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태국-캄보디아 전쟁, 탁신과 훈 센의 관계 및 전쟁을 통한 훈 센의 노림수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3 18:30:24

현재 태국군과 캄보디아군이 교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고, 전투기가 전무한 캄보디아 곳곳이 폭격을 당하고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전쟁은 인접국 사이의 영토 분쟁으로 보이는 사건이지만 그 이면에는 두 나라를 대표하는 탁신 친나왓 가문과 훈센 가문의 30여 년에 걸친 우정과 배신, 그리고 관계의 앙금에 이은 애증이 존재한다. 태국군은 12월 7일 오전 8시 20분쯤 태국 동부 수린 주(州)의 따 모안 톰(Ta Moan Thom) 사원 인근에서 캄보디아군이 아군을 향해 선제 공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캄보디아군은 당시 다연장로켓포 등을 동원해 민가를 포격했고, 그로 인해 인명 피해가 커졌다. 태국군은 첫 공격을 당한 직후 F-16 6대로 공습을 진행하며 반격을 개시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캄보디아 측은 태국군이 먼저 캄보디아군 진지를 공격했다고 발표했는데 사실 역린은 캄보디아 측이 먼저 건드린 셈이다.

Then-Thai Prime Minister Thaksin Shinawatra, left, smiles in August 2006 alongside the Cambodian leader at the time, Hun Sen, during a signing ceremony at a hotel in Phnom Penh. 출처 : Reuters


11세기에 크메르 제국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 따 모안 톰 사원(Ta Moan Thom)에서는 지난 5월 28일부터 양측 군대의 충돌이 있었다. 해당 사원은 태국이 실효 지배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는 자신들의 문화 유산이라고 주장하는 사원이다. 비슷한 유형으로는 쁘레아 비헤아르(Preah Vihear) 사원이 있고, 이 두 사원은 묘하게 닮아 있다. 따 모안 톰(Ta Moan Thom)은 태국 수린 주에 위치하지만 쁘레아 비헤아르(Preah Vihear)는 태국 시사껫 주와 맞닿아 있어 두 사원 사이는 꽤나 거리가 있다. 지난 6월 분쟁 때는 당시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가  직접 수습에 나섰다. 패통탄은 캄보디아의 실질적 지배자인 훈 센 상원의장(전 총리)을 “삼촌”이라고 부르며 달랬다. 본래 탁신과 훈 센 가문은 같은 조산(潮汕) 화교 가문이다. 조산(潮汕)은 중국 광둥성 남동부의 저우산(潮州), 산터우(汕頭) 지역을 지칭하는 곳으로 대부분 태국과 캄보디아에 걸쳐 형성된 남방 중국계다. 해당 지역 출신들은 대개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기 시기 때, 만주족의 압박을 피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탁신 친나왓의 원적도 조산(潮汕) 산터우(汕頭)로 종족으로는 객가족(客家族)이지만 출신이 조산 지역이기에 대개 같은 조산화교로 들어간다. 그러한 인연으로 훈 센 가문과 탁신 가문은 절친한 고향 친구였던 셈이다. 같은 화교지만 태국에서는 1932~1990년간 화교 출신 총리를 총 8명이나 배출했다. 1991년 태국 의원 357명 중 화교가 거의 100명에 달했으며, 당시 44명으로 구성된 정부 내각에도 중국 혈통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2005년 탁신 총리가 연임에 성공한 후 구성한 35명 내각 중 70%가 화교였을 정도로 태국은 화교 없이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지경이다. 그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보이는 화교는 태국과 캄보디아 모두 조산화교의 비율이 가장 높다. 그러한 집안 유착 관계는 이후에도 둘 사이를 동지로 만들었다. 서로의 국가를 자주 방문하면서 패통탄은 어릴 적부터 훈 센을 친 삼촌처럼 여기고 따랐다고 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인해 당시 경제인이었던 탁신은 1992년 통신 및 텔레비전 사업을 위해 캄보디아에 진출했고 둘은 의형제를 맺으면서, 훈 센이 탁신을 형님으로 모셨다. 


이후 정계에 진출한 탁신이 태국 총리에 오르며 둘은 더 가까워졌다.  탁신 친나왓은 총리에 취임한 이후 30밧 의료 보험 등을 제정하여 하층민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물론 탁신 또한 태국에서 부패한 정치인이다. 그리고 정책 자체가 포퓰리즘 일변도였고, 그와 같은 포퓰리즘 정책은 태국 내 기업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그러나 이 정책으로 하층민들이 많은 혜택을 받게 되면서 매우 경제적으로 열악한 태국 북부 지역은 탁신과 친나왓 가문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일명 성지(聖地) 같은 곳이 된다. 그래서 태국 내 탁신 지지자들 대부분은 하층민들이었고, 절대 빈곤의 하층민들이 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를 차지함에 따라 이들은 탁신과 친나왓 가문의 콘크이트 지지층이 되었다. 탁신은 기본적으로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하는 정책을 기조로 삼고 여러 공기업들을 민영화시켰으며, FTA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정도로 상당히 보수적으로 경제 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왕가나 군부 등 보수주의자들한테는 엄청난 반발을 불러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층민들에게 주는 이 포퓰리즘에 군 예산도 털게 되면서 군부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당시 탁신 집권기 때, 무려 6개월 동안 봉급을 받지 못했다는 군인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군부의 반발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포퓰리즘은 왕이나 왕가에게 바치는 세액도 줄어드는 결과를 갖게 되니 태국 왕가 내 로얄 패밀리들은 친나왓 가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후 쿠데타가 일어나 탁신 친나왓이 축출되면서 탁신 가문과 태국 군부는 원수지간이 된다. 2011년에는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 2024년 탁신의 딸 패통탄이 태국 총리에 오르고 훈 센 역시 2023년 아들 훈마넷에게 총리 직을 물려주며 양 가문의 우애는 서로 간의 연대로 발전했다. 가문의 누군가가 병에 걸렸다 하면 서로 병문안을 가고, 생일잔치까지도 챙겼다. 당시 프놈펜의 훈 센 자택에는 탁신 일가가 머물게 하기 위해 방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2006년 군부 쿠데타로 탁신이 실각했을 때도 훈 센은 그를 캄보디아 경제 고문에 임명하며 극진히 우대했다.


