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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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민주국가인 미국에 크게 실망한 호치민은 1920년에 결국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다. 당시 식민지의 수많은 혁명가들이 러시아 혁명의 여파를 받았듯이 호치민 또한 사회주의에 입문하게 됐고, 그 시기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 러시아 혁명사를 비롯한 사회주의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1920년 제2차 코민테른 대회에서 러시아의 레닌이 발표한 ‘민족과 식민지 문제에 대한 태제’가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를 받던 국가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지지를 받았듯이 젊은 시절 호치민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1930년 호치민은 홍콩에서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당하게 된다. 만약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호치민의 호소를 받아 들여줬다면 호치민은 공산주의자가 아닌 자유 민주진영에서 활동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베트남 전쟁도 없었을 것이고 베트남은 공산국가가 아니라 자유 민주국가로써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 됐다면 호치민은 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않았을까? 이후 베트남 공산당 (일명 월맹)은 특유의 게릴라전법으로 마침내 세계최강 미국을 격퇴하고 그들로 하여금 베트남에 손을 떼게 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에서 미군철수를 선언하고 미군이 빠져나가자 마자 월남은 사이공이 함락당하면서 패망하고 말았다.

하노이 탕롱, 탕롱황성, 북베트남의 반동분자 색출 포스터,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쑤안록이 함락된 4월 21일에는 응우옌 반 티에우 대통령이 하야하고 곧바로 남베트남을 탈출한다. 이후에 4월 30일에는 결국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까지 함락되면서 기나긴 전쟁은 종결된다. 월맹군과 월맹의 지도부들은 최소 2년이 걸릴 것 같던 남부 해방 작전이 불과 55일 만에 끝난 것에 대해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남베트남에서는 베트남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이듬해인 1976년 월맹과의 통일을 선언하고 통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의도와는 반대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절반이 적화되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마저 적화되었고 버마도 적화됨에 따라 태국을 제외한 동남아시아 육지가 공산화된 것이다. 북베트남 내에서도 정치적 반대파들에 대한 탄압은 존재하였다. 이 와중에서 전 세계 공산권의 역사에서 거의 항상 발견되는 패턴인 좌파 내 지분 독점성 숙청도 여전했다. 이러한 숙청은 주로 트로츠키주의자와 아나키스트를 상대로 자행되었다. 현대 베트남에서이런 주제는 당연히 연구하기 힘든 지극히 민감한 주제이고, 외국 학자들도 주로 관심이 대미전쟁기에 집중 되다 보니 거의 연구 되지 않은 주제이긴 하다.
그러나 당시만 하더라도 인도차이나 출신 유학파들인 반 프랑스 급진 독립 운동가들은 소련 다음으로 19-20세기 급진 좌파의 역사에서 중요하다 할 만한 프랑스의 공산당을 비롯한 좌익 세력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고, 이 와중에 트로츠키주의나 아나키즘 또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1940년대 중후반, 외부적으론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며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국가를 형성하는 동안 호치민과 베트민 정권은 1945년 독립 이후 하노이에서 프랑스 유학파 트로츠키주의자 서클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따 투 터우(Tạ Thu Thâu, 謝秋收)를 암살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적들인 반동숙청을 자행했다. 이후 꾸준한 테러, 정치적 박해를 통해 '해방'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상당히 다채로웠던 인도차이나 반 제국주의 급진 민족주의 세력을 일당 독재적 지도 아래 통합했다. 물론 듀이커가 쓴 <호치민 평전>에 따르면 트로츠키주의자 따 뚜 떠우를 암살한 이후 호치민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당시 베트민 정치범 석방 운동을 하던 프랑스 출신의 스페인 아나키스트 CNT 소속혁명가, 저널리스트였던 다니엘 게렝에게 자신과 상관 없는 공산당 평당원들이 저지른 우발적 테러라 주장하며 "그는 훌륭한 애국자지만 근본적으로 잘못된 노선 위에 있었다. 어쨌든 그리 죽은 건 애석한 일이다"라며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도 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호치민 국가 주석 사상에 따라 민족독립 목표를 견고히 하는 것은 정치부가 제시한 정신이다. 13기 전국 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2019년 5월 30일 발행한 35호 지시는 당의 정책, 방침, 방향에 대해 강조하게 된다. 