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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과 아제리인에 대한 이야기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6 18:01:04

아제르바이잔인들은 본국인 아제르바이잔보다 이란에서 인구가 훨씬 많다. 또한 이란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사파비 왕조가 아제리(Azeri)인 키질바시(Qizilbash)에 의해 건국되었고, 카자르 왕조 역시 아제리 계통의 왕조이며 이번에 죽은 이란의 알리 하메네이(Ali Hamenei)도 아제리인일 정도이다. 아제르바이잔 인들은 러시아에도 거주하는데 다게스탄 등 아제르바이잔과 접한 지역에 주로 많이 거주하며, 그 외 터키, 조지아에도 거주한다. 소련 시기에는 스탈린의 강제 이주로 아제리인 일부가 각각 러시아 서부 지방들인 러시아의 유럽 지역,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및 서부 시베리아 지역, 러시아 극동 지방으로도 이주되기도 했다. 아르메니아에도 아제리인들이 주거하고 있었지만, 1990년대 나고르노 카라바흐 영토 분쟁으로 인해 추방되거나 거의 도주하여 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하며, 아르메니아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소수인데다 아르메니아인에 동화되어 아르메니아인이 되었다.

터키 동북부 카르스 시(市)의 아제르바이잔 국기,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터키인과 많이 비슷한데 언어 역시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한다.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 모두 오구즈어파에 속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는 알아들을 수 있지만 어감의 차이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 외에도 이란 남서부에 거주하는 카슈카이족과도 연관이 존재하는데, 이들의 언어인 카슈카이어는 아제르바이잔어에서 갈라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어가 서부 오구즈어파에 속하는데 비해 카슈카이어는 남부 오구즈어파에 속한다는 차이점도 보인다. 다만 카슈카이족들이 아제르바이잔에서 갈라졌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카슈카이어를 아제르바이잔어의 한 방언으로 여기도 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이란 북동부 호라산 일대, 이란 남동부 지역인 케르만샤에도 아제르바이잔인에게서 갈라진 투르크계 제족 중 하나인 아프샤르족들의 아프샤르어도 카슈카이족처럼 아제르바이잔과 연관이 있으며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아프샤르족들도 아제르바이잔인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나디르 샤의 아프샤르 왕조를 건국하기도 했다. 다만 카슈카이족과 아프샤르족, 아이날루족은 아제르바이잔 인에서 갈라진 민족이면서 아제르바이잔인들과 동족이라 보기에는 어렵다. 종교는 대부분 시아파와 12이맘파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수니파는 소수이다. 아제르바이잔 영내의 무슬림들은 구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인해 문화적으로만 무슬림이고, 일상생활에서는 세속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오랜 기간 동안 페르시아의 한 영역이었기 때문에 페르시아어 문학과 함께 민족의 기원이 되는 오구즈족의 민족 설화가 공존하고 있다. 또한 근 현대 시대에는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기 때문에 러시아식의 인명 체계('이름-부칭-성')와 러시아어에서 차용한 어휘도 사용하고 있다. 그 외 여러 북부 카프카스 제민족들의 의복 문화가 유입되기도 했다. 게다가 탈리시인, 아바르인과 문화가 흡사하며 레즈긴인으로부터 레즈긴카 무용과 융단 직조 문화를 흡수했다. 

아제르바이잔인은 카스피해 서부 연안인 이란령 아제르바이잔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 거주하는 투르크계 민족이다. 약칭인 '아제리인'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해당 표현을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만 이 표현은 가급적 안 쓰는게 좋다. 이는 아제리라는 표현이 고대 페르시아계 민족을 의미하지만 과거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상징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대부분인 현지인들이 좋지 않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성향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자신들을 "Azərbaycan Türkü" (아제르바이잔 투르크인)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오늘날의 아제르바이잔과 남아제르바이잔에 정착한 오구즈 투르크 부족들이 사파비야 수피 교단의 영향으로 시아파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수니파를 믿는 서쪽의 터키인, 동쪽의 투르크멘인들과 분화된 것을 직계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나타나고 있다. 

근세 기록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을 다른 오구즈 투르크인들과 구분 없이 다 같이 투르크멘인으로 기록하기도 했는데 당시 투르크멘은 원래 아랍권, 페르시아권에서 오구즈 투르크어를 사용하던 여러 민족들을 지칭하던 어휘였기 때문이다. 이후 아제르바이잔의 오구즈 투르크인들은 다른 투르크인들과 다르게 시아파를 믿으면서 다른 오스만투르크 제국 및 중앙아시아에서는 이들을 아제리인 혹은 키질바시라고 구분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사파비야 수피 교단으로 개종한 아제르바이잔의 투르크인들은 키질바시라는 기마 전사 집단에 소속되어 이란 사파비 왕조의 창건에 크게 기여했는데, 이로 인하여 근대 시대에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을 키질바시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인 대다수의 언어는 ‘아제리어’이며, 지배적인 종교는 시아파 이슬람이다. 

전체 아제리 인구 중 2,000~3,000만 명은 남부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이란 영토에 거주하는 것으로 여겨지며, 800만 명이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에, 200만 명 가까이가 터키에, 약 200만 명이 러시아, 나머지 인구는 주로 조지아, 이라크, 우크라이나에 거주하고 있다. 터키에 이주한 아제리인의 민족정체성을 둘러싼 문제는 이란에서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정치적이고 민감한 상황으로 자리 잡는다. 오늘날 터키에 거주하는 아제리 인의 역사는 이란의 사파비 왕조 시대(1501~1722)의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그들의 지배권은 오늘날 터키의 카르스(Kars)와 인근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이란과 러시아 간에 체결된 1813년 굴리스탄 조약과 1828년 투르크멘차이 조약이 체결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제리 인들이 터키로 이주하여 동부 지역, 특히 에르주룸(Erzurum)과 아그리(Agri)에 정착했다.

아제리인의 터키로 이주는 1920년대, 1940년대 말,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일반적으로 터키의 아제리 인구는 주로 아제리와 아나톨리아 투르크 간의 문화적 · 언어적인 친근성으로 인해 터키 사회에 잘 통합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종교적으로 아제리 인은 주로 시아파인 반면, 아나톨리아 투르크인은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으로 다르다. 방언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역사적 기억과 종족적 · 민족적 의식이라는 면에서 자아 인식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큰 차이가 존재한다. 아제르바이잔의 정체성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인이 가진 여러 가지 특징은 정체성 형성에 특별하고도 복합적인 성격을 부여했는데, 아제르바이잔의 정체성을 해명하려 할 경우 다음의 몇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아제르바이잔의 지배적 종교는 시아파 이슬람인데, 이러한 요소는 페르시아의 유산이다. 

둘째, 아제르바이잔의 언어는 투르크어족에 속하는데, 이는 터키의 영향에 따른 귀결이다. 

셋째, 러시아식 교육이 아제르바이잔과 유럽 대륙을 연결시켰는데, 이와 같은 점은 러시아 유산의 중요한 측면이다. 

넷째, 고유한 역사에 속하는 아제르바이잔 적인 요소가 존재하며, 이는 아제르바이잔 민족에 독자적인 성격을 부여했다. 아제르바이잔의 외교적 딜레마는 복잡다기한 문화적 유산을 안고 있다는 사실과 독립 이후에 민족의식의 재건과 민족주의 운동의 고양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은 아제르바이잔의 탈소비에트 정체성을 재건하는 과정을 극히 미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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