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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를 지배했던 류큐 왕국에 대해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2:00:00
류큐국은 동중국해 남단의 류큐 제도를 영토로 하여 왕정 체제를 구축했던 국가이다. 이 나라는『朝鮮王朝實錄』에는 유구국(琉球國)으로 기재되어 있다. 현재는 일본의 오키나와 현으로 합병되어 있으나 여전히 그 일대를 류큐라고 부른다. 류큐국은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조선에도 종종 조공을 바치거나 표류한 어민들을 송환하는 등 동아시아 세계의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류큐국의 최대 영토는 현재 가고시마(鹿児島) 현에 소속된 아마미 군도(奄美群島)까지 포함되었다. 

오키나와 나하에 있는 류큐 왕국의 도성(都城) 슈리성,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하지만 이후 사쓰마(薩摩) 번이 류큐 왕국을 침공하여 결국 류큐 왕국이 아마미 군도의 지배권을 내주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군은 류큐를 일본에서 떼어내고 미국이 통치하는 지역으로 만들었는데, 오키나와 현과 아마미 군도는 물론이고 한 번도 류큐의 지배에 들어간 적이 없는 도카라(吐喝喇) 열도까지 류큐에 포함시켰다가 1950년대 초에 도카라 열도와 아마미 군도를 차례로 일본에 반환했다. 그래서 미국이 세운 류큐 정부의 관할 범위는 오키나와(沖繩) 현으로 축소되었고, 이후 1972년에 오키나와 현도 일본에 반환된다. 



수도는 슈리(首里)였는데, 미국 통치기 이후 오키나와 현의 수도인 나하(那覇)의 일부가 되었다. 왕궁은 현재 슈리성에 건설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제주도의 탐라국(耽羅國)과 비교해 볼 때, 지리적으로 제주도에 비해 본토의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제주도의 보다 훨씬 늦게 본토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독자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탐라국은 본토의 편입시기를 아무리 늦게 잡아도 조선 초기에 완전히 중앙 정부의 지배하에 들어왔고, 그 이전부터도 이미 탐라국의 국권이 사실상 넘어간 자치 지역 수준으로 남은 것에 비해 류큐 왕국의 일본 흡수는 근대 일제에 의한 강제 합병이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분리주의 운동이 잔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오키나와 현민들 사이에 분리주의를 지지하는 것과 그 여부를 떠나 일본 본토 주민들과 자신들을 다른 존재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류큐의 지정학적 위치상 역사적 중국에서 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고 많은 인적 교류가 있었다. 류큐 민족의 주류는 일본계와 근연관계지만 중국계와는 비교적 거리가 있는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고고학적 발굴과도 전혀 맞지 않은 부분에 있는데 중국대륙이나 대만과 언어적으로 공통점이 있을 수도 있는 시기는 선사시대와 고중세 시대인 것으로 나타난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인의 오키나와 인의 선조들이 선사시대에 중국 남부에서 대만으로 건너간 이후 태평양 곳곳으로 분파되어 나갈 때 오키나와에도 진출한 적이 있다. 이 시기의 중국 남부-대만-오키나와의 공통점이나 유사성을 볼 때 현재 중국 대륙의 남동 해안 지역에 있는 한족이나 비(非) 오스트로네시아계 소수 민족과는 관련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국시대와 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 남부에 살던 오스트로네시아계 종족들이 대부분 한족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류큐에는 중국 남동 해안에서 건너간 것 이상으로 일본에서 건너간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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