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고대 시대부터 이어온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사이의 바닷길 지정학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17 23:56:06

지정학이라는 것은 하나의 트랜드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통념은 늘 정설로 자리 잡았던 것도 아니다. 유목민족이 대륙과 세계를 지배했던 역사도 있었고 몽골제국처럼 유라시아 세계를 지배하며 육상에서의 지배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개념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육상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육상으로 세계 지배의 지정학적 속성은 늘 하나의 제국이 성공하면서 트랜드가 바뀌곤 했다. 유목제국의 시대를 종결시킨 것도 오스만 제국이었고 해양 시대를 출범시킨 것도 대영제국이나, 스페인 제국, 네덜란드가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오스만 제국이었다. 오스만은 16~17세기만 해도 지중해를 지배하는 세계 최강의 함대를 보유했었다.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를 연결하는 물류의 중심이자 지정학적 요충지인 남중국해(베트남어로 동해) 항구 베트남 무이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지구 반대편 아시아의 역사를 놓고 볼 때 특히 13세기는 점진적인 변화가 발견되고 있었다. 각국에서 중앙 권력이 확대되고 있었으며 대부분의 국가에서 외적인 팽창이 보이고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직접적인 지배지가 확대되고, 유교, 불교, 힌두-자바의 중앙 문화가 확산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13세기 종실 지배 체제하에서 중앙 권력 집단의 영향력이 커지고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하는 역사서가 편찬되었으며 쯔놈 문학이 발전했다. 캄보디아에서는 관료 제도가 정교해지고 여행자 휴식소를 설치한 것에서 파악되듯이 중앙과 지방의 소통이 활발해졌다. 


13세기에 자바의 통합은 거의 완성이 되었고 이는 자바를 중심으로 한 인도네시아 세계의 확대가 진행되고 있던 중이었다.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보이는 통합 노력의 원인이자 결과는 이 시대에 발현된 힘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쿠빌라이의 원나라 원정군들이 참파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각지를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으며 몽골 또는 중국의 북방, 남방 간에 벌어진 대결에서 북방의 도전에 대응하는 남방의 자신감과 승리는 13세기 문화 발전의 힘에서 온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샤일렌드라는 약 1세기 동안 동남아시아 해안 지대를 장악했던 해상 강국이었다. 사실 이러한 해상 강국은 보통 그 상업적인 번영 등을 놓고 고려해 볼 때 가장 짧고 굵게 그 역사적인 번영을 이루었던 대표적인 국가였다. 


단지 이들은 오늘날 인도네시아 지역을 장악하여 중개 교통지를 장악했다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지 샤일렌드라의 역사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처음 샤일렌드라를 접했을 때는 자바 섬과 수마트라에 고립된 국가나 다름 없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바 섬 각 지역에서 발견되는 비석들을 연구하고 금석학적인 부분, 그리고 이곳을 장기간 식민지로 삼았던 근현대 시기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자료들을 최대한 검토 해보았다. 그리고 크메르 제국의 비문과 기록, 인도 촐라 왕조가 자바 섬을 정복하고 스리위지야 왕국을 무력화시킨 이후의 촐라 왕국 측이 서술한 기록들도 확인했다.


특히 샤일렌드라에 대한 고고학적인 유적은 단연 보로부두르이다. 이 불교 유적은 당시 힌두교와 상좌부 불교로 통용되던 동남아시아의 특성상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승불교의 흔적이라는 것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었다. 그 정도 건축물을 건설했다는 것은 당시 샤일렌드라 왕국이 얼마나 부유하고 강대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샤일렌드라는 상업과 농업을 병행했고 익히 알려진 것은 대단한 해양 상술로 인도네시아 일대 전체를 지배했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본 연구를 진행하면서 파악한 것은 해적들을 소탕하여 그들의 항해술과 선박 건조 기술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막강한 해군과 상륙군을 건설했고 동남아시아에서 각지를 돌아다니며 해안가와 함선이 들어갈 수 있는 강을 따라 육지를 정복했다. 


결국 이들은 말레이 반도와 태국 남부 해안, 현 캄보디아 해안가와 톤레삽, 바탐방 일대를 장악했으며 메콩 델타까지 점령해 참파를 베트남 중부 지방으로 밀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멀게는 북베트남까지 진출해 당시 당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안남도호부 소속의 교주군을 정복했고 비록 장악 기간이 2개월에 불과했지만 중국 대륙을 장악하고 있던 당나라 정부도 당황시킬 정도로 강한 군사력과 함대를 지닌 강대국이었다. 물론 825년부터 세력이 약화되어 육상 식민지를 모두 잃었고 인도네시아 일대에서도 그 영향력이 축소되어 영지가 수마트라 섬에 한정지어질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샤일렌드라가 동남아시아에 끼친 영향력은 단순히 해안 지대를 식민지화 했다는 것에서 의미를 둔 것이 아니었다. 샤일렌드라의 동남아시아 해안가 진출은 대승불교를 동남아시아 전역에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일 크메르 제국의 앙코르와트 건축에도 샤일렌드라 불교 건축의 양식이 들어갔기 때문에 아름다움의 정수가 유지될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 각지를 정복하여 번영했던 샤일렌드라의 위명은 그 왕가가 수마트라의 스리위자야 가문에게 완전히 넘어가면서 멸망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가 존재했던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샤일렌드라 왕국은 크메르 제국과 더불어 동남아시아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강대국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0
유니세프
국민 신문고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