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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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민족주의와 민족운동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의 역사로서 크게 보아 전통주의 운동, 민족주의 운동, 공산주의 운동 3단계를 거치며 발전하였다. 전통주의 운동은 1860년대부터 1900년까지로 유교적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전개된 저항운동으로서 한국의 의병전쟁과 유사했다. 베트남은 프랑스 침략 이전 응우옌 왕조(1802~1945)에 의해 통일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응우옌 왕조는 프랑스의 연속적인 군사적 침략에 저항 했으나 1884년 굴욕적인 협약을 체결하여 주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프랑스는 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서구의 근대 문명을 베트남에 이식하는 동화주의 정책을 펼쳤다. 왕조가 굴복한 이후 프랑스에 대한 저항은 유교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베트남 민중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천주교와 서구문명의 유입에 반대하면서 베트남의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촌락공동체 문화를 고수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저항의 이념은 군주에 대한 충성에 머물렀고, 근대적 민족국가 의식은 박약하였다.

베트남 푸꿕의 포로수용소의 현실, 출처 : 호치민 전쟁박물관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그러나 프랑스는 저항운동을 벌인 자들을 철저히 탄압했고 푸꿕으로 유배 보내 이곳에서 수용 생활을 하게 했다. 푸꿕의 수용생활은 비참했다. 고문과 살해는 당연했고 뒤이어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들어와 이곳을 확장하면서 인권유린 행위는 지속적으로 자행되었다고 한다. 미군과 CIA가 공동으로 전개한 "피닉스 전략(Phoenix Program)"을 통해서 1968년부터 1971년 까지 약 27,000명을 체포하여 20,000명을 어떠한 물증이나 근거도 없이 학살했다고 한다. 많게는 27,000명에서 41,000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집계한다. 이 작전에는 그린베레를 비롯한 수많은 미국의 특수부대들이 참여했고, 성고문, 전기고문, 거꾸로 매단 상태에서 행하는 물고문 그리고 무차별 구타와 같은 잔혹한 고문들을 자행했다고 한다. 아마 한국에서는 이런 미군이 행한 북베트남군 포로에 대한 고문과 학살 등의 전쟁 범죄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 시기에 미군이 평균적으로 들인 비용이 무려 1명당 332,000달러였다. 지금 기준으로도 그정도 달러면 한화 3억 5천만 원과 맞먹는 돈인데 그 당시의 달러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애초에 포병들은 하루 평균 10,000발을 쏘아댔고, 소총수들은 새로 등장한 M16을 맹신한 채 자동으로 놓고 갈겨대며 실탄 낭비를 일상화 했다. 사실 당시 베트콩들은 정글에서 기습 공격하며 부비트랩, 지뢰 등 함정을 깔아놓았기에 미군이 여기에 큰 피해를 입었고, 베트콩이 나타나는데, 적이 보인다고 그냥 추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참전 용사들에 따르면 베트콩이 확인됐을 때 소총 부대가 바로 진입하기보다는 그 위치에 포격 지원을 요청해 200발 정도 쏘아대고 나서야 전진했다고 한다.
B-52 폭격기가 호치민루트의 베트콩 하나를 잡는데 퍼부은 폭탄량은 100톤. 실제로 B-52는 연간 20억 달러를 폭격으로 소모했고, 그 결과 약 1,500명을 사살했다. 문제는 같은 기간 동안에 그 100배의 숫자가 남파되었다. 20억 달러 들여서 평균적으로 100명 중 1명 잡았던 셈이다. B-52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 역시 자금이 많이 들어가고 효율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평균적으로 10억 달러를 북폭에 소모했는데, 그 타격이 평균 1억 달러 정도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이 정도는 중국과 소련의 계속된 지원으로 금새 복구되었기 때문에 북베트남 폭격은 큰 효과를 불러오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롤링선더와 라인베커 폭격 작전은 하노이와 그 인근에 막대한 희생을 불러왔다. 하노이 근처의 도시들은 많은 양의 폭격 세례를 받았었다.
