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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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맘은 물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청결을 중시하는 이슬람 문화에서 비롯된 목욕 시설이다. 하맘은 목욕탕 내부가 모두 대리석으로 되어있어 웅장함과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탕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중앙에 있는 ‘교벡타쉬’라는 이름의 둥근 모양의 돌을 볼 수 있다. 이 돌을 중심으로 사방에는 세면대와 세면도구들이 위치해 있다. 한국과 다른 하맘의 가장 큰 특징은 목욕탕 욕조 안에 물이 없다는 점이다. 뜨거운 물이 있는 욕조 안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는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터키 목욕탕 하맘(Hamam) 내부의 풍경, 출처 : 터키 아다나 하맘박물관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터키 사람들은 뜨끈하게 덥혀진 대리석 방에 앉아 열기로 땀을 내고 수건으로 때를 미는 방식으로 목욕한다. 고여 있는 물을 부정하게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하맘에서는 욕조는 물론 세면대에도 물을 받아 놓지 않는다. 또한 하맘에서는 옷을 벗고 목욕을 하지 않는다. 터키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에 속하기 때문에 동성 간에도 신체의 중요 부위는 노출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맘에서는 수영복을 입거나 중요 부위를 가린 채 목욕을 한다. 이 때문에 터키의 일부 소규모 하맘에서는 남녀가 함께 목욕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슬람교 발원지인 서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목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슬람 신자는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손발과 귓속 등을 깨끗하게 씻었다. 신 앞에서 몸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목욕 문화도 함께 발달하게 된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도시에 모스크, 도서관, 학교, 병원 등의 시설들을 세울 때 하맘을 모스크 옆에 함께 지었다고 한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을 정복했던 오스만투르크 제국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이스탄불에 목욕탕을 19곳 지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17세기 이스탄불에만 하맘이 151군데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술탄 술레이만 1세가 아내 록사나를 위해 16세기 건축한 '아야 소피아 휘렘 술탄 하맘'은 지금까지 남아 영업을 하고 있다. 한 때 모스크였던 아야 소피아 옆에 지어서 지금도 유명하다.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도 하맘 유적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의 테살로니키에는 15세기에 지은 하맘이 남아 있고, 이집트 카이로에도 하맘이 한 때 최대 300곳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맘은 우리 상식 속 목욕탕과는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목욕탕의 핵심인 대형 욕조에 뜨거운 물이 담겨 있는 온탕이 없기 때문이다. '페쉬테말'이라는 속옷 역할을 하는 수건을 두르고 하맘에 들어서면 둥근 대리석 판이 있는 공간이 나온다.
목욕탕 가장자리 개인 세면대에서 샤워를 하고 나면 이 공간에 모이게 된다. 욕탕이 있을 자리에 돌판이 있다. 달궈진 대리석 위에서 몸을 지지고, 땀을 낸 다음, 때밀이와 마사지를 받고, 몸에 따뜻한 물을 끼얹는게 하맘의 목욕이다. 오히려 우리 찜질방과 더 닮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찜질돌인 교벡타이는 지지면서 그냥 자도 된다. 찜질방에서 땀을 내고 때를 민 다음, 욕탕에는 안 들어가고 샤워만 하고 나오는 식이다. 터키인들은 고여 있는 물은 청결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온천물이 쏟아져 나오는 지역이 아니면 터키식 목욕탕에는 욕조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맘은 터키인들이 친구를 만나고 정치적 의견을 나누는 사교장 역할을 했다. 특히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슬람 문화권 여성들이 모여 환담을 나누는 곳이었다. 결혼을 앞둔 신부는 결혼 전 '신부의 목욕(겔린 하맘)'이라는 행사도 열었다. 하맘에서 마을 여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목욕도 하며 결혼 생활의 비법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사실 서방의 목욕 문화는 로마 제국이 유럽 전역으로 널리 퍼뜨리게 된다. 그런데 서유럽의 목욕 문화는 중세를 거치며 쇠퇴했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목욕하고 단장하는 행동이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한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14세기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당시 유럽 의학계는 "뜨거운 열과 물이 피부에 입구를 열어 역병이 쉽게 침투하게 한다"고 진단해 목욕문화는 사라진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발견되기 이전이고 청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던 시대라 벌어진 일이다. 서유럽에서 대중목욕은 19세기까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유럽에서는 19세기 들어 대중목욕 문화가 다시 생겨났다. 이 시기 터키의 하맘이 영국에 상륙하게 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터키에서 활동했던 영국의 외교관 데이비드 우르쿠하르트가 1850년 여행기 '헤라클레스의 기둥'에서 하맘을 소개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영국 빅토리아 시대(1847~1901)에 터키풍 목욕탕은 선풍적 인기를 끌며 한때 600곳 이상이 영국에서 문을 열었다고 한다. 구조는 하맘과 비슷하지만, 찬물에 몸을 담그는 냉탕이 있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