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3818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빨치산의 태평소 소리 좋아했던 미군, 국악의 전도사가 되다[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2] 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민족·국제 이희용(hoprave)▲가야금 타는 해의만만년의 해...
내 삶은 2010년을 깃점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이전의 삶은 , LG와 삼성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전자산업의 혈관이라 불리는 회로기판 국산화개발에 헌신한 세월이었다.
선진국의 기술 횡포 속에 때로는 ‘기술 도둑’이라는 모욕적인 시선을 견뎌야 했고, 후진국 엔지니어로 태어난 서러움을 오직 실력으로 갚아주기 위해 피와 눈물, 그리고 맨주먹으로 기술 전쟁터의 최전방을 지켰다.
내 삶은 2010년을 깃점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이전의 삶은 , LG와 삼성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전자산업의 혈관이라 불리는 회로기판 국산화개발에 헌신한 세월이었다.
선진국의 기술 횡포 속에 때로는 ‘기술 도둑’이라는 모욕적인 시선을 견뎌야 했고, 후진국 엔지니어로 태어난 서러움을 오직 실력으로 갚아주기 위해 피와 눈물, 그리고 맨주먹으로 기술 전쟁터의 최전방을 지켰다.
이제는 현재의 삶과 큰 연관이 없는 과거사가 되었으나,
그 치열했던 투지는 2010년 은퇴 이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고희(古稀)를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형'인 나의 새로운 인생, 바로 "사진 예술’"이다.
내가 사진에 발을 들인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2009년 어느 퇴임 임원 모임에서 옆자리의 동료가 툭 던진 한마디였다.
“이 상무, 자네 취미 삼아 사진 한번 배워보지 않겠나?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우연히 귀에 꽂힌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의 궤적을 바꿔놓았다. 처음에는 자문했다. “평생을 이공계 ‘공돌이’로 산 내가 예술을 알면 뭘 알겠나?”
1+1은 반드시 2여야만 하는 명확한 공식 속에 살아온 내게, 답이 0.8이 되기도 하고 2.5가 되기도 하는 예술의 세계는 낯설고도 기묘했다. 그 모호함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느 은퇴자들처럼 나 역시 평생교육원에서 취미 사진으로 첫발을 뗐다.
초기 2~3년은 꿈만 같았다. 전국 방방곡곡 이름난 출사지를 누비며 남들이 좋다는 풍경을 탐색하듯 찍어댔다. 하지만 그 희열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그저 ‘신기하고 아름답기만 한’ 박제된 이미지들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내면의 목마름은 나를 더 깊고 골치 아픈 "사진 예술"의 세계로 인도했다.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고, 8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6년 국제 사진전 금상이라는 과분한 성과도 거두었다.
사진 예술의 핵심은 시각적 유희가 아닌, 작가가 이미지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있다. 예술가는 찰나의 미학을 넘어 대중의 진솔한 삶을 포착하기 위해 오랜세월 사창가, 공장, 탄광 등 삶의 거친 현장에서 그들과 부대끼며 자신을 성찰한다.
이렇게 작가가 영혼을 갈아 넣어 빚어낸 이미지와, 길 가던 사냥꾼이 짐승을 포획하듯 우연히 낚아챈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작가의 혼이 담긴 메시지가 분명한 사진, 우리는 그것을 사진예술이라 부르며 광의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 예술’에 속한다 할수있다.
사진가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견디는 지난한 과정은 결국 자기 성찰로 귀결된다.
이 지점이 비로소 예술과 철학과 조우하는 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현재의 삶과 큰 연관이 없는 과거사가 되었으나,
그 치열했던 투지는 2010년 은퇴 이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고희(古稀)를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형'인 나의 새로운 인생, 바로 "사진 예술’"이다.
내가 사진에 발을 들인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2009년 어느 퇴임 임원 모임에서 옆자리의 동료가 툭 던진 한마디였다.
“이 상무, 자네 취미 삼아 사진 한번 배워보지 않겠나?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우연히 귀에 꽂힌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의 궤적을 바꿔놓았다. 처음에는 자문했다. “평생을 이공계 ‘공돌이’로 산 내가 예술을 알면 뭘 알겠나?”
1+1은 반드시 2여야만 하는 명확한 공식 속에 살아온 내게, 답이 0.8이 되기도 하고 2.5가 되기도 하는 예술의 세계는 낯설고도 기묘했다. 그 모호함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느 은퇴자들처럼 나 역시 평생교육원에서 취미 사진으로 첫발을 뗐다.
초기 2~3년은 꿈만 같았다. 전국 방방곡곡 이름난 출사지를 누비며 남들이 좋다는 풍경을 탐색하듯 찍어댔다. 하지만 그 희열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지독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그저 ‘신기하고 아름답기만 한’ 박제된 이미지들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내면의 목마름은 나를 더 깊고 골치 아픈 "사진 예술"의 세계로 인도했다.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고, 8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6년 국제 사진전 금상이라는 과분한 성과도 거두었다.
사진 예술의 핵심은 시각적 유희가 아닌, 작가가 이미지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있다. 예술가는 찰나의 미학을 넘어 대중의 진솔한 삶을 포착하기 위해 오랜세월 사창가, 공장, 탄광 등 삶의 거친 현장에서 그들과 부대끼며 자신을 성찰한다.
이렇게 작가가 영혼을 갈아 넣어 빚어낸 이미지와, 길 가던 사냥꾼이 짐승을 포획하듯 우연히 낚아챈 이미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작가의 혼이 담긴 메시지가 분명한 사진, 우리는 그것을 사진예술이라 부르며 광의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 예술’에 속한다 할수있다.
사진가가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견디는 지난한 과정은 결국 자기 성찰로 귀결된다.
이 지점이 비로소 예술과 철학과 조우하는 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