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능력과 존재적 책임에 대하여》
-지식과 권위의 크기보다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한 이유
인간 사회에는 자신을 현자라고 칭하거나 타인으로부터 현자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물론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지식과 통찰력, 경험적 능력을 축적한 사람들의 전문성과 성취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환경과 경험, 학습과 노력의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능력과 성과를 형성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존재의 지혜와 존엄성까지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식과 능력은 그 자체로 완성된 가치가 아니며, 어떠한 방향으로 사용되고 무엇을 위해 활용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이 누리는 대부분의 기회는 오직 개인의 노력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자연이 제공한 생존의 터전과 수많은 존재의 노동, 이전 세대가 남긴 지식과 기술, 역사적 희생과 사회적 협력, 그리고 우연히 주어진 환경과 시간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현재의 개인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결국 개인의 성취조차 수많은 존재와 사건, 시간의 축적 위에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지식과 능력을 획득한 존재일수록 자신이 누려 온 기회의 기원과 그에 내재된 역사적 의미를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개인의 소유나 우월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것보다, 그 기회를 통해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널리 이로운 의미를 되돌려 주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끄러움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무조건적인 죄책감에 빠지는 감정이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것과 실제로 돌려준 것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를 점검하는 윤리적 감각에 가깝습니다.
반면 일부 사기적 현자나 권위주의적 지식인에게서는 능력에 수반되어야 할 책임과 성찰보다 권위와 과시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절대화하고 타인의 판단을 낮추며, 검증받아야 할 주장조차 권위라는 방패 뒤에 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지식과 신성, 도덕적 우월성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공동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돌아보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권위나 자기표현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정당한 전문성과 성취는 존중받아야 하며,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일 역시 사회적으로 필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능력이 객관적인 검증과 책임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타인을 지배하고 자신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지에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차이는 지식의 많고 적음보다는 지식을 대하는 태도와 그것을 사용하는 방향성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지혜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증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영역을 인정하고, 잘못된 판단을 수정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이 타인과 세상에 어떠한 결과를 남기는지 끊임없이 살피는 과정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지식과 성찰이 깊어질수록 권위가 높아지는 것만큼이나 겸손과 책임의 범위도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식과 성찰이 심화될수록 순수한 의지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 있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아무런 계산 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작은 생명의 행동, 자신에게 주어진 터전과 온기를 다른 존재와 나누는 자연의 모습, 보상이나 명예를 기대하지 않고 부당함에 맞서며 타인의 삶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에는 지식과 권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한 의지는 때로 거대한 학문적 성취나 사회적 지위보다 더 깊은 존재적 의미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지식과 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이성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하는지를 되묻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이 깊어질수록 순수한 의지를 이해하고, 이성이 성숙할수록 그 의지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존재적 성숙의 중요한 기준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특정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이유로 더 많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획득하기까지 자신에게 기회를 제공한 수많은 존재와 역사에 감사하며, 그에 합당한 쓰임을 고민하는 태도입니다.
결국 지식과 지혜의 가치는 소유한 정보의 양이나 사회적 지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보다 그 지식을 통해 무엇을 보호하고 개선했는지, 얼마나 높은 위치에 올랐는가보다 그 위치에서 무엇을 책임졌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가보다 스스로 얼마나 정직하게 자신을 검증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누구도 완성된 존재일 수는 없습니다. 판단의 오류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객관화와 정합화, 구조화를 시도해야 하는 미완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방향만큼은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제공한 기회를 개인의 부귀영화나 우월성을 증명하는 데 소진하기보다, 가능한 범위에서 더 넓은 존재들에게 이로운 의미로 되돌려 주려는 방향입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이나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태도와는 다릅니다. 스스로의 생존과 존엄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역량을 더 넓은 존재적 가치로 연결하려는 노력입니다.
결국 지혜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능력 앞에서 얼마나 합당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성찰이 없다면 뛰어난 지식도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높은 지위도 자기기만의 울타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족한 능력과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진실하게 노력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타인을 위해 사용하려는 순수한 의지는 그 자체로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지식은 존재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소유물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더 합당하게 이해하고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이 충분히 성숙했는지를 확인하는 하나의 기준은, 보상받기 어려운 순수한 의지와 가여운 노력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으며, 그 가치를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가에 있을 것입니다.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