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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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지도를 보면 동쪽 끝에 꼬리와 같은 영토가 길게 뻗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길쭉한 지역은 어떻게 아프가니스탄의 영토로 편입되었는지를 알아보면 이 꼬리와 같은 지형을 우선 와칸 회랑(Wakhan Corridor)이라 불린다. 회랑의 길이는 350km, 폭은 13~65km에 이른다. 행정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 주(Badakhshan Province)에 속해 있다. 북쪽으로는 타지키스탄에 접해 있고, 동쪽은 중국 신장(新疆) 지역, 남쪽으로는 파키스탄과 마주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 회랑을 와한주랑(瓦罕走廊)이라 부른다. 이 회랑은 19세기에 대영제국과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이 중앙아시아를 놓고 대결을 벌인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소산으로 나타난다. 당시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로 남하했고, 영국은 인도를 거쳐 파키스탄으로 북진했다. 영국은 한 때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지만 반란군에게 추방되어 현지 왕국에 주권을 내주었다. 러시아도 아프가니스탄 내정에 개입했다.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과 대영제국의 그레이트 게임이 남긴 산물, 와칸 회랑(Wakhan Corridor), 출처 : AFP통신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두 제국은 극동 아시아에서 대치하면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양국은 중앙아시아에 경계를 확정하는 협상을 벌이게 되었다. 1873년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토 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중립화하고 그 이남을 영국령, 이북을 러시아령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영국령 인도 북부인 파키스탄과 러시아령 중앙아시아 남부인 타지키스탄이 와칸 지역에서 국경을 접하게 된다. 두 제국은 서로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와칸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물러서면서. 그 계곡을 아프가니스탄 영토로 하여 하나의 완충지대(Buffer Zone)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1893년 영국령 인도는 듀랜트 선(Durand Line)을 설정하고, 와칸 회랑을 아프가니스탄 왕국에게 넘겨준다. 와칸 회랑은 파미르 고원의 남쪽 끝으로 깊고 좁은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 계곡에는 파미르(Pamir), 판지(Panj) 강과 조르쿨(Zorkul) 호수가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인구 12,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인종은 타지크족이 대부분이고 대개 이들은 이란계 파미르족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회랑에는 고대에 ‘와흐지르의 길’(Wakhjir Pass)이라는 무역로가 있었는데, 이 길은 실크로드의 일부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의 서역, 현재의 신장을 이어주고 있었다. 중국 당나라 시대에 고승들이 인도에 구법 활동을 하기 위해 다녀가는 길이었으며, 13세기에 이탈리아 사람인 마르코 폴로가 이 길을 지나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유럽의 카톨릭 사제들이 선교 활동을 하기 위해 이 길을 지나갔다. 와칸의 계곡은 해발 3,000~4,900m에 형성되어 있고, 겨울 3개월 동안에는 길이 폐쇄된다고 한다. 와칸 회랑은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대 아프가니스탄 내전 시기에도 이 지역에는 전쟁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현재 이 회랑의 동쪽 끝은 중국에 의해 폐쇄되어 있다. 중국은 탈레반 테러리스트들이 신장 지역 무슬림들을 선동할 것을 우려해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측은 이 회랑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 측은 국경수비를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은 그레이트 게임의 국면 중에 1839년 아프가니스탄이 러시아와 협력한다는 것을 명분 삼아 이전 왕조인 두라니 왕조의 적법한 지도자를 세우겠다며 아프가니스탄을 인도 제국에 완전히 병탄할 야심을 품고 침공했으나 3년간의 전쟁 끝에 후퇴해야 했고 이로써 제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영국의 치욕스러운 패배로 끝났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한 번 더 침공하나 역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직접적인 지배에는 실패하고, 친(親) 영국 성향의 군주 압둘 라흐만 칸을 내세워 보호국으로 삼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이로써 제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를 하긴 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지배에는 완전히 실패함으로 인해 결국의 영국의 패배로 귀결된다. 이리하여 영국은 보호국인 아프가니스탄과 식민지인 인도-미얀마 제국의 국경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고, 1893년 듀랜트 라인 협정을 아프가니스탄의 압둘 라흐만 칸과 체결했다.
