市長)이 엄선한 거대한 전나무 트리는 이 전설적인 장소에 세워져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 전통을 계속 지켜 나가고 있다.
트리는 독일에서 유행하던 풍습이었지만 하노버 왕조의 영향으로 영국에도 전해졌으며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알버트 대공의 영향으로 대중화되었다고 전해진다. 그 후 미국을 거쳐 서양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었고 기독교가 분포되어 있는 곳에서는 성탄절마다 즐기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종교적인 상징물인 이유로 논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있다. 2006년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유대교 측에서 공공장소에 종교 상징물이 있다는 항의가 들어와 철거된 적이 있다. 북독일에서 프로테스탄트 사이에서 유행했기 때문에 카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에서는 트리를 설치한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다. 최초의 동구권 출신 교황인 성 요한 바오로 2세 때인 1982년부터 성 베드로 광장 가운데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한 이래 현재까지 매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트리를 장식하는데, 각 국에서 여기에 필요한 나무를 기증하고자 하는지라 교황청의 선택을 받을 경우 이를 큰 영예로 여긴다고 전해진다.
러시아의 경우, 성탄절에 앞서 40일간의 금식 기간이 있다. 그중 가장 엄격한 날은 마지막 날인 '소첼닉(Сочельник,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이날엔 불리거나 삶은 쌀, 밀, 강낭콩, 완두콩, 채소만 먹을 수 있다. 금식은 날이 어두워지거나 예수가 탄생할 때 베들레헴 위에 떴던 별을 상징하는 첫 별이 보일 때 끝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정교의 성탄절 의식에 이교도적 풍습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1월 6일은 강탄절에서 주현절까지 12일간 계속되는 고대 슬라브 축제 '스뱌트키(Cвятки)'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 때 젊은이들이 즐기던 오락은 점을 보거나 집집이 돌아다니며 복을 빌어주고 음식을 얻는 '콜랴도바니예(Колядование)'였다. 고대 루스 시대에서 제정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이 기간이면 저녁마다 처녀 · 총각들이 모여 동물이나 신화 속 인물로 꾸미고 마을과 시내를 돌았다. 불 켜진 집을 방문해 성가와 집주인을 칭송하는 축가를 부르며 음식을 요청했다. 집 주인은 손님들을 맞아 성대히 대접했다.
이 때 인색하게 굴면 한 해 운수가 나빠진다고 여겼다. 러시아의 성탄절은 1월 7일이다. 러시아 정교회가 제정 러시아 시기의 달력인 율리우스력을 따라 축일을 정한다. 표트르 대제 때 도입된 율리우스력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에 비해 13일 뒤늦다. 따라서 1917년 2월 혁명도 현재의 달력으로 말하자면 3월 8일에 발생했고, 볼셰비키가 정권을 장악한 10월 혁명도 11월 7일에 발발했다. 소련 정부는 그레고리력을 따랐기 때문에 혁명기념일은 11월 7일에 기념되곤 했다. 러시아 겨울 도시 풍경을 보면, 각 도시의 중앙 광장이나 큰 쇼핑센터에 알록달록한 전등으로 장식된 거대한 트리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것은 러시아 고유의 풍습은 아니었다. 러시아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도입된 유래는 독일 풍습을 따라 성탄절에 각 가정마다 전나무를 세우도록 명령한 표트르 대제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풍습이 러시아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 예카테리나 여제 시기였다.
당시 페테르부르크에 살고 있던 독일인들은 성탄절에 트리를 장식했는데 이러한 풍습이 러시아 귀족들 사이에 퍼져나간 것이다. 18세기 러시아 귀족들이 유럽 문화를 적극 수용, 향유하는 코스모폴리탄적 특성을 띠었던 점을 고려하면, 크리스마스 트리는 귀족들 사이에서 새롭게 유행하는 유럽 문화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러시아어로 욜카라고 부르는 전나무를 세우는 풍습이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퍼져나간 것은 19세기 말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