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셀 모스의 선물론 강독 5
Tu le sais, si tu as un amien qui tu as confianceet si tu veux obtenir un bon résultat,il faut mêler ton âme à la sienneet échanger les cadeauxet lui rendre souvent visite.너도 알다시피, 네가 신뢰하는 친구가 있고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면, 너의 영혼을 그의 영혼과 하나로 섞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자주 찾아가야 한다.마르셀 모스는 ...
딸
비탈진 오솔길에서 내 뒤를 멀리서 따라오던 운무가 어느새 나를 앞질렀다. 광장에 올라서자, 운무는 귀신들의 헐렁하고 하얀 옷자락처럼 사람들 사이를 스멀스멀 흘러 다녔다. 그런 운무 속에서 까무잡잡한 피부의 현지인 관광객은 몹시 즐거워하는 게 신기했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혼부부, 핵가족이 대부분이었지만 대가족도 있었다. 한 줄은 벤치에 앉고, 한 줄은 그 뒤에 주르르 서도 모자라 벤치 앞에도 서넛이 털썩 주저앉아야 할 만큼 식구가 많은 대가족이었다. 그 많은 식구를 향하여 카메라를 들고 있던 여학생이 내게 카메라를 내밀며 미소 지었다. 셔터를 눌러 달라는 거였다.
“스마일. 하나, 둘 …….”
번창한 가족의 행복한 일원임이 자랑스러운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빛처럼 번졌다. 카메라를 돌려받으며 여학생은 ‘매니 매니 쌩큐’하며 귀엽게 인사했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누구 못지않게 소중한 딸이라는 뿌듯한 자부심 속에서 자라는 딸이 분명했다. 그러나 속눈썹을 스치며 맺힌 운무가 만든 이슬방울로 인하여 울다가 웃다가 하던 누군가의 얼굴이 연상 되었다.
나에게도 딸이 크는 걸 바라보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언제였는지를 금방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아득했다. 아득하고 아득하여 전생인 듯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마자, 그러니까 내가 콜카타에 도착하기 반년 전에, 딸은 영국의 사립 고등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아내도 같이 떠났다. 둘 다 기어코 떠났다.
나도 공항에 나갔던가? 아무리 뒤져도 기억나는 건 강아지 코코뿐이었다. 딸은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행렬 속에서도 코코를 안고 있었다. 딸은 코코를 데려가지 못하는 것을 마지막까지 안타까워했다. 딸의 이모가 코코를 받아 안았다. 딸의 이모는 코코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물을 흘렸던가?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 무렵의 기억은 거의 삭제되었다. 날마다 독한 술로 지웠기 때문일 것이다.
딸은 애들 말로 ‘짱’이었다. 지느니 죽는 게 낫다는 성깔로 싸우다 보니 중학교 때부터 짱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격투기를 배웠는데,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는 손에 붕대를 두르고 다니기도 했다. 어지간한 여자애들은 손을 아끼느라 정권 단련을 안 하는데 얘는 그걸 했다.
얘 나름대로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다른 애들은 체구가 부쩍부쩍 크는데 얘는 키가 안 크는 거였다. 체구에 눌리다 보니 상대를 단번에 제압하기 위한 기술을 연마해야 했다. 주변의 물건이나 연장을 들고 치거나 던지는 깡도 키워야 했다. 그 연장선에서, 그러니까 오직 맨손일 때를 대비해서 정권 단련까지 했던 거였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중학교 때보다 싸움이 잦았다. 타교에서 퇴학당한 짱들이 얘네 학교로 전학을 올 때마다 얘한테 맞짱을 뜨자고 했기 때문이다. '덩치 크고 성깔 더러운 년들'과 싸워서 매번 이기긴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강남에서 온 년'은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화장실에서 붙었다. 막상막하였다. 그다음에는 한밤중에 동네 버스 종점 주차장에서 붙었다. 오토바이를 몰고 온 걔네 오빠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가운데서 둘이 붙었다.
주먹질 발길질에는 얘가 우세했다. 반면에 걔는 맷집이 셌다. 아무리 맞아도 꿀리지 않고 덤볐다. 걔는 코피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피를 본 야수처럼 오히려 악을 쓰며 덤비는 서슬에 얘는 지치기 시작했다. 그때 순찰차가 왔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싸우는 둘을 가운데 두고 원을 그리며 돌던 오토바이들은 흩어졌고 둘은 경찰에 의해 순찰차에 실렸다.
딸은 그 일로 인해 전보다 더 사나워졌다. 학교만 갔다 오면 당장 영국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달라고 울부짖었다. 타교 짱이 전학 올 때마다 싸우다 보면 언젠가 둘 중 하나는 죽을 수도 있다고 하소연도 했다. 대안학교를 제시했지만, 그것이 국내에 있는 학교라면 안 간다고 했다.
한 발 더 양보해서, 영국식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인도의 기숙사 학교로 가라고 했다. 인도의 유명한 기숙사 학교에 보내는 비용은 국내의 대안학교에 보내는 비용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또한 딸의 유학을 핑계로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인도에 가끔 가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딸은 막무가내였다. 미국이나 영국의 사립 학교를 고집했다. 딸은 아빠인 나에게 편지도 썼다.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장학생이 되어 아빠의 부담을 덜겠다. 큰이모처럼 변호사가 되어 집안의 권리와 재산을 지켜 주겠다. 그러나 유학을 못 가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썼다. 그런 편지를 할아버지에게도 썼다.
