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교수가 참 흥미로운 철학책을 썼다. 한 사람의 철학자가 어떻게 이 시대를 사유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준 책이다. 저자 자신의 삶 속에 살아있는 철학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래서 그는 거창한 철학의 체계를 소개하는 일 보다는, 철학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철학으로의 안내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저자는 철학이 너무 어렵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이해하기 쉬운 글로 이 시대에 철학이 진정으로 필요한 이유를 설득해 내고 있다.
그는 철학이 세계의 해석에만 머물지 말고, 세계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기치를 내 세웠던 80년대 분위기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 때문에 그는 철학이 결코 현실을 떠나 있어서는 안 되고, 현실을 위한 철학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아직도 철학이 현실로 다가서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았지만, 저자는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갈 작정으로 이 책을 써 낸 것이다.
먼저 저자는 한국철학자들의 철학문화풍토를 질타한다. 공동적인 사유작업의 기회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나홀로 철학, 나 혼자만 이해하는 철학을 산출해 내고,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이 분리되어 서로 소통되지 않는 폐쇄적으로 철학하고 있는 전통이나, 훈고적 문헌해석에만 매달리는 철학교육을 비판한다. 특히 지적으로 미숙한 청소년들이 경직된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의 길을 열어주는 철학의 멘토가 없다고 탄식한다. 그래서 그런 멘토의 사명을 자처하고 나섰다. 마치 니체가 우상을 파괴하고 망치로 철학하는 방법을 제시하려 했던 것처럼, 저자도 이 책에서, 동서 철학의 벽을 허물고, 추상적인 개념 놀이에 빠진 철학에서 탈피해, 비판적 사유의 힘을 기르라고 권한다. 물론 추상적 사변이 지성을 단련시키는 장점도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철학적 사유의 길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에세이 철학을 철학적인 글쓰기의 적합한 방식으로 추천하고, 그런 형식으로 책을 써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이해하기 쉽고,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내용이 무게 있는 철학적인 주제들로 가득 차 있으며, 깊이 있는 철학적 논점으로 독자들을 안내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수필 철학에서 선구적인 길을 걸었던 분들이 있다. 저자가 유영모, 함석헌 선생을 그 예시로 들고 있지만, 여기에 김형석, 안병욱, 김태길 교수도 수필 형식의 글을 통해서 일상생활 속에 담겨 있는 철학적인 의미를 드러내 주기도 했다.
저자가 이 책의 부제로 “에세이 철학의 부활을 위하여”라고 붙였는데, 우리는 에세이를 수필이란 말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수필 철학’과 ‘에세이 철학’은 구별되어야 한다. 수필 철학은 철학적 내용이 언급된 수필에 강점이 있고, 에세이 철학은 에세이 형식의 철학적 논증이 중심에 있다. 에세이 철학의 모형은 플루타르코스, 베이컨, 몽테뉴 등이 보여주었듯이, 논증적인 철학으로 가는 전 단계의 철학적 글쓰기 방식이다. 수필 철학은 대중들의 삶에 교양과 정신적인 성숙을 함양시키려는 의도가 가득 차 있지만, 에세이 철학은 대중들의 교양과 성숙보다 더, 사회적 가치의 계몽을 위해서 비판능력과 사유능력을 훈련하는 일을 앞세우고 있다. 이종철교수의 저작은 에세이 철학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이 책의 III장 이후에 그 모범이 실행되고 있는데, 에세이 철학의 특징은 철학의 고전을 소환하고 고전에서 자기 입장의 논거를 찾아가면서 주제를 여러 입장에서 논증하는 것이다. 아울러 에세이 철학은 후설이 비판했듯 생활세계와의 연관을 상실한 현대의 철학과 달리 일상의 삶 속에서 철학의 주제들을 건져왔다. 만약 난해한 이론철학이 철학자들 사이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면, 에세이 철학은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주제들 사이 사이에 사회적인 논쟁이 될 만한 주제들을 곁들여 놓고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주제들 하나하나가 철학적 사유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사용될 수 있는 주제들로 가득하다. 실제로 그런 주제의 글들을 모아 놓으면, 고등학교나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 간의 열띤 토론을 일으킬만한 20여 개 이상의 주제들, 고통, 죽음, 폭력, 거짓말 등, 실제적인 토론주제들이 제시되어 있다. 독자들은 자신의 사고 과정에서 그 주제를 혼자 훈련해 볼 수도 있지만, 더 폭넓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익숙해 있지 못한 건강한 대화 문화와 토론문화를 성숙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전문 철학 서적에서 얻기 힘든 즐거움과 지혜를 에세이 철학을 통해서 얻게 된다. 그리고 에세이 철학에서 동서양의 고전이 소환되는 경험을 얻으면서, 우리의 사유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고, 풍성한 정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장하게 한다. 또 우리 국민들의 사유 지평도 확장될 것이다. 한국 에세이 철학의 전형으로 저자가 생각했던 유영모, 함석헌 선생에게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의 의미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교수의 ‘에세이 철학’의 활동이 계속되어서, 우리의 철학 문화 안에서, 그리고 한국 사회 발전에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2021/07/08)
필자/박순영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해석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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