그러나 둘의 우호적인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훈 센은 2025년 5월, 양측의 영토 갈등으로 인해 태국이 캄보디아로 가는 국경을 폐쇄했는데, 이 때문에 태국인 고객을 받을 수 없게 된 캄보디아 카지노 업계가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훈 센의 분노를 사게 된다. 캄보디아의 카지노는 훈 센의 개인 재산을 축적하고, 캄보디아의 국가 재산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반 중 하나다. 캄보디아는 국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 극도로 미미해, 카지노로 인한 수입이 국가 경제의 47%를 차지하며 전체 캄보디아 GDP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제법 크다. 사실상 훈 센의 돈줄인데 이 돈줄의 주 고객은 태국인과 중국인이었고, 당시에는 중국인보다 태국인 고객들이 훨씬 많았다. 시아누크빌 같은 곳에 중국계가 만든 카지노는 원래 태국 고객들을 주 대상으로 만들었고, 태국인 고객 수요가 떨어지자 동아시아 전 지역으로 고객 유치에 나섰다. 태국인 고객 수요의 감소로 인해 카지노 수익 또한 감소하자 이에 대한 적자를 메꾸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온라인 도박이다. 


여기에 절대 다수의 중국인들이 캄보디아에 각종 범죄단지를 만들고, 보이스피싱과 로맨스스캠을 통한 사기행각을 벌이기 시작하고 태국은 자국 내 보이스피싱과 로맨스스캠을 통한 피해가 급증하게 되자 태국 경찰이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훈 센의 조카가 연루되어 그는 즉각 태국 경찰에 체포되었고 곧바로 기소되었다. 이에 훈 센이 격노했으며 탁신이 자신을 먼저 배신했다고 토로했다. 이후 총리가 된 패통탄은 군부와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훈 센과 직접적인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태국이 국경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면서 캄보디아 접경지를 담당하는 태국군 사령관을 멋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인물이라 깎아 내렸다. 그러나 훈 센은 이미 격분한 상태였으며 의형제고 뭐고 없이 17분간 이어진 패통탄과의 통화를 그대로 녹음하여 지인 80여 명에게 대놓고 뿌려 버렸다. 그로 인해 태국 현지에서는 자국군을 모욕했다는 명목으로 패통탄에 대한 탄핵울 의결했고 헌법재판소로부터 직무 정지까지 당하며 현재는 연금상태에 있다.


이에 탁신은 훈 센과 정말 가까웠는데 자신의 딸에게 큰 상처를 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훈 센은  1990년대 초 자신을 겨냥한 쿠데타 시도를 탁신이 물밑 지원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동안 잘 지내다가 이제와서 이를 폭로했다. 그러면서 더 큰 폭로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범죄단지 건설에 의한 각종 범죄 은폐 의혹과 동아시아인들에 대한 납치 범죄 등으로 인해 국제적인 비난을 받고 있던 훈 센은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태국에게 뒤집어 씌우고, 태국과의 전쟁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세 가지로 해석된다. 첫 번째, 범죄단지로 인한 국제 사회의 비난을 영토 분쟁과 맞물려 있는 태국에 돌리고, 모든 언론의 방향을 전쟁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다. 덕택에 캄보디아 납치 범죄에 대한 뉴스는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양국의 전쟁에 집중되고 있다. 두 번째, 범죄 은폐 국가 및 범죄 연루 국가라는 부정적인 자국의 이미지에 분노한 시민들이 혹여라도 일어설 수 있는 시위를 막고,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태국으로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훈 마넷에 대한 지지도가 범죄단지 및 각종 범죄를 은폐해주고 있다는 것 때문에 하락할 위기에 있었지만 영토 분쟁에 이은 전쟁으로 인해 반(反) 태국 전선이 형성되면서 훈 마넷에 대한 지지도 하락은 일단 멈추었다. 게다가 전쟁을 빌미로 국가 통제를 하면서 훈 센 일가에 대한 비난을 잠재울 수 있다. 세 번째, 일단 훈 센이 총리 지위를 훈 마넷에게 물려주었지만 아직 그의 권력 기반은 매우 불안한 상태다. 훈 마넷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국가 위기론을 부상시키면서 모든 권력이 훈 마넷에게 집중되도록 만들고 있다. 때마침 태국이 캄보디아 국경과 상당 부분 지역을 F-15 폭격기로 폭격을 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캄보디아 전국에서는 태국에 대한 반감이 극심해졌다. 훈 센 일가의 입장에서는 태국의 F-15 폭격은 오히려 훈 센 일가의 정치 권력을 강화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니 그럴수록 태국을 더 자극할 필요가 있고, 반(反) 태국 정서가 강화될수록 훈 센 가문의 역량에 의지하는 현상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범죄 이미지에서 반등하여 강대국인 태국에게 폭격을 당하는 피해자 코스프레 해주고, 여기에 반응하면 훈 센 일가의 전략은 완벽히 성공하게 된다. 권력을 어떻게 잡고, 유지하는 것에 대한 노련함은 장기 집권자에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그래서 필자는 늘 말한다. "정치 권력 장악 및 유지는 교활하고 나쁜 놈이 가장 잘한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