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셀 모스의 선물론 강독 5
Tu le sais, si tu as un amien qui tu as confianceet si tu veux obtenir un bon résultat,il faut mêler ton âme à la sienneet échanger les cadeauxet lui rendre souvent visite.너도 알다시피, 네가 신뢰하는 친구가 있고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면, 너의 영혼을 그의 영혼과 하나로 섞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자주 찾아가야 한다.마르셀 모스는 ...

아버님 .....
저 학연입니다 주무십니까?
아주 낯설면서도 익숙한 목소리에 약용은 몸을 일으켰다.
꿈결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요세 풍기가 있어 해갈탕을 끓여 먹고 오수를 즐겼더니 이제 헛개들리고 헛개 보이는 모양이군 이런 독백 사이로 다시한번 낯익은 목소리가 파고 들었다.
아버님 학연입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정약용은 거의 반사적으로 미닫이 문을 열고 텃마루를 쳐다봤다.
붉게 번지는 까치놀 사이로 붉은 그림자를 드리운채로 한 장정이 서있었다
뉘 십니까?
.......
텃마루에 놓여있던 지팡이를 의지해서 문간 쪽으로 다가섰다 분명 목소리는 장남 학연이임이 분명한데 도데체 형체를 알아볼수 없었다 헝크러진 머리하며 진흙으로 범벅이된 짚신은 바닷가 활선을 젓는 격군의 모습 그대로였다.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이맛살을 찌푸려 장승처럼 서있는 사내의 미간을 두어번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훑어 보고는 큰아들 학연이 임을 겨우 알아 차릴수 있었다.
아니 이 엄동겨울에 어쩐일이냐 날이 풀리면 봄날에나 올것이지 소내에서 여기 까지 연통도 없이 왔단 말이냐. 그리고 그덥수룩한 구루터기 같은 수염은 다 무엇이냐
예
아버님. 3년전 경술년 봄에 배옵고 부탁 하신 서책을 준비해서 바로 다시 찾아볼 요량이었으나 농사가 시원치 않고 연거푸 가뭄이들어 노잣돈을 마련할수 없었습니다.
임오년 올해에는 다행히 마늘농사가 대작이옵니다.
어찌어찌하여 여비를 마련해 찾아뵙게 되온 것이 옵니다. 문안 받으시옵소서.
약용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8백리 길을 걸음걸음으로 보름동안 거지행색이 다되도록 못난 아비를 찾아온 장자를 보면서 한편으론 고마움이 물밀듯 스며들었지만. 어엿한 양가집 양반자제가 농사를 짓다니 멸문이라는 가문의 위기가 가까이 왔음을 뼛속 깊숙이 느꼈다.
올해는 양주 강촌변 수마지기 정도의 마름의 마늘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알았다.
약용은 저간의 설명을 해대는 학연의 말꼬리를 잘랐다.
양갓집 자제가 학문에 힘써서 과거에나가 급제를 하고 조정에 출사하여 그뜻을 펴야하거늘
양인이나 짓는 농사일을 소상히 귀양가있는 자신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일상처럼 이야기 한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을 짓누르는 일이었다.
승하하신 선왕 정조 7년에 중형 약전은 시로, 약용 본인은 경에 그 재주를 보여 두형제가 동시에 진사에 합격했던 때가 상기 되었다. 약용이 학연보다 서너살 젊었을때의 일이었다. 약용,약전의 과거급제 소식에 풍물패까지 보내주셨던 선친의 뜻을 받들어, 풍물패와 함께 배를 타고 뚝섬 두무포를 지나 압구정을 뒤로하고는 봉은사에서 하루 머믈고는 외증조부 윤선도의 풍류가 깃든 광나루 고산정을 유람하고 일부러 사흘이나 지체하며 출사의 꿈을 안고 향당 소내에 도착했던 것이 벌써 20년전의 일이 되버렸다.
까치놀이 남해 밖으로 사라지고 땅거미 길어지는 초저녁이 벌써 되었다.
주막 노파 언년할멈이 가져다주는 조밥도 보릿국도 일찍이 동난 것이 이틀 전이다.
약용은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수 없었다.
밥 한 끼 국한사발 따뜻이 내주어 같이 할 수 없는 곤궁한 살림살이를 보여주기 싫었지만
어떻게든 저녁요기는 해서 먹여 보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게다가 어제는 강진현감 이현수가 아무 할 일없이 약용을 무고하여 관하에서 한나절을 취제를 받고 돌아온 터라 먹을 것이란 황상이 갖다 준 장국이 전부였다. 공리들이 작당하여 유적선에 화숫질을 한 것을 빌미로 괜실히 약용과 관련이 있는 듯 심사가 뒤틀린 몇몇 아전놈들의 작패가 화근이 되었던 할 일 없는 무고였다.
아버님 부엌이 어딥니까 제가 저녁밥을 지어 올리겠습니다.
아니다
식사는 나중에하고 집윗쪽 동산에 올라가서 새우잡이 활선들이 포구에 닻을 내리는 것을 보자꾸나 한양에서는 용산포구나 강서포구에서 유적선은 많이 보았을 것이야 그러나 강진현은
멀리 탐라에서 추자를 거쳐 이맘때면 진상품을 실은 목선들이 장관을 이루며 들어오는 철이라. 풍광이 ...... 올라가자
학연은 귀향생활 십여년에 칠십노파인 쇠골로 변해버리 약용의 왼쪽 팔을 부축하면 비탈을 올라 모래톱 아래 강진포구에 어스름이 들어오는 목선듫에게 시선을 보냈다. 향댱인 강촌에서 아우라비들의 목선과 함께 들어오는 회향목 목선 선단들을 더러 구경은 하였지만 흡사 진경 산수화속 포구 갗은 장관은 처음 목격하는 것이었다.
하염없이 빈하고 곤한 귀양살이를 염하고 있는 약용의 귓전을 울리는 목소리가 두부자의 침묵을 깨웠다.
으매 홈문과 평사나으리께서는 무얼 허구게시라던가요 ?
맞바람이 재법 거시기 헌디요..
3일전에 30리 쯤 떨어진 대둔산 은적사에 다녀 오겠다고 인사차 들렸던 혜장이었다.
강진읍 동문밖 정약용의 유배처소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의 백련사로 돌아가는 길에 갖 잡은 낙지와 숭어새끼 몇 마리를 짚세기에 엮어서 약용에게 전해주려 왔다가 약용을 해후하지 못해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처소에 간께로 당췌 안기셔서 절간으로 돌아가던 참이였소라 여서 만나 분지네요 ! 나무아비 타불......
먼저 혜장이 유배처소에 들렀다면 글방과 부엌에도 들렀을 일이 분명했다.. 조밥 한톨 없다는 것을 눈치쳤을 혜장이었다...
소내 향댱에서 장자 학연이 아비 문안을 와서 바다 풍치를 보여줄 요량으로 이제 막 이 언덕빼기에 다달았네....장가 학연일세.. 혜원..
홍문관 나리 해남장시서 걸죽한 오가피도 한뒷박 가져왔어라우..쩌번에 멜씀허신 주역도 뒷바라에 구해왔당께요...
장독엔 오가피주가 효혐이 있지라잉... 선방에 가시믄은 뭐다냐.. 거시기 죽렴주도 솔찬히 남아 있은게 오날은 선방에서 말씀들 허시믄서 하루 유허시는것은 워떨란지요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