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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의 사회적 배경과 몽골군의 위력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2 16:38:37

쿠빌라이 칸은 서방에서 건너온 색목인들에게 정치·경제·군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중국 문화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한인 지식인들을 기용하여 그들의 견해를 경청했다. 즉, 단일한 민족과 문화를 고집하지 않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각자의 고유한 풍습과 문화를 보장하면서 제국의 통치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넓게 열어 준 것이다. 또한 쿠빌라이 칸은 1265년 파스파문자라는 공용 몽골어를 제정하긴 했지만, 서로 다른 수많은 언어가 존재했기에 광범위하게 통역‧번역사를 두었다. 이는 몽골의 다언어·다문화 제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몽골의 부족장 사회, 출처 : 몽골 체체를렉 민족학박물관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한편으로 몽골 제국은 한족에 대한 보수적인 대항의식을 보였다. 원 지배하의 인민을 4등급으로 나누었는데, 몽골족 1등급, 아랍이나 투르크 등 서방민족인 색목인이 2등급으로서 지배층을 형성했고, 옛 금조 치하의 유민은 3등급인 한인(漢人), 남송 치하의 유민은 4등급인 남인(南人)으로서 피지배층을 구성했다. 이러한 비교적 차등대우의 기준은 대외정복전쟁시의 협력 정도에 따라 결정된 것인데, 정복왕조로서 원나라가 갖는 독특한 특성이었다. 또한 쿠빌라이 칸은 중국 사상을 공부하면서도 끝내 한문과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고, 한인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과거제를 끝내 실시하지 않았다.


원나라 시대 말기에 이르러, 과거제가 서서히 실시되었다. 이 또한 정복왕조로서 원나라가 한인 관료들이 중앙정부를 장악하는 일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이렇듯, 쿠빌라이 칸으로 대표되는 원나라(몽골제국)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던 진보세력과, ‘몽골지상주의’를 내세우며 정복왕조의 특징을 보여주던 보수세력이 함께 공존하던 마치 현대국가와 같은 다이나믹한 사회였다. 이러한 역동적인 사회 분위기가 원활한 국제적 교류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몽골군대를 본다면 전형적인 몽골군대에 중기병은 약 40%를 점하고, 경기병이 60%를 점한다. 중기병은 주로 돌격하는데 쓰인다. 


필요할 때는 근접전투도 벌인다. 제2차 서방 원정 (1235-1242)때 몽골 중기병의 가장 통상적인 갑옷은 철갑편(lamellar armor)이다. 쇄자갑과 가죽을 끼워서 만든 갑옷이다. 철갑편은 원래 칼로 내려치는 것을 막거나 화살과 가타 투척무기가 뚫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다만, 도검으로 쉽게 철갑편을 고정시키는 가죽끝을 잘라버릴 수 있고, 여러번 내려치면 철갑편이 갈라지게 된다. 동시기의 유럽 중장비기사는 일반적으로 전신(두부 포함)을 쇄자갑으로 덮는다. 도검으로 내려쳐도 쇄자갑은 손괴되지 않는다. 다만 화살이나 장창으로는 뚫을 수 있다. 그리고 쇄자갑은 무겁다. 그래서 기병의 속도와 민첩성을 약화시킨다.


경기병은 몽골 전술체계에서 아주 중요하다. 원거리사격, 적군유인, 경계, 우회포위 심지어 근접전까지 주요한 타격수단은 밀집화살사격이다. 경기병은 일반적으로 원형의 투구만 쓴다.  몸과 마필의 호갑은 아주 적다. 경기병이 사용하는 몽골복합반 곡궁(궁배는 목재, 우각과 기건을 복합하여 만든다)의 성능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영국 장궁(유목 혹은 자삼목으로 만듬)보다 우월했다. 몽골궁의 인장력은 166파운드이고, 유효사거리는 320m였다. 영국 장궁은 각각 80파운드, 230m였다. 역대 북방 민족 중 활과 화살의 기술이 가장 정점에 달한 시기는 역시 13세기의 몽골 제국 때이다. '파르티안 샷'으로 상징되는 북방 민족의 기마 사법은 정확도와 사정거리에서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


화기의 등장 이전까지 북방 유목제국이 중국, 페르시아, 유럽 등의 주변 제국보다 군사적인 우위를 지니게 된 원인도 바로 이 사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활은 1.8m를 기준으로 장궁과 단궁으로 나뉘며 자료에 따라 단궁(單弓 또는 단판궁 : 單板弓)과 복합궁(複合弓 또는 합판궁 : 合板弓)으로 크게 분류된다. 단궁은 나무나 대나무의 단일 재로로 만들어진 활이며 복합궁은 두 종류 이상의 재료로 만들어진 활이다. 1932년 고고학적인 출토물을 근거로 흉노의 활을 복원한 바 있는 Alfoldi와 J.werner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흉노의 전투용 활은 길이가 1.4m~1.6m이고 스키타이나 몽골의 활처럼 이중 꺾임(double curve)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후대 몽골의 활과 같이 심줄과 뼈를 사용하여 강도를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몽골의 활은 나무로 틀을 잡고 양면에 동물의 뿔과 심줄을 끓여 압축해 붙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즉 시위를 당기는 쪽에 압축성이 매우 뛰어난 소나 산양의 뿔을 가공해 붙이고 그 반대쪽에 신축성이 강한 심줄을 붙이고 있다. 그리고 접착력을 높이기 위해 활 전체를 사슴 가죽으로 말아 감으며 온도의 변화를 예방하기 위해 도료를 칠한다. 흉노의 고분에서는 전투용 활과 함께 부장된 사냥용 활이 출토되었는데, 고대 몽골에서도 그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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