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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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 Taiwanese Aborigines) 혹은 고산족(高山族)과 대만인을 혼동하는 것이 꽤 많이 보이는데, 구분하는 게 더 일반적이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혼동하면 대만을 소수의 한족이 다수의 대만인을 지배하는 사회라는 정복왕조로 착각하기 쉽다. 외성인과 본성인으로 쓰면 그게 또 한 동안 현실에 부합했다는 것이 함정이라고 했는데 어차피 둘 다 한족 혈통이라 혈통 차이는 없고 내륙 출신인지, 복건인인지의 차이이며 오히려 지역감정에 가깝다.그러다보니 한국인 등 일부 외국인들은 이러한 착각으로 말미암아 티베트, 위구르와 같은 케이스로 보고 대만 독립을 지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문제보다 더 복잡해서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하면 양안관계가 쉽게 풀릴 것으로 보이는데 실상으로는 그렇지 않다.

대만의 원주민 축제,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티베트와 위구르는 군사적 및 정치적 권리를 모두 중공에게 넘겨진 것이고 대만은 정치적인 권리의 일부 만이 중공에게 빼앗겼을 뿐 사실상 독립국인데다가 군사적 권리도 가지고있다. 또한 위구르나 티베트인과 달리 좁은 의미의 대만인이라 지칭되는 한족계 본성인고하 원주민들은 정치적인 자유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도 다르게 나타난다. 고산족이란 단어는 높은 산에 사는 민족이란 뜻으로서 외지에서 건너온 사람들을 피해 높은 산으로 올라가 정착한 것에 기인한다. 지금도 중공에서는 대만 원주민들을 고산족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통칭은 고산족의 범위를 넓게 잡았을 때 얘기다. 대만 원주민은 대만인이지만 대만인이 대만 원주민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대만인이 대만 원주민과 중국인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다.
중공의 존재감이 강한 한국에서는 중국인은 곧 중국대륙 사람으로 동치시키겠지만 대만 한족들도 엄연히 중국인이다. 대만 독립운동으로 스스로를 중국인으로 안 보는 것과는 별개로 엄연히 혈통적으로는 이들도 복건성, 중국에서 기원한 사람들이 맞다. 실제로 대만 문화라고 따로 불리는 건 없고 외국인이 갖는 대만의 이미지는 모두 중국 문화이다. 이에 냉전 시절에 중국대륙이 죽의 장막을 치던 시절에는 대만이 곧 중국이었고 한국에서도 이 곳을 불과 1991년만 해도 자유중국이라 부르며 정통 중국으로 취급했다. 고산족은 전통적으로 농경이나 수렵에 종사하면서 독자적인 문화와 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있었던 일본의 식민 통치와 중화민국의 통치 아래 근대화 과정에서 생활양식이 크게 변화했다. 당국의 성급한 근대화 정책은 고산족의 권리를 다수 침해하였으며, 대만 사회 안에서 원주민에 대한 차별도 지속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고산족 청년들을 중심으로 원주민 권리 회복 운동이 시작되었고, 중화민국 당국도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산족의 권리 향상을 도모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중화민국 정부는 고산족을 대만 원주민족(臺灣原住民族)으로 승인하고, 평지인과는 달리 원주민으로 적(籍)을 주고 있다. 처음에는 이들은 9개 민족으로 구분했으나 21세기 들어 타오(邵)족, 카발란(噶瑪蘭)족, 트루쿠(太魯閣)족, 사키자야(撒奇萊雅)족, 시디크(賽德克)족이 추가로 인정되었으며, 2014년에는 카나카나부(卡那卡那富)족, 흘라알루아(拉阿魯哇)족이 인정되었다. 중앙정부의 인정은 받지 못했으나 지방정부의 인정을 받은 원주민 민족들도 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의 공인을 받지 못한 미식별 민족까지 합하면 40여 개가 넘는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주민 대부분은 대만에 거주하여 2006년 기준 468,602명으로 전 인구의 2%를 차지했으며, 2013년 기준으로 533,139명을 기록했다.
대만의 인구증가율이 연 0.4% 내외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출산율도 1명대 초반 이내로 매우 낮다는 걸 생각하면 원주민들의 인구 증가율은 상당한 편이다. 2014년 기준 원주민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타이동(35.4%) · 화롄(27.4%) · 핑둥(6.9%)의 세 현이었다. 이 세 현은 동시에 원주민 인구가 가장 많은 세 현이기도 했다. 한편 이들은 과거에는 대만 전역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한족의 도래를 거쳐 평지에 있었던 원주민은 한족에 동화되어 정체성을 잃거나 산지로 이주했고, 현재는 산지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와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들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일본 통치기에는 원주민 거주구역을 단순히 오랑캐의 땅이라는 "번지(蕃地)"로 불렀으나, 중국 국민당이 들어오면서 이들을 전부 향(鄕)으로 개편하고 행정구역 이름을 붙여줬다.
이 때 제정된 이름 중에서는 원주민들의 명칭을 존중하지 않고 유교에서 유래하거나 국민당을 선전하는 명칭이 많았는데 민주화 이후 일부는 원주민들이 부르던 명칭으로 개칭되는 사례도 있다. 이 때 만들어진 향들을 산지향(山地鄕)이라 했는데, 현재도 이 지역은 "산지원주민지구"로 지정되어 외부인의 활동에 제약이 있으며, 이 지역의 지자체장은 원주민만이 될 수 있다. 이 지역들 중에서는 직할시가 되어 구로 바뀐 향도 있는데, 본래 대만에서 직할시의 구는 지방자치단체가 아니어서 구청장을 선거로 뽑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임명하지만 이 지역은 예외적으로 지자체로 인정받아 구청장을 선거로 선출하고 구의회도 있다. 이들 산지원주민지구 지역을 모두 합치면 대만 면적의 약 40%, 인구의 약 1% 정도를 차지한다. 이러면 대만 지역에 韓人이 살았을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다. 남중국의 광서, 광동, 복건 지역은 전통적으로 월인(越人)들과 관계가 있으며 실제로는 장강 남쪽 지역이 대부분 월족의 세력 분포 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의 상고 시대 당시 황제헌원과 치우천왕의 대전쟁이 있었고 치우천왕은 회대(淮岱), 만이(蠻夷) 지역을 중심으로 하북성부터 절강성에 이르기까지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황제헌원은 황하 일대와 산서, 섬서 지역에 이르는 지역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서로 교차된 지역인 황하 지역과 하북, 산동성 일대는 두 세력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역으로 인식되어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쟁의 결과로 인하여 황제 헌원의 세력이 산동까지 세력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치우천왕의 후예들은 산동 이북과 이남으로 분리된다. 산동 이북 치우의 후예들은 북적(北狄)의 세력과 융합되어 고조선의 세력으로 성장했고 산동 이남 치우의 후예들은 장강 지역으로 내려와 그들만의 세력을 구축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산동 이북 지역보다 문화적인 연결성에서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지만 풍부한 수로 자원을 기반으로 자급자족 형태의 경제 체제를 이루며 각개의 부락들로 거주했다. 특히 이들 중 치우의 현손이라 불리는 묘족, 여족, 장족은 남중국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이들이 남방에 정착함에 따라 동이족이 가지고 있는 풍습과 본래 남방 인이 가지고 있는 풍습이 융합되어 이들만의 풍속이 만들어졌으며 언어, 민족의 DNA 또한 서로 간의 융합으로 인하여 한족이 말하는 남이(南夷), 혹은 남만(南蠻)이 형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