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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즈닉 도자기와 타일 이야기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3 16:47:08

터키 이즈닉 (과거엔 니케아)에서 생산된 타일은 이슬람 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써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터키, 오스만투르크의 도자기 문화도 마찬가지고 모자이크라던지 기본적인 채색 문화는 이슬람, 아라비아,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단색 벽돌의 격자 무늬에 나타난 푸른 하늘색의 절제 된 암시에서 보듯이 11~12세기의 다양한 주크(Saljuq)건물의 디자인에 유약 바른 벽돌의 도입은 이슬람 건축의 미적인 혁명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터키 이스탄불 세리믹 & 타일 박물관,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세라믹으로 마감하는 기술의 발전은 근동과 중동의 가장 오래된 장식적 전통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유약 바른 타일 세라믹은 숙련된 기술자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요구될 뿐 아니라 많은 시간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먼저 군청, 청록, 에나멜 초록, 샛노랑, 흑백과 경우에 따라 갈색과 적색이 첨가된 다양한 색깔의 유약 바른 단색 타일들을 준비되어지면 기술자들이 준비된 타일의 고유 색상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각기 굽는 시간들을 특별히 조절하였다. 그 후 디자인에 따라 다양한 모양을 공급하기 위해 타일을 재단하였다. 


세라믹 작업은 식물 모티브와 섬세한 곡선을 표현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되었다. 이런 모자이크 기술은 단순한 벽 표면보다 내부 표면이 벌집 모양의 돔이나 아치로 덮여져 있을 때 더욱 어렵게 된다. 에나멜 벽돌에서 유약 입힌 타일 작업의 전개와 더불어 디자인의 전통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카산(Kashan)공방에서는 세속적인 건물과 종교적인 건물의 장식을 위해 별, 십자가, 오각형 모양의 타일을 식물의 모티브로 꾸몄다. 또한 대형 패널에는 미흐라브에 사용된 아라비아 문자를 양각세공으로 장식하였다. 12세기에는 조각된 스투코와 페인트 칠한 나무와 결합하여 나타난 에나멜 타일의 일종인 다색체 모자이크인 젤리즈(Zellij)가 사용되어졌다.


이는 건물 실내 벽의 허리 받이 아랫부분을 덮는데 주로 사용되어졌으며, 식물의 유동적인 형태를 나타내기보다는 수학적 원리에 의해 진행되는 기하학적 도형의 패턴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이는 화려하지 않은 단초로움이 돋보이지만 그래도 조잡하지 않고 기품이 있는 소박함이 더 돋보인다. 블루모스크를 만들기 위해 이즈닉에 타일 공장을 만든 이후 이즈닉 타일은 터키 타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블루모스크와 톱카프 궁전 뿐 아니라 오스만투르크의 모든 모스크와 관공서에도 이즈닉 타일이 사용되고 있고 현재 골동품 이즈닉 타일은 도난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경매 시장에서 70,000~80,000달러의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이즈닉 타일은 다양한 색깔과 어우러져 나타난 화려함이 장점이다. 특히 푸른색 타일로 만들어진 마지막 사진의 미흐라브를 보면 당시 기술로 얼마나 정교하게 작업하여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즈닉은 15세기부터 17세기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가장 발달했었다. 모스크, 학교, 식당, 목욕 시설, 궁전, 부속실, 분수에 장식이 되었었고, 접시, 대접, 컵, 등, 타일 등으로 만들어졌다. 17세기에 이즈닉 도자기는 전세계에서 명품으로 각광을 받았었다. 17세기말 오스만이 세력을 잃어가면서 이즈닉도 같이 쇠퇴했었는데 20세기말부터 이즈닉에 여러 공방들이 생겨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터키를 방문하면, 기업 판촉물도 이즈닉 타일로 만들어 많이 선물하곤 한다. 


참고로, 도자기는 도기, 자기, 토기 등등을 통칭하는 말인데 도기는 800~1000℃에서, 자기는 1100~1400℃에서 만들어진다. 1892년 오스만투르크는 셀림 2세의 무덤에서 훼손된 타일들을 복원하기 위해 문화재 복원에 세계적인 명성을 가졌던 프랑스에 60개의 타일을 넘겼다. 프랑스는 훌륭하게 복원하여 이를 다시 무덤에 설치했고, 오스만투르크의 술탄도 이에 만족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에서 돌려준 타일들이 수십, 수백 년 가까이 지나면서 색이 바래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의 타일에 비해 확연히 색이 달라지자 이상함을 느낀 터키 정부는 이를 조사했고, 결국 이들이 프랑스에서 만들어낸 모조품임을 발견했다.


수백 년이나 지난 셀림의 타일을 복제하려면 특수한 화학 처리가 필요했고, 당장은 감쪽 같았으나 수십 년이 지나며 색이 풍화되는 속도가 달라 들통나게 된 것이었다. 이 도둑질한 타일의 원본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터키 정부에서는 프랑스가 훔쳐 간 타일을 돌려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이에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돌려주지 않고 있다. 역시 남의 나라 문화 유산 약탈의 대가인 프랑스다운 행동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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