또는 베트남 공산당 당원들은 베트남의 사회주의의 길로 가는 과정에 겪게 된 침략 외세로부터 생기는 어려움, 시련 앞에서 의지와 방침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중요한 행사가 생기기 전에 항상 외세들은 베트남 혁명을 공격하는 활동을 확대한다. 이 활동들의 목적은 베트남의 사회주의의 길을 없애 버리면서 정치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시민들을 당의 지도, 사회주의의 길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하려는 것이다. 과거의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하여 베트남의 민족 독립은 사회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베트남의 유일한 선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 세기 후반과 20 세기 초반에 베트남 혁명은 민족 해방의 길에 위기에 처하였을 때 응우옌 아이 꾸옥(Nguyễn Ái Quốc) 지도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10월 혁명 이론,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상을 습득하여 베트남에서 적용하기 시작하였다. 공산당 탄생 이후, 민족 독립과 사회주의로 인해 베트남 혁명은 성공한 셈이지만 결국 경제적으로 폭망하여 도이머이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는 공산주의가 다 똑같은 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해당 국가의 문화, 정치 경제적인 요소, 각종 환경 등에 따라 다르다. 즉, 북한식 공산주의가 있고, 중국식 공산주의가 있으며, 베트남식 공산주의가 있고, 라오스나 캄보디아, 미얀마식 공산주의가 있다. 과거에는 소련식, 쿠바식 공산주의가 있었을 것이고, 그 외에는 사회주의 방식이 적용된다. 공산주의의 핵심은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의 철폐 및 공유화다.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공산화, 공산주의는 북한식 공산주의다. 자유를 박탈하고 모든 것을 통제 하에 예속시키는 것, 어떤 자유든,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거주지 이동을 위한 '여행증' 발급, 표현의 자유 억압, 종교의 자유 박탈, 노동조합 및 독립 언론 금지 등으로 시민적, 정치적, 종교적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한다. 베트남의 경우, 중국과 비슷한 부분이 많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다르다. 언론 제한이야 기본이고, 외국인에게는 통제가 있다. 우선 외국인은 입국하고 나서 거주등록을 해야 하고, 장기 비자를 받았을 경우, 외국인 등록증을 따로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6개월에 한 번은 외국에 나갔다가 재입국해야 한다. 외국인은 자기 이름을 사업자 내고 사업할 수 없지만 아파트나 주거지 등은 자신의 이름을 내고 살 수 있는듯 싶다. 요즘 베트남은 외국인들이 아파트를 많이 사고, 부동산 투자 등으로 인하여 그 거품이 큰 편이다. 그리고 중국처럼 후커우(戶口) 제도 같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런 제도는 없다. 누구나 IN 하노이, 혹은 IN 호치민 할 수 있고, 국가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
베트남은 여행이 자유로운 나라다. 국내 어디든 다닐 수 있지만 한 곳에 장기간 체류하려면 관할 공안에 신고는 해야 한다. 종교는 자유롭게 믿을 수 있지만 포교는 안 된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카톨릭, 이슬람, 불교, 샤머니즘 등이 공존하고 있다. 경제나 취업활동은 전형적인 자본주의를 따른다. 정치는 일당 독재지만 국민들의 대표가 지도부를 뽑는다. 당은 하나도 표면 뿐인 야당은 두 어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냥 있으나 마나고, 그 안에서 주석과 총서기 & 총비서가 있는데 이 직책 또한 당 내에서 투표로 뽑는다. 베트남에서는 일당 독재는 존재해도 일인 독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베트남은 책에서 배우고 언론기사, 미디어, 유튜브, 다큐멘터리에서 알려준 공산주의와는 분명 달랐다. 북한, 중국보다는 오히려 자유로웠고, 두 국가보다는 훨씬 나았다. 북한, 중국,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이처럼 저마다 특성에 따라 다르다. 예전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탈린, 혹은 트로츠키, 마오이즘 등등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중국과 베트남의 경우, 그런 이념은 거의 정치적으로 국한되고 요즘에는 거의 자본주의에 따라 살고 있다. 그리고 북한보다 훨씬 자유로운 국가들이라 볼 수 있겠다. 이런 것으로 보면 공산주의에 대한 의구심이 생긴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탈린, 트로츠키, 마오이즘 같이 오리엔탈적인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를 입힌 공산주의로 오히려 2.0 버전의 진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인식하는 공산주의는 북한식 공산주의다.
모든 자유를 잃고 속박당하며 중공의 문화혁명처럼 반동분자로 몰려 처벌당하고, 끊임없는 인권탄압에 시달리는, 그런 공산주의일 것이다. 적어도 중공식이나 베트남식은 어느 정도 제한은 되지만 자유라도 주어진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세부적으로 보면 공산주의 통제의 사슬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겉으로 보면 자유주의 국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