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무르와 칭기즈칸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원정 방식이다. 티무르는 대부분 원정에서 어느 한 곳을 확실하게 정복하지 않고 돌아갔다. 이 부분은 원정이라기보다 국가 규모의 노략질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게다가 티무르는 중앙아시아~중동 지방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결점이 있는 몽골보다 존재감이 작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위 혹평과 반대로 사마르칸트가 중심지인 티무르 제국의 수입만으로 정복한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에 두기 어려워 일부러 그런 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티무르와 칭기즈칸의 석상,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또 다른 의견으로 티무르가 원정을 행한 목적에 대해서 유의할 필요성을 환기하는 것이 있다. 이에 따르면 티무르의 초기 원정은 외부 세력을 절멸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당시 트란스옥시아나 내부에는 티무르 외에도 여러 부족 세력들이 존재했다. 칭기즈칸의 시대에 몽골 고원은 자무카 덕분에 적을 절멸시키는 것이 이미 등장했었다. 그나마도 몽골 비사 등에 기록이 남을만큼 일반적이지 않았다. 반면 티무르의 시대에 트란스옥시아나에서 부족장을 죽이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짓이었다.
티무르는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이들 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자신의 부하들을 키우려고 했다. 그 결과 티무르는 치세 중반에 차가타이 칸국의 대부족 2개를 해산시켰고, 그의 사후에는 나머지 부족들도 큰 세력을 일구지 못하고 역사에 이름만 겨우 올릴 정도로만 남았다. 티무르의 후기 원정은 애초에 티무르가 정복할 의지가 없었던 땅과 정복하려 한 땅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티무르가 여러 차례 원정을 행했던 킵차크, 동부 이란은 여러 부족 연합체의 지배하에 있었다. 티무르는 초기 권력 장악 과정에서 부족 세력을 해체하거나 약화시키는데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알았기 때문에 굳이 이 땅을 세력화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호라즘 왕조를 세 번 원정하여 정복했고, 일리에는 무려 6~7회 원정을 수행했다. 동부 페르시아에는 두 번, 서부 페르시아는 최소 세 번, 러시아에도 두 번의 원정을 수행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무너진 국가는 의외로 적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킵차크 칸국, 차카타이 칸국 등 다른 칸국들, 인도 술탄국, 중앙아시아 일대의 여러 국가들은 전면전에서는 티무르의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그가 중앙아시아 일대를 휩쓸고 지나가자마자 연거푸 다시 일어서곤 했다. 점령해야 할, 또는 점령한 도시에 대한 태도도 달랐다.
칭기즈칸은 살아 생전, 도시는 몇 번 본 적도 없고 방해되는 도시는 초토화시키는 유목민 생활에 익숙했다. 부하라가 그가 발을 들여놓은 유일한 도시라고도 한다. 이에 반해 티무르는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사마르칸트만큼은 아니지만 인근의 케슈(Kesh)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어떤 기록에서는 케슈 인근에서 태어났다고도 하는데 케슈 인근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티무르의 가문이 아주 쇠락하여 케슈와 같은 도시에도 거주하지 못했다는 근거로 보는 학자도 있다. 티무르도 사마르칸트 안에서 지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며 전쟁 중이 아니라도 사마르칸트와 케슈를 왕래하며 지냈다. 어쨌거나 티무르는 도시 생활에 익숙했던 도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