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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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2세의 조카 사위 유스포프 공작이 쓰던 궁전으로 그 유명한 라스푸친이 살해된 역사적인 곳이다. 펠릭스 유수포프(Феликс Юсупов)는 유수포프 가문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수포프 가문은 흑해-카스피해 스텝 지대에 있었던 노가이 칸국의 무슬림 투르크 혈통을 이어받았고, 이반 4세 때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 러시아 귀족들 중의 상당수가 이러한 타타르계로 나타난다. 유수포프는 가문의 7대 종주인 어머니 즈나이다의 성씨고, 아버지는 펠릭스 펠릭소비치 수마르코프-엘스톤(Феликс Феликсович Сумароков-Эльстон)백작이었는데, 어머니가 유수포프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라 외할아버지에 의해 어머니의 성씨와 작위를 따랐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이카 궁전의 응접실, 출처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관광청
아버지의 작위인 수마르코프-엘스톤 백작위 역시 물려 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유수포프 공작 겸 수마르코프-엘스톤 백작으로 칭했다고 한다. 딸을 기대했던 부모에 의해 어렸을 때는 여장을 하고 자랐으며, 어느 정도 자란 이후로도 여장을 취미삼았다. 젊은 시절에는 미소년 소리를 많이 들었을 정도로 외모가 수려했던데다가, 당대 미녀로 손꼽혔던 어머니를 닮아 여장한 모습이 상당히 예뻐서 호색한으로 유명했던 영국의 에드워드 7세가 진짜 여성으로 생각하고 작업걸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이를 들통나서 혼난 이후로는 여장을 그만두었다. 펠릭스의 형은 젊었을 때 결투 중에 죽었고, 펠릭스가 유수포프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펠릭스의 아내 이리나 알렉산드로브나는 니콜라이 2세의 여동생인 크세니아 공주(1875-1960)의 딸이자 알렉산드르 3세의 외손녀로, 펠릭스는 니콜라이 2세의 조카사위가 된다. 펠릭스의 장인 알렉산드로 미하일로비치(애칭 산드로, 1866-1933)는 니콜라이 1세의 막내 아들 미하일의 4남으로, 자신의 아내 크세니아에게는 5촌 아저씨가 된다. 니콜라이 2세의 조카 사위 유스포프 공작이 머물렀던 궁전이지만 로마노프 말기의 정치 수도자였던 라스푸친이 이곳에서 살해되었다.
흔히 라스푸친을 두고 러시아 만악(惡)의 상징이자 저주의 상징이라고 했을 정도로 평판이 상당히 좋지 않다. 그 영향으로 인하여 라스푸친은 악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괴승이라고 했다. 그러나 라스푸친의 실제 행적을 봤을 때 정말 그럴까? 라스푸친은 귀족 중심의 로마노프 체제를 서민 중심으로 바꾸려했던 급진개혁가였다. 그의 정책은 귀족들의 집단 공격을 받아 실패했지만 라스푸친의 친(親) 서민 정책은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 러시아 학계에서 라스푸친은 재평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탁월한 의술과 기도 능력으로 니콜라이 왕세자의 혈우병을 고쳤다. 그 일로 인해 니콜라이 2세의 눈에 들어 궁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귀족들의 권한이 워낙 막강해 차르의 권한이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니콜라이 2세를 등에 업은 라스푸친은 친(親) 서민 정첵으로 농노 해방령 이후 해놓은 적 없는 정책들을 내세우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매우 파격적이었고 귀족들이 매우 싫어했던 정책들이었다.
1. 귀족들에게 세금을 내게하며 군에 관한 부분을 귀족들의 재력으로 충당케 했다.
2. 서민들도 능력이 있음 누구나 귀족이 되거나 정부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3. 모든 러시아인의 재력을 조사하여 재력 순서에 따라 벌어들인 10분의 1일을 세금을 내게 했지만 재력가들의 경우, 그보다 더 많이 내게하여 재력을 충당했다.
그 외에도 귀족과 왕족들이 갖고 있던 토지들을 서민들에게 개방했고 농노해방령 이후, 갈곳 없이 헤메던 전직 농노들에게 일자리를 갖게 해주었으며 노조를 장려해 서민대표를 세우고 각 공장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사항에 대해 정부에 신고하도록 하는 등의 정책을 피도록 했다. 그래서 라스푸친이 죽기전 자신이 서민의 손이 아닌 왕족이나 귀족의 손에 죽는다면 얼마 못가 로마노프 왕조가 망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 그냥 경고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 서민들과 농노들을 착취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귀족들과 왕족들의 행태에 서민들과 농노들은 임계치가 넘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었던 상황까지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스푸친이 괴승이 된 것은 그로 인해 재산을 잃었던 왕족과 귀족들이 그를 괴승으로 만들었고 그에 대해 근거 없는 낭설을 퍼뜨리며 악의 상징으로 몰아갔다. 루스의 루시퍼의 재림이라고까지 퍼뜨린 그들은 결국 라스푸친을 죽인지 1년만에 11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정권이 막을 내리게 되면서 그들도 같이 파멸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