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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중국의 조우, 러시아의 연해주 및 극동 진출사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2:03:10

네르친스크 조약에 의해 남진(南進)을 저지당한 러시아는 다시 동진을 계속해 캄차카 반도와 베링 해협, 알래스카 등지에 대한 탐험에 착수하게 된다. 이러한 탐험 결과에 기초해 러시아는 1799년에 이른바 ‘러시아-아메리카 회사’를 설립해 북 태평양 지역에 대한 개발권을 행사하게 된다. 러시아로서는 캄차카 반도의 모피를 비롯해 개척지의 특산물을 본국으로 운반하기 위해 흑룡강 수로와 광주(廣州) 등 청나라 동남 해역의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 절실하였다. 하지만 청나라는 러시아의 광주 교역을 금지하는 등 영해 이용을 불허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흑룡강 수로를 원활하게 이용하고자 러시아는 아편전쟁 이후의 청나라의 내, 외부기 혼란함을 이용하여 청나라로부터 아무르 주(州)와 연해주(沿海州)를 점령하였다. 

러시아와 중국의 첫 조우지이자 러-중 관계의 상징 아무르 강(중국명 黑龍江),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1640년대에는 코사크인들이 바이칼 동쪽 자바이칼로 원정하여 몽골계의 부리야트 족을 정복하여 아무르 강 호반에도 진출했다. 1654년에는 아무르 지역에 네르친스크, 1665년에는 알바진 등이 건설되고, 아무르 강 유역을 넘어 일부는 송화강에 도달하자 청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시베리아 정복의 동기는 러시아와 코사크의 좋은 모피 획득에 있었으므로 많은 러시아 상인들도 뒤를 이어 들어와 시장을 건설하여 교역했다. 러시아인은 정복지에 성채들과 목책들을 만들고 그 부근에 상인들이 모여들어 도시가 건설되었다. 아무르 강 넘어갈 때 길 위에 통화 불능 표시가 뜨며 이처럼 통화가 안되는 이유는 이 110km 일대의 산간지대가 러-중 월경지이기 때문이다. 다른 시베리아 지역과 달리 완전히 통신이 끊기는 이유다. 통신이 끊긴채로 약 40km를 달려야 했다. 


수많은 탈북자와 조선족들이 이 월경지를 넘어 러시아로 불법 입국하고 있고 러시아 당국에서 이 지역에 한 해 전화를 끊고 경계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이 지역 러-중 국경 문제는 185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 조정은 교착 상태에 놓인 러시아-청나라의 콤소몰스크 나 아무레(Комсомольск-на-Амуре) 지역 국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7세의 니콜라이 이그나티예프(Николай Игнатьев) 백작을 협상대표로 파견했다. 그는 러시아 매파 중의 한 사람으로, 직전에 차르의 사절단을 이끌고 중앙아시아 칸국들을 방문해 협상을 벌인 전력이 있었다. 이그나티예프는 젊은 나이였지만 뱀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두뇌의 소유자였고, 마키아벨리를 능가하는 술수가였다. 그의 임무는 무라비예프가 체결한 아이훈 조약에 대해 청나라 조정의 비준을 얻고, 나아가 공동관리지역으로 규정한 연해주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만드는 것이었다. 


1860년11월 14일 이그나티예프는 영국, 프랑스와 조약을 체결한 청나라와 별도로 북경 조약을 체결했다. 그 조건은 ① 아이훈 조약을 비준해 아무르 강 이북을 러시아에 내주고 ② 우수리 강을 따라 조선과의 경계선까지를 경계선으로 하며(연해주 양도) ③ 신장의 카슈카르와 우르가, 치치하얼에 러시아 영사관을 설립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 연합군과 청나라와의 전쟁 틈에서 병사와 총알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거대한 영토를 얻게 되었다. 게다가 청나라에서의 상업적 특권도 덤으로 얻었다. 러시아-청나라의 북경 조약으로 인해 러시아 국경은 조선과 접하게 되었고, 조선 말기 러시아는 조선의 정치적 변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러시아와 중국은 중소 국경 분쟁으로 아무르 강과 우수리 강의 합류점에 있는 대우수리섬(黒瞎子島)을 두고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4년에 두 나라가 섬을 공동으로 관리하기로 합의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의 국경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동부 군관구 본부가 하바로프스크에 있으며, 도시 동쪽에는 공군기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르 강이 꺾여지는 곳에 Большой Уссурийский (발쇼이 우수리스끼)라는 섬이 있는데 대우수리 섬이라고도 한다. 이 섬은 2008년부터 러시아와 중국이 분할하여 차지하고 있는 섬이다. 중국의 최동단으로,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의 합수 지점에 있다.


Тарабаров (따라바로프) 섬 등 90여 개의 인근 섬들을 포함한 이 지역의 총 면적은 347 km²로, 인룽섬을 포함한 이 섬의 서부 174 km²는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자무쓰시(佳木斯市) 푸위안시(撫遠市)에 속하며, 동부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지방에 속한다. 2004년까지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 분쟁 지역이었다. 1929년부터 소련이 이 섬 전체를 차지하였지만, 중국은 이 섬을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하였다. 2004년 10월 14일에 러시아와 중국은 섬의 서부는 중국 영토로, 동부는 러시아 영토로 정하는 국경조약을 체결하였고, 4년의 준비를 거쳐 2008년 10월 14일에 섬을 동·서로 양분해 영토 분쟁을 종결지었다.


중국 동방조보(東方早報)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는 중-러 국경지대에서 경계비 제막식을 가졌으며 이로써 러시아는 발쇼이 우수리스크의 174㎢ 면적을 갖고 있는 인룽(銀龍) 전부를 중국에 반환했다. 이곳은 중국 국민당 정부 시절인 1929년 소련군이 점령한 뒤 러시아가 79년간 점유해 왔다. 중국은 소련과 러시아를 상대로 1964년부터 44년간의 끈질긴 협상 끝에 지난 7월 양제츠 외교부장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상대로 헤이샤쯔 삼각주 분할 합의를 얻어냈다. 중국 해군은 인룽 지역에 함대를 주둔시키고 흑룡강성 당국은 반환 지역에 상륙해 공식적인 중국 영토임을 선포하고 행정 관리에 착수했다. 


양국 정부가 2008년 7월에 서명한 중-러 동쪽 국경선을 획정하는 의정서와 부속 문건'은 이날부터 정식으로 효력이 발생하게 됐다. 중국 당국은 발쇼이 우수리스크 섬 절반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 1,800㎞ 안에 중국 동북지방과 러시아 극동지구, 동시베리아, 일본 전체, 한반도와 몽골의 일부분이 들어온다는 점에서 향후 동북아시아 경제권의 중심으로 주목하고 개발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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