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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라트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0:45:13

1970년대 브레즈네프 시대에 잠시 경기를 회복했던 소련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혹은 그 외의 어떠한 형태로든지 공산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에서 내재된 경제 침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그리고 점차 가속화되는 몰락의 중심에는 공산권의 핵심인 소련이 있었다. 소련은 관료제 사회에 내재된 계급적인 모순과 더불어 그에 따른 부정부패가 심각했다. 

소비에트 라트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의 선전물, 출처 : 라트비아 옐가바 국립박물관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정치사상적인 면에서 전체적인 자유주의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한다면 공산주의는 자유를 제한하는 대가로 평등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이념을 유지해왔다. 실제로 자유민주주의권의 서방 세계 다수 국가들은 비효율적이고 무자비한 공산주의가 그나마 잘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조건적인 평등주의를 수반한 고위 간부들 때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론은 소위 '공산귀족'이라 불리는 노멘클라투라(Номенклатура) 계급이 부상함으로 인해 그 양면성을 띄게 되었다. 


노멘클라투라(Номенклатура)는 고대 로마의 노예 직책 중 하나이자 노멘클라토르(Nomenklator), 유력자들의 이름을 전부 외운 다음 연회에 입장하는 손님들의 이름과 직책을 주인에게 알려주면서 안내, 접대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노예들 중에서는 상당히 우대받았던 고위 노예들을 지칭하는 어원에서 나타난 명칭으로 소련 사회에서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는 특권계층의 의미를 갖고 있다.


당시의 공산당 관료들도 이와 같은 부정부패의 심각함을 인식하지 못했을리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발생한 사회주의 좌파 운동인 68운동이 발발하고 미국에서는 히피 운동이 유행하자 그 여파로 인해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에서는 여러 일련의 개혁적인 시도들이 존재했다. 이와 같은 동유럽권에서 소비에트의 영향력이 감소될 것을 우려한 소련은 동유럽의 개혁파들에게 강경한 입장을 취했고 동유럽 각 국가들에 군을 파견하여 강제로 진압되었다. 


특히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은 대표적인 소련 정부와 체코슬로바키아 내, 기존 공산주의 보수파들의 강경진압 중에 하나로 대표되고 있다. 더하여 이와 같은 강경노선은 동유럽의 공산정부가 가졌던 최소한의 지지와 정통성마저 상실하게 되는 연쇄적인 작용을 불러왔다. 이와 같이 바르샤바 조약기구로 대표되는 공산권의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미국과 함께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소련만이 동유럽 공산 정권들의 유일하게 믿고 기댈 수 있는 국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소련의 경제 상황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식 공산주의 및 계획경제가 제3 세계로 알려진 동유럽-발칸 지역에 매력적으로 보여졌던 것은, 무엇보다도 소련이 단기간에 로마노프 제국 시절 가난한 농업국에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공업국으로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끝마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취임하던 1980년대 중반에 이르면 소련은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1%에서 2%를 웃돌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이 시기에 소련은 전체 수출품의 38%가 천연가스, 나머지는 중공업, 화학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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