* 다르질링의 초라스타 광장
무상 스님
딸이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의 골자는 아빠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과 같았다. 단지 맨 끝 문장, 즉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는 부분을 빼버렸다는 점만 달랐다. 그런 식의 최후통첩은 아빠에게는 몰라도 할아버지에게는 안 통한다는 애 엄마의 충고가 있었을 것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머리가 서너 개나 되는 방울뱀이 되어 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알리멘트의 주인장 타파였다. 그는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쉬듯이 말했다.
“밑에 네 친구가 왔다.”
“친구?”
“주정뱅이 말이야. 내가 뭐랬어. 숙소를 가르쳐 주면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어?”
“안 가르쳐 줬어. 어떻게 여길 알았을까……. 어쨌든, 있다고 했어?”
“아니, 있나 없나 본다고 했어. 그 친구는 벌써 한잔했더군. 술 냄새가 역해.”
“체크인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어야지.”
“여기 묵는다는 걸 그에게 말하지 않았던 거야? 젠장. 그 작자에게 속았네.”
“아무튼 방에 없다고 해 줘. 미안.”
타파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 방울뱀의 세 대가리 중 일마라는 대가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곡조였다. 가사도 있었다. 일마 옆의 절마도 따라 불렀다. ‘내려가서 미셸과 맥주나 한 병 마시라’고. 그러자 글마가 점잖게 거들었다.
“타파가 좋아할까? 타파는 미셸을 아주 싫어해. 데리고 나가서 스바나네 가게로 가는 게 좋을 거야.”
“일마! 절마! 글마! 너희들 셋 모두 아까 이 방으로 올라올 때는 ‘오늘만은 그냥 자자’라고 그러지 않았어?”
제각기 떠드는 세 개나 되는 머리를 모시는 머리를 흔들면서 나는 결국 식당으로 내려갔으나 미셸은 거기 없었다. 계산대에 앉은 타파가 내게 내민 냅킨에는 ‘내일 오전에 다시 오겠다’라는 미셸의 메모가 휘갈겨져 있었다.
제멋대로 사는 놈은 어쩔 수가 없다. 아침 일찍 시킴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이미 말했는데도 오전에 온다니 기가 막혔다. 그래 너는 네 멋대로 살아라. 나는 내 멋대로 살겠다. 맥주를 주문하고 식탁에 앉자, 술 귀신 세 마리(일마, 글마, 절마) 가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쫓아가라’라고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때 위층에서 계단을 밟고 사뿐사뿐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두꺼운 회계 장부 같은 알리멘트의 비망록을 안고 내려온 그녀는 옥상의 삭발이었다. 바쿠 위에 자주색 우모 재킷을 걸치고 자주색 계실 모자를 썼다. 영락없는 나니(티베트 불교의 여승)의 모습이었다.
그럴듯하다 싶어서 내심 코웃음 치며 바라보았다. 그녀는 비망록을 카운터 맞은편 책장에 꽂았다. 그러고는 곧장 나에게로 다가왔다. 거동에서 자연스러운 기품이 느껴졌다. 티베탄 전통의상인 바쿠가 풍기는 기품인지도 몰랐다.
“좀 앉아도 되나요?”
“왜 안 되겠습니까.”
예절 바르고 기특한 이 몸이 몸소 일어서서 그녀가 앉기를 기다려 주었다. 그녀 또한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앉았는데 앉음새가 단아했다. 내가 아는 그 여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주문한 맥주가 오자 스님이 말했다.
“맥주로군요. 콜카타에서는 주로 위스키를 마시지 않았나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마리아 호텔 옥상에서 어울린 사람 중에 저도 있었어요."
"삭발했던 분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한동안 머리를 기르고 다녔죠. 만행 중에는 그게 편하다 싶었는데 아니더군요. 조심해야겠다 싶어서 다시 밀었어요."
"이런! 그러면 스님이세요?"
"네. 중입니다. 절집에서는 무상 스님이라고 부르죠.“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니 과연 승려였다. 평범해 보이지만 흠결 없이 깨끗한 얼굴, 눈빛이 의외로 맑았다. 술 취해서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마시고 ‘동작 그만 개새끼야, 차렷 개새끼야’ 같은 말을 뱉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이는 애매했다. 마흔 살? 쉰 살?
“인생무상이라는 그 무상(無常)일까요?"
"아닙니다. 없을 무(無)에 서로 상(相)입니다."
"... 무상 스님, 저는 김입니다. 마리아 호텔에서는 동해상사 김 전무라고 했던 것 기억하세요?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다 거짓말, 아니, 구라였어요.”
“후후…. 기억합니다.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은근히 즐겼죠. 사실은 감추고 엉뚱한 허세나 부리고 거짓말만 늘어놓다가 권태스러워지면 결국 어디론가 또 떠나게 되죠."
“맞아요. 주정뱅이들은 술 취하면 아무나 붙들고 무척 비통한 사연을 만들어서 주절거리는 버릇이 있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주정뱅이였어요."
".........“
스님은 다소 불안해진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이 없었다. 아차, 너무 나갔나? 싶어서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고 신중하게 말했다.
“하지만 스님에게는 안 그러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그러셔야만 할 겁니다.”
무상 스님은 이 말을 하고 나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span>계속>
#장편소설_칸첸중가_042_딸_무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