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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세계 최초의 해상 식민지를 개척한 페니키아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2:03:52

페니키아는 고대 근동 지역의 여러 왕국들은 각 시대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관개 농업을 발전시키고, 국가 간의 무역, 외교, 동맹 체결, 패권을 획득하기 위한 전쟁 등을 통하여 교류해 갔다. 고대 근동의 왕국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각 중동 제국들의 영토를 효과적으로 정치 및 사회로 통치하기 위해서 관리들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 구역을 만들었고, 강력한 식민지 정책을 구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2개의 대륙 사이에 놓인 팔레스타인은 여러 민족의 이동과 이주의 통로였으며, 그 결과로 인해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 상당수의 셈어계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셈족들 가운데는 아람족, 모압족, 가나안족, 아모리 족 등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인도와 유럽 언어를 사용하는 아나톨리아의 하티 족으로 알려진 헷족, 해안 지역에 거주하던 후리 족, 필리스티아라 불리는 블레셋 인 등이 살았다.

인류 역사상 세계 최초의 해상 식민지를 개척한 페니키아


지중해 연안 곳곳에 도시 국가들이 세워졌으며, 예리고, 므깃도, 하솔, 게셀 등은 견고하게 요새화되었다. 이 시기에 페니키아에서는 초기 가나안 언어인 알파벳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가나안 언어는 고대 히브리어의 모체가 되었다. 고대 근동에 대한 이와 같은 관찰은 이스라엘의 기원을 확인하는 것에 있어 상당한 도움을 주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나, 이스라엘 초기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히브리 성경 내에 들어가 보면 고대 팔레스타인 나름의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특징과 만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는 고대 근동의 보편적인 상황 속에서 이해함과 동시에, 그들만의 고유한 상황과 특수성을 고려해야만 할 것으로 볼 수 있다. 족장 이전의 팔레스타인의 환경에 관해서는 세계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는 히브리 성경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始祖)이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가나안 이주(창세기 12장)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다만,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토대로 하여 족장 이전의 가나안 땅의 환경에 관하여 약간 그 모습을 재구성할 수 있는 정도이다. B.C 약 2000년경의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고대 근동의 역사는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형태의 대변혁의 시기였다. 이집트는 신왕조의 시작과 더불어 막강한 세력을 남북으로 팽창시켜 나갔다. 북쪽의 히타이트 제국 역시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이러한 강대국들의 틈에서 오랫동안 지배를 받아 오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아모리 인들의 이동과 함께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이들의 이주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독자적인 문화와 종교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밖에도,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지역에는 에돔(Edom), 모압(Moab), 암몬(Amon), 블레셋(Bleset) 등의 세력들이 머물러 살면서, 가나안 문화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들 세력은 주로 높은 문화 수준을 갖춘 도시 국가를 형성하였다. 한 통치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귀족 계급을 두고 있었으며, 때로는 도시 국가 간의 동맹 체제를 이루면서 중앙 집권 형태의 구조를 가진 제국들과 맞서 나갔다.


시리아-팔레스타인은 대략 B.C 1550∼1225년까지 이집트의 속국에 불과하였다. 19세기 이집트에서 발견된 엘 아마르나(El Amarna) 문서에 의하면 이집트의 식민지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외교 문서로서, 이 시대 가나안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가나안의 도시 국가 세겜(Segem), 라기스(Ragis), 아스글론(Asglon), 예루살렘, 가자(Gaza) 등과 군대 규모, 정복한 도시의 통치자들을 다스리는 방법 등에 관한 다양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이들 종족들 중 가장 강력한 페니키아 인들은 고대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북부에서 활동했던 민족 집단으로, 현재의 레바논 일대가 그 중심지였다. 비블로스(Byblos)라는 도시에서 발원했고, 인근에 시돈, 티레,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등 도시를 세운 해양 민족이었다. 중세 이후 대부분은 같은 셈족 계열인 아랍인에게 동화되었고 이탈리아인,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의 혈통에 관여하기도 했다. 페니키아는 현대 레바논 민족의 직계 조상이다. 레바논 인들 스스로도 그렇게 인식할 뿐만 아니라 유전적인 근거 역시 성립한다. 


흔히 페니키아인들이 동지중해 지역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학설이 재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는 추정일 뿐, 명확한 기록은 없다. 헤로도토스는 페니키아인이 지금의 페르시아 만 지역에서 지중해 지역인 레반트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언어나 신화 면에서 볼 때 페니키아인은 가나안의 다른 문화와 유사하다. 페니키아인들은 스스로를 가나안인이라 불렀다. 약 3400년 전에 제작된 아마르나 문서에서 페니키아인들은 자신들을 가나안 인이란 뜻의 케나아니(Kenaani) 또는 키나아니(Kinaani)로 불렀다. 이 아마르나 문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이른바 바다 민족이라 부르던 이들이 침략한 시기보다 1세기 이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약 2600년 전 밀레토스의 헤카타이오스(Hecataios)는 페니키아를 키나(χνα)라고 표기했고, 비블로스의 필로(Philo)는 <신화학(Mythology)>에서 “키나란 페니키아를 가리키는 말이다(Khina refers to Phenicia)”라고 기록했다. 이집트에서는 약 5000년 전부터 비블로스(Byblos)에서 레바논시다(Lebanonsida)를 배로 실어 날랐다.기록상으로 확실하게 3,000년이 넘는 고대 문명이면서도, 현대에 독립국가가 존재하여 그 민족 정체성을 지금까지 계승하고 있다.


