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3818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빨치산의 태평소 소리 좋아했던 미군, 국악의 전도사가 되다[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2] 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민족·국제 이희용(hoprave)▲가야금 타는 해의만만년의 해...
원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과 분열로 인해 이 지역에 거주하던 페르시아계가 독립했고 그 결과 아르타셰스 1세(Artashes I)가 아르메니아 왕국을 세움으로써 그 역사가 시작되었던, 아르메니아 민족의 기원지로 여겨질 정도의 성지(聖地)였으며 본래 아르메니아 땅이었다. 현재의 터키령인 아나톨리아와 카프카스를 이어주는 회랑에 위치하고 있었고 카프카스의 험준한 지형을 피해 평야 지대를 끼고 있었던 지리적인 입지 조건으로 인해 이민족의 침략이 빈번한 지역이었지만 그래도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지역에 줄곧 터전을 잡고 살아왔다. 이후 페르시아계인 사산 왕조가 이곳을 지배했지만 비잔틴 제국의 지배기 때 비잔틴 제국의 영향을 받아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세워졌다.

A joint press conference of Iranian Foreign Minister Hossein Amirabdollahian and his Armenian counterpart Ararat Mirzoyan in October 2022. Picture courtesy Press TV
혈통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지만 종교는 동로마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무슬림들의 지배를 받은데 이어 조지아의 바그라티온 왕국의 지배를 받아 조지아-아르메니아 땅이 되었다. 그러나 카자흐 초원과 중앙아시아 일대에 서돌궐의 후예인 오구즈인들이 강성해지면서 카프카스로 넘어왔고 오구즈계의 가문 중 하나인 셀주크 가문이 강력해지며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셀주크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때부터 아제르바이잔의 선조들이 나고르노-카라바흐에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몽골-타타르의 지배 이후, 아르메니아는 이란에 사파비 왕조가 들어서면서 사파비 왕조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면서 아르메니아계 하첸 공국이 들어서면서 5개의 멜리크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아크코윤루라 불리는 백양 왕국의 후예인 아제르바이잔계 사르잘르-자반시르 씨족이 갑자기 부상했다.
그리고 사르잘르-자반시르의 수장인 패나핼리한 자반시르(Pənahəli xan Cavanşir)는 1750년경 카라바흐 칸국(Qarabağ xanlığı)을 건국하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러시아는 같은 정교회인 아르메니아를 선택함으로써 좁게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넓게는 카프카스 남부 지역을 두고 러시아와 이란이 격돌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와 이란은 카프카스 영토와 국가와 관련한 통치권을 놓고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다. 여기에 힘입어 카라바흐 칸국의 지배세력인 아제리계와 피지배세력인 아르메니아계가 서로 충돌을 벌였다. 그 결과 18세기 말에 이르러 카라바흐 일대는 아르메니아계가 오스만 제국 등 다른 지역으로 피난하여 급격히 공동화되었으며 러시아 제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카프카스 이남을 정복하자, 다른 지역으로 피난했던 아르메니아계가 다시 카라바흐 일대로 재이주하였다.
이러한 이주 현상이 잦아지니 아르메니아인과 아제르바이잔인 간의 대립은 더욱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의 통제 하에 있던 나고르노-카라바흐는 1905년부터 1906년 사이에 아르메니아인-아제르바이잔인 학살(Erməni-azərbaycanlı qırğınları)이라는 인종 청소가 벌어진다. 러시아는 당시 일본에게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상태라 이와 같은 인종 청소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이 어마어마한 조직적인 학살과 무력충돌이 상호 간에 자행됐다. 물론 최종적으로 러시아가 코사크 기병을 비롯한 병력을 투입해 소요사태를 진압하긴 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양쪽이 무려 20만 명이 넘는 인원이 학살되었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이라는 당사자 뿐 아니라 이란과 러시아도 끼어 있어 이 분쟁은 하루 이틀에 끌날 그저 그런 사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