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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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царь)는 러시아나 불가리아 등의 동유럽 슬라브 민족 국가에서 군주에 대한 호칭이다. 정식으로는 1547년 이반 4세의 대관식(Коронация)이후 이 칭호를 사용한 때부터, 1721년 표트르 대제가 임페라토르(Imperator)의 칭호를 가질 때까지의 러시아 황제의 칭호이나, 이후에도 병용되었다. 어원은 로마의 집정관인 카이사르에서 왔으며, 고대 러시아에서는 비잔틴 제국 황제, 킵차크 한국의 칸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차르가 착용한 검들, 출처 :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역사박물관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그러나 1453년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여, 1472년 이반 3세가 그 최후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조카 소피아와 결혼한 후, 러시아 정교의 보호자로서 그 후계자가 되자, 그 풍습과 더불어 정치 이념도 도입하여 대공은 차르, 대주교는 총 주교라 부르게 되었다. 이 칭호의 채용은 모스크바 대공의 지위 강화를 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차르의 어원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라틴어의 ‘카이제르(Caiser)’로 불리고 있다. 중세의 슬라브계 여러 문헌에서는 일반적으로 국왕을 의미하고, 공식적으로는 917년 불가리아에서 지칭되기도 했다.
그리고 1346년 세르비아에서 군주의 칭호가 되었으며 당시 강대한 국력을 지니고 있던 국가들이 흔히 사용하던 군주의 칭호가 된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이반 3세가 다른 칭호와 함께 병용하는 형식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1547년의 이반 4세 대관(戴冠) 때 정식 칭호가 되었다. 1721년 표트르 1세가 원로원으로부터 ‘모든 러시아의 황제(Imperator)’의 칭호를 받은 이후에는 이것이 러시아 군주의 정식 명칭이 되었으나 ‘차르(Tsar)’는 이와 병용해서 11월 혁명 때까지 러시아 황제의 관습적인 칭호로서 러시아 내외에서 사용되었다.
차르주의(Tsarism)는 루스 차르 국 및 러시아 제국인 모스크바 대공국의 전제군주제, 이후 절대군주제를 말한다. 차르주의 전제군주제에서는 국가의 모든 부와 권력이 차르에 의해 통제되고 분배되었다. 러시아의 군주제에서는 의회를 비롯한 통제 수단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르는 서유럽의 군주들에 비해 더 막강한 권력을 누렸으며, 심지어 서유럽 군주들이 독점하지 못한 종교적 권위까지 가질 수 있었다. 보통 이반 3세를 차르주의의 시조로 보여 지며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붕괴된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차르주의의 전통이 소련의 전체주의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