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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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인종들은 한반도 전 지역의 원주민으로서 정의되며 고고학, 민족학 및 언어학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들 한반도 원주민들은 북방 몽골계 및 퉁구스계와 시베리아 계통의 우랄-알타이 인종과 남방 계통인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의 인종 또는 그 언어들을 사용하는 여러 종족이 다양하게 융화되어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들 각 지계의 선조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한반도로 들어와 정착하여 서서히 여러 민족들이 통합된 복수의 민족으로 발전하였다. 한국민족의 원류와 기원에 의하면 본래 대다수가 한반도의 해안 지대와 내륙의 평지 및 양측의 해발 500~2,000m에 이르는 산지에 거주했다. 그런데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인 것이 유전학, 인류학적인 추론 등에 그치고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노을이 지는 알타이 산의 설경(雪景),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점차 남방계 인종들은 한반도 남부 연안 및 남방의 섬 지대에 거주한다. 한반도 내 남방 계통 인종들의 거주 지역은 면적상으로 한반도 남부 지방의 거의 절반에 해당되고 있다. 북부 지방 신석기 시대의 문화가 한반도에 전파된 경로는 두 갈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갈래는 남쪽 시베리아로부터 몽골과 만주 서부를 거쳐 한반도의 서부와 남부에 전파된 것으로 첨저(尖底)와 원저(圓底)의 반란형(半卵形) 유문토기문화(有文土器文化)로 나타난다. 그리고 다른 한 갈래는 동쪽 시베리아로부터 흑룡강 유역을 따라 만주 동부와 한반도 동북부에 이른 평저(平底)의 유문토기문화이다.
남부 지방에는 중국 동남부 해안 지역과 오키나와, 대만 지역으로부터 출발한 사람들의 평저(平底) 형태의 무문토기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날 중부 지방 한강의 경우, 북방 문화와 남방 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으로 여기에서 다양한 인종적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남방 문화의 한반도 상륙 및 정착, 그리고 인종 간의 혼혈로 인한 한반도 인종의 성립, 그러한 첫 시작이 제주도에서부터 존재했음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현재 지형이 섬이지만 육지였을 시절과 섬이 된 시절로도 동북아시아 육지와 해양 교통의 중심지였다.
어떠한 인종이든 동북아시아의 북방과 남방의 인종이 서로 교차했고 그 교차점이 제주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도 원주민인 탐라 인종이 탄생한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도 열어두려고 한다. 그리고 후기 청동기 시대 때 발흥한 탐라국 또한 한반도와 별개의 역사를 향유해왔다. 탐라국은 한반도 삼국시대였을 시기에도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왔다. 그리고 탐라국의 세력이 강성했을 때는 자주 독립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기 5세기 이후에는 백제와 신라에 조공을 하면서 한반도에 신속했다.
그럼에도 탐라국은 남방의 오키나와, 대만, 멀리 필리핀의 종족들과도 상업적인 교역을 거행했고 결국 이들 인종들도 제주도에 들어와 탐라 주민으로 존속했다. 결국 제주도 인종은 먼 선사시대부터 탐라국 시대에 걸쳐 남방인종과의 혼혈을 통해 제주도만의 독특한 인종과 문화를 갖게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방 문화의 한반도 상륙 및 정착, 그리고 인종 간의 혼혈로 인한 한반도 인종의 성립, 그러한 첫 시작이 제주도에서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현재 지형이 섬이지만 육지였을 시절과 섬이 된 시절로도 동북아시아 육지와 해양 교통의 중심지였다.
어떠한 인종이든 동북아시아의 북방과 남방의 인종이 서로 교차했고 그 교차점이 제주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도 원주민인 탐라 인종이 탄생한 배경이 되었을 가능성도 열어두려고 한다. 그리고 후기 청동기 시대 때 발흥한 탐라국 또한 한반도와 별개의 역사를 향유해왔다. 앞서 두 단락 위에도 언급한 것과 같이 탐라국은 한반도 삼국시대였을 시기에도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요한 교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