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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재정의 빨대가 아니라 생명의 파수꾼이다 —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발언을 비판하며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10-17 13:13:16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이른바 '소방 재정 빨대' 발언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추 지사는 지난 13일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소방이 재정에 큰 부담을 준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건비가 1조 원 이상 들어간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아무리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소방 조직을 어떻게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언어 감각과 공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책임 의식마저 의심스럽다.

물론 추 지사가 제기한 문제 자체는 검토할 가치가 있다.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되었음에도 지방자치단체가 상당한 재정 부담을 지고 있다면 국가와 지방정부 사이의 비용 분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재정 구조의 문제이지 소방관들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구별하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재정 제도의 불합리를 비판해야 할 사람이 정작 소방 조직을 재정의 빨대에 비유했다면 비판의 대상부터 잘못 선택한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발언 직후 부천의 화재 현장에서 여러 소방관이 부상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려고 위험한 현장에 뛰어든 소방관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동안, 그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예산은 '재정을 잡아먹는' 비용으로 표현되었다. 이보다 더 기막힌 대비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오래전 프랭크 맥클러스키의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북섬, 2005)를 번역한 적이 있다. 철학교수가 소방관으로 활동하면서 체험한 삶과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성찰한 책이다. 당시 역자 서문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인간은 불이 주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 단련되기도 한다. 모름지기 소방관들은 그 파괴의 현장에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인내와 헌신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구도 접근하기 꺼리는 곳으로 뛰어 들어 파괴의 불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영웅들이다."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날마다 화재 현장에 뛰어 들어 목숨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소방관들의 활동이 없다면 우리의 재산과 안전을 누가 보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화재 현장에서 생사를 가늠하는 전투를 벌이면서 인명구조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드물게 전쟁 상황에 비교해 볼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영웅적 전투가 이 사화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고 있음에도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낮다는 점이다. "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소방관은 다른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빠져나오는 위험한 장소를 향해 거꾸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일반인에게 불은 피해야 할 공포이지만 소방관에게 불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맞서야 하는 현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을 희생할 위험을 감수하면서 타인의 안전을 지킨다.

여기서 소방관의 활동은 단순한 직업적 노동을 넘어선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인간의 자기의식이 타인과의 관계, 특히 생사를 건 투쟁 속에서 중요한 전환을 경험한다고 보았다. 소방관의 활동을 헤겔의 인정투쟁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가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인정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소방관들의 위험한 노동에 의존하면서도 정작 그 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모순이다. 우리는 소방관을 영웅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게 영웅에 걸맞은 대우를 하지 않는다. 화재 현장에서 순직하면 잠시 애도하고 추모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위험수당과 인력 확충,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면 예산이 부족하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다. 영웅이라는 말이 실질적인 보상을 대신하는 값싼 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첫째, 소방 재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특정 지방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취지에 맞게 중앙정부가 안정적인 재원을 보장하고,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재정 격차 때문에 소방 서비스의 질이 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인건비와 필수 장비, 안전시설에 대해서는 국가의 지원 원칙과 분담 기준을 제도적으로 확립할 필요가 있다.

둘째, 현장 소방관의 처우를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위험수당을 업무의 위험도에 맞게 현실화하고, 부족한 인력을 확충하며, 노후 장비를 교체해야 한다. 화재 진압뿐 아니라 구조와 구급 활동까지 담당하는 소방관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회복 시간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위험한 노동을 개인의 희생정신에만 의존하는 국가는 책임 있는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셋째, 소방관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반복적으로 참혹한 사고 현장을 목격하는 소방관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에 노출될 수 있다. 직무 관련 질병과 부상에 대한 치료와 보상을 강화하고, 전문적인 심리상담과 재활 프로그램을 상시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순직 소방관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일회성 위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넷째, 소방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소방관들의 현장 경험과 노동의 의미를 학교 교육과 시민교육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재난 현장의 영웅담만 소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위험 속에서 일하고, 어떤 제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지를 사회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소방관의 전문성과 경험이 안전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실질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다섯째, 정치인들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예산을 절약하는 것도 정치의 중요한 임무이지만 어디에 돈을 써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투자는 단순한 소비성 지출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존속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비용이다. 정치인은 예산의 크기뿐 아니라 그 예산이 지키는 인간의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추 지사의 발언이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가 다름 아닌 경기도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소방 조직에 대한 예산 지원과 안전정책을 책임지는 사람이 소방을 재정의 빨대에 비유했다는 것은 단순한 말실수로 넘기기 어렵다. 경기도는 국가직 전환 이후 지방재정 부담의 불합리를 강조하려던 취지라고 해명했고, 민주당도 소방관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추 지사 자신의 분명한 사과와 구체적인 개선 약속이다. 정치적 언어의 책임은 결국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나는 『소방관이 된 철학교수』의 역자 서문에서 소방관들이 매일같이 화재 현장에서 생사를 가늠하는 전투를 벌이면서도 사회적으로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 문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근대 정치철학이 반복해서 제기해 온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대답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데 있다. 국가가 수많은 예산을 편성하고 복잡한 행정조직을 유지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소방관들에게 쓰는 돈이야말로 국가의 존재 이유에 가장 충실한 지출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정치인은 예산을 숫자로 계산한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그 숫자 너머에서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정치인이 계산하는 것은 돈이지만 소방관이 지켜내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생명이다.

소방관들이 국가재정에 빨대를 꽂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와 사회가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빨대를 꽂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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