레바논인과, 팔레스타인인의 조상인 블레셋 종족 등이 페니키아 인의 후손들이다.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민족이 페니키아 혈통들이며 고대 셈어로 이들을 부르는 명칭이 가나안이었던 것이다. 페니키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고 그리스어가 라틴어로 옮겨지면서 변한 이름이 푸닉(Punik)이다. 고고학에서는 페니키아를 지금의 레바논 해안을 중심으로 발전한 고대 문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주변의 고대 이집트, 미노아, 필리스티아, 이스라엘 왕국과 같은 여러 세력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발전했다. 약 4600년 전에서 3300년 전 사이에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민족 이동으로 인해 비블로스는 주변 민족들의 많은 침략을 받았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페니키아어와 아람어가 섞이게 되었다. 이후 수메르와 아카드의 군대가 지중해 연안을 점령하면서 페니키아는 히브리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했고, 35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역사적으로 알려졌다.


약 3400년 전에 작성된 아마르나 문서에 의하면 아모리와 히타이트가 페니키아의 여러 도시를 굴복시켰고, 비블로스 왕 리브-하다(Live-Hada)와 티르의 왕 아비-밀쿠(Abi-Milqu)가 이집트의 봉신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약 3350년 전에서 3300년 전 사이에 이집트가 페니키아를 탈환한다. 그 다음 세기에 우가리트(Ugarit)가 이 지역에서 발흥했으나 약 3200년 전에 멸망했다. 사학자 게르하르트 헬름(Gerhart Hellm)은 이 무렵에 갑자기 출현한 이른바 바다 민족이 여러 가지 고고학적 증거로 보아 페니키아의 발달된 항해술 또는 미케네 문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학자들은 여전히 페니키아의 기원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유적 발굴과 함께 언어학적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페니키아의 기원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유전자 지도 계획을 이끌고 있는 스펜서 웰스(Spenser Wells)는 과거 페니키아의 기원 지였던 레바논과 몰타에 거주하는 남성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페니키아의 기원을 밝히려고 했다. 


웰스는 이 연구를 통해 그들이 Y 염색체 상에 m89 염기 갖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와 같은 유전학적 연구 결과 그들 미케네 인과 바다 민족 페니키아 인과 유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세계의 투시도>라는 저서에서 페니키아는 주변 세계와 교류하여 세계 경제를 건설한 고대 국가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페니키아 문화와 해양 세력은 약 3200년 전에서 2800년 전에 융성했다. 페니키아의 주요 거점은 비블로스, 티레, 시돈, 시미라(Shimira), 아라두스(Aradus), 베리투스(Beritus)와 같은 도시 국가들이었다. 아마르나 문서에는 이 도시들이 모두 거론되고 있다. 페니키아의 특징을 나타내는 유물들은 5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은 페니키아 도시 국가들은 해양을 통해 레반트 지역과 교류했으며 많은 자원을 실어 날랐다. 약 3200년 전 철기시대에 접어들자 산토리니 섬으로 추정되는 북쪽 지역에서 화산 분화로 인해 흉년을 만난 바다 민족이 남하했다. 이들은 이집트, 히타이트 같은 잘 알려진 고대 시기에 강대한 국가들을 약화시켰다. 


이러한 지배력 공백으로 인해 페니키아의 많은 도시 국가들은 독립 권력을 얻었고, 이후 해양 세력을 바탕으로 독립을 유지했다. 페니키아의 권력은 왕, 성직자, 원로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비블로스는 도시 국가들 중에 가장 강성했고, 페니키아의 주요 거점이었다. 페니키아 알파벳 역시 비블로스에서 유래했다. 약 3000년 전 티레와 시돈이 발흥해서 오래지 않아 페니키아의 해양 패권을 분점 했다. 티레의 왕 히람 1세(Hiram I, B.C 969~B.C 936)은 당대의 가장 강성한 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페니키아 인은 가나안 인이란 이름과 함께 티레 인, 시돈 인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페니키아 인들은 당시 가나안 지역의 신들을 숭상했다. 약 3200년 전에는 주 신은 대부분 바알로 간주되었고, 페니키아의 신들은 후일 그리스 신화에 혼합되었다. 페니키아 인들은 22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진 인류 최초의 알파벳을 만들어 사용했다. 표음 문자였던 페니키아의 알파벳은 사용하기 쉬웠기 때문에 페니키아의 무역 활동을 통해 지중해 여러 지역에 전파됐으며, 후일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의 알파벳에 영향을 미쳤다. 약 3000년 전 페니키아 인들은 레바논, 키프로스, 시리아, 이스라엘 및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에 많은 묘비를 남겼다. 페니키아어는 카르타고어의 모태가 되었고, 카르타고-페니키아어는 5세기까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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