당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3단계로 격상시켰다. 1965년 3월 2일, 미국 해병대는 전략 요충지인 쁠래이꾸를 공격하였다. 소련 수상 알렉세이 코시킨이 북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동안 전개된 플래밍 다트 작전과, 롤링 선더 작전, 그리고 아크 라이트 작전이 진행되었다. 이후 3년간 지속된 폭격의 목표는 북베트남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북베트남의 방공망과 공업시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이를 통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사기를 꺾고자 하였다. 1965년 3월부터 1968년 11월까지 진행된 “롤링 선더” 폭격으로 북베트남에는 100만 톤에 달하는 폭탄과 미사일, 로켓이 퍼부어졌다. 베트남 전쟁 전체 기간에 미군이 사용한 폭탄은 모두 700만 톤에 달한다.
미군의 폭격은 베트남을 벗어난 인근 국가에도 행해졌다. 코만도 헌트 작전과 같은 공군 작전은 호치민 통로를 파괴하기 위해 캄보디아와 라오스 지역을 폭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폭격에도 불구하고 북베트남은 호치민 통로를 통해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계속하여 지원하였다. 작전에 참가한 미군 장교는 “이 전쟁은 정치적 전쟁이다. 이것(폭격)은 살인과 다르지 않다. 차라리 칼이 최선의 무기이지 비행기는 최악의 무기일 뿐이다.”라고 회의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뿐더러 미국은 매우 천사 같은 아름다운 나라, 아름다울 미(美)자를 쓰는 국가처럼, 미국 사람 모두 잰틀하고 전쟁 범죄 따위는 저지르지 않을 진정한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에 오면 그렇게 알고 있던 미국이라는 나라, 미군이라는 군대에 대해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것을 파악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게 미국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베트콩들이 조작했다. 공산주의 국가니 조작이 충분히 가능하다." 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관련된 책들을 보면 미군이 베트남에서 행한 전쟁 범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행하고 있는 것, 반대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과 민간인에 행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 새 발의 피다. 필자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다. 그리고 미국 좋아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눈이다. 객관적인 눈으로 미국을 판단할 뿐이다.
나는 미국이 좋지만 그건 사적인 것이고 공사를 구분해야 하는 학자의 눈으로 볼 때는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분명 전쟁 범죄를 저지른 전범 국가다. 물론 전쟁 터지면 많은 인명이 죽는건 당연한 것이고 인권유린, 전쟁범죄, 그 외에도 할 수 있는거 다하는 게 전쟁이다. 거기에서 인권 유린, 도덕적인 부분, 불문율 등등 다 따져가며 하는 전쟁은 전쟁이 아니다. 어느 나라가 했든, 하나 하나 다 지켜가며 하는 전쟁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전쟁 자체가 비도덕적인데다 인권 유린이다. 그 안에서 고결한 도덕론을 따지는 사람들은 전쟁이 뭔지 경험해보지 못한 자들로 이런 자들은 주로 전쟁 터졌을 때 헛소리들만 남발한다.
전쟁이란, 터지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건 최대한 다하기 때문에 성역도 없고 도덕도 없고 서로 죽고 죽이는 처절한 살육만 있다. 그래서 전쟁은 늘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거다. 그러니 그 안에서 인권 유린이니 전쟁범죄니, 도덕성 따위를 따지는 자들은 그런거 하나 하나 지켜가며 수행하는 전쟁이 있는지 확인해보면 하나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은 수없이 많은 최악이 동원된다. 전후에도 화약 터지는 소리는 꿈에서도 나오고, 어느 날 갑자기 환청으로나마 귀에서도 여전히 들린다. 전쟁은 군인들 뿐 아니라 민간인들에게도, 종군기자들에게도 거대한 PTSD로 남는다. 자신이 살아있고, 움직이는 것조차 고통스럽지만 살아있는 것에, 움직일 수 있는 것에 그 순간 순간을 감사하게 여기게 된다. 그러니 잘 모르면서 혈기와 패기만으로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얘기, 농담이라도 논하면 안 된다. 전쟁은 영화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고, 온라인 게임도 아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