1893년 아직 파키스탄이라는 나라가 없었던 당시 이 지역 남쪽은 대영제국의 식민지인 인도 제국이었고, 이 국경선은 당연히 영국에 의해 그어졌다. 이 당시 인도 제국의 외무장관 헨리 모티머 듀랜드 경(Sir Henry Mortimer Durand, 1850~1924)와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국왕 압두르 라만 칸이 체결해 그은 국경선으로서 모티머 듀랜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영국령 인도-미얀마 통합 제국이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과 접하지 않도록 아프가니스탄 왕국을 완충지로 이용하기 위해 듀랜트 라인의 동쪽 일부는 제국 간 인위적 완충 지대처럼 이상한 모양을 그리면서 와칸 회랑으로 자리 잡혀 있는 실정이다. 이후 1894년부터 1896년까지 약 2년간의 현장 지리 조사와 국경임을 알리는 기둥 설치가 이루어졌다. 이후 인도 북서부 지역이 파키스탄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기존 국경선 구조가 남게 되어, 듀랜트 라인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이 되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으로 인해 1893년에 영국이 설정한 듀랜트 라인(Durand Line)은 그대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으로 계승되었다.
그러나 이 일대에 거주하던 파슈툰족을 분열시킬 목적으로 파슈툰 족 거주 지역 중앙을 관통해서 국경선을 만들은 것이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으로 전락했으며 아프가니스탄의 3분의 1 가량, 영토 절반 이상의 파슈툰족 인구가 분할 당해 파키스탄에 편입되어 버렸다. 현재 파키스탄의 파슈툰족이 약 4천만 명으로, 1천 5백만 명 정도인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족보다 더 많다. 이는 현재 파키스탄 북서부에 거주하고 있는 파슈툰족들은 외세에 의해 파키스탄 인이 되었으니 펀자브 인들로 이루어진 파키스탄 중앙정부의 통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이들은 지금도 스스로를 파키스탄 국민보다는 파슈툰 족으로 생각하며 파키스탄 북서부에서 파슈투니스탄 분리주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47년 파키스탄이 독립할 때 듀랜트 라인의 무효화와 파키스탄 내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리고 1950년대 내내 영유권 분쟁으로 여러 차례 무력 충돌이 발생한 끝에 1961년에는 양국의 관계가 단교까지 이어지기도 하였다. 파키스탄은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에 친 파키스탄 정부를 세우기를 원했다. 아프가니스탄이 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자 여러 무장 세력들을 지원했고, 이렇게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세력 중 하나는 동포인 탈레반도 있었다. 파키스탄 군부에는 지금도 파슈툰 족 군인들이 상당수 있어서 지금도 친 아프가니스탄 성향이 있는데 탈레반은 1996년 집권 이후 이들을 배신하고 듀랜드 라인을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오히려 활동 범위를 파키스탄 북부 지역으로 넓히면서 파키스탄 북부도 내전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실제로 이 내전 규모가 매우 컸기 때문에 파슈툰 족이 아닌 파키스탄의 군대까지 탈레반이 공격해 매년 수백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현재 파슈툰족이 밀집해 있는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 지대, 이는 연방 직할 부족 지역을 비롯한 카이베르 파크툰크와는 국경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다.
파슈튠족의 정체성이 강한 북서부 파키스탄인들한테는 국경에서 마주하며 거주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족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친근한 동포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점령 중인 지역도 상당하고, 워낙 험준한 산악지대로 처음부터 두 나라 중앙정부의 통제가 잘 미치지 않는 곳이다 보니, 두 나라 파슈툰족들끼리 자유롭게 국경을 왕래하고 교류하면서 탈레반이 활약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극단 주의적 무법 지대로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환경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두 나라의 어려운 정세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