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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파판드레우 가문, 3대째 총리를 배출한 대를 잇는 좌파 명문 가문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3:08:01

그리스에는 좌파 정당이 3개가 있다. 온건 좌파를 지향하는 "범그리스 사회주의운동" 정당과 중도좌파의 "공산당", 극좌파의 "급진좌파연합, 일명 시리자"가 대표적인 그리스의 좌파 정당이다. 그 외에 중도우파로는 "그리스 신민주주의당"이 있는데 현재에 들어 사실상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당과 양당을 운영해오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스 공산당이 내전으로 인해 사라진 이후, 급진적인 공산당이 아닌 온건한 성향의 사회주의운동을 추진하는 정당이 나타났고 그 정당을 주도한 인물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요로요스 파판드레우 1세(Γεώργιος Παπανδρέου, 1888~1968)이다. 

요로요스 파판드레우 1세(Γεώργιος Παπανδρέου, 1888~1968),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파판드레우 1세는 히틀러의 침공으로 인해 망명한 정부를 포함하여 두 차례 그리스 총리를 지냈다. 그는 그리스의 사회민주주의적 개혁과 입헌군주제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인물이었다. 파판드레우 1세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입헌군주제와 급진적 서방식 개혁을 주장하는 중도 진보 성향의 자유당에 입당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왜 좌파가 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어쨌든 그는 좌파로써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그리스 제2 공화국 시기에는 내무부, 교육부 장관을 지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친(親) 히틀러 괴뢰 정부가 수립되자 이집트 카이로로 망명하여 망명 정부의 총리를 역임하게 된다.


이후 그리스가 해방되자 귀국하여 옛 자유당 인사들과 더불어 반공 레지스탕스,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규합해 파판드레우 중도연합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이 당의 속성은 극좌를 경계하는 중도좌파의 성격이 강했다. 1963년 총선에서 승리한 파판드레우 1세는 개인 통산 두 번째, 총선을 통해 그리스 공화국의 첫 번째 총리에 취임했으나, 중도우파를 대표하는 국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와 국정 운영의 방향을 두고 많은 부분에서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것으로 보면 역시 좌파와 우파는 절대 섞일수도, 타협조차도 볼 수 없는 물과 기름인 셈이다. 결국 1967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그는 실각했다. 


그리고 파파도풀로스에 의해 가택 연금으로 처리되었지만 1968년 11월 1일, 자신의 자택에서 의문사 당했다. 당시의 기사들을 종합해보면 파판드레우 1세가 자택에서 운동 후에 차를 마시는 습성이 있었는데 이 날도 격한 운동 후에 차를 마시고 갑자기 숨졌다는 것이다. 많은 기자들 뿐 아니라 나도 여러 자료들을 보고 검토한 결과 차에 누군가가 독을 넣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결론 지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군사독재가 정점이었던 때라 사인을 뻔히 알면서도 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축출된 현재 재조명한 결과, 치명적인 독에 의한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정되었다. 누가 독을 넣었는지는 아직 미스테리이다. 


그러나 독을 넣도록 지시한 자는 그보다 더 윗선인 군사독재의 수장인 파파도풀로스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파판드레우 1세가 평소에는 대인관계가 좋아 원한이 있는 사람은 국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와 군사독재의 1인자 파파도풀로스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는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하여 이탈리아 로마로 망명을 떠난 상태였기 때문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인물은 파파도풀로스 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미국 UCLA 경제학 교수로 일하던 아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이른바 파판드레우 2세가 그리스에 귀국하게 된다. 파판드레우 2세는 파판드레우 중도연합당을 계승하는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을 창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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