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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우크라이나 한국 오신트들의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1 12:43:28

"러시아인은 슬라브인이 아니라 핀족(코미족)과 타타르인의 잡종일 뿐이며, 루스키의 역사는 전부 조작돼었다. 돌고루키의 아들은 키예프를 불태우고 야만적으로 파괴했으며 자신을 루스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모스크바는 지도에서 루스 공국이 아니라 울루스로 표기되었으며 몽골 왕조의 개인부동산이였다."

핀족은 9세기에 그 역사에서 민족성과 그 이름이 나타난적도 없고, 그러한 기록도 없다. 타타르인들 또한 러시아에 9세기에 나타난 적 또한 없다. 핀족이 역사에 나타난 것은 우랄핀족이 발트핀족과 볼가핀족이 나뉜, 빨라야 11세기 정도다. 뭘 근거로 러시아의 역사가 조작되었다 했는지 모르겠는데 우크라이나야 말로 역사가 조작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우크라이나라는 말조차도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돌고루키의 아들이 키예프를 불태운 이유가 킵차크 칸국의 소속으로 모스크바와 노브고로드, 그리고 남쪽 랴잔 공국을 약탈하려 했기 때문에 토벌 작전에서 키예프를 점령한 것이고 당시에 루스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두드러지지 않았기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루스 민족주의를 주입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우크라이나의 전통 변발 모양 호홀을 하고 있는 남자가 전통 악기인 반두라를 연주하고 있다. 출처 : 키예프에서 필자의 직접 촬영

당시 모스크바는 지도에서 울루스로 표기된 것은 키예프도 똑같다. 왜냐면 킵차크 칸국의 직간접적인 지배 및 굴종을 당했기 때문이다. 루스 슬라브의 근거지가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밀려난 것은 몽골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고, 도시로써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때 몽골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던 노브고로드가 슬라브의 중심으로 부상한거고 블라디미르-수즈달로 중심이 또 옮겨갔다가 돌고루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모스크바다. 모스크바와 러시아가 루스가 아니라 울루스라고 표기되어서 타타르-코미족으로 분류되는 핀족과 잡종이라 주장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우크라이나는 코사크와 오스만투르크의 잡종이다. 드네프르 강 남쪽이 누구의 지배 하에 있었는지 보면 확인이 가능하며 우크라이나의 전통 변발 모양 호홀은 타타르와 투르크의 변발문화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는 핀족, 코미족 등등 우랄 계열이나 타타르 계열과는 유전적으로도 완전히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종교적으로도 과거부터 그들은 키예프나 모스크바 정교회 소속도 아니었다. 우크라이나라는 이름 자체가 빨라야 20세기 초에서 나타나는데 무슨 근거로 그게 우크라이나 역사라는 것이 증명이 되는지 그것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키예프 공국도 루스 슬라브인들이 882년 내려와 도시를 재건하지 않았던 이전에 무슨 이름이었는지도 기록에 없다. 사실상 러시아-우크라이나는 고, 중, 근세 시기까지 서로 공존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단순한 명제로 분할하여 평가하는게 불가능하다. 그렇게 분할할 것이면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20세기부터가 맞다. 

이는 우크라이나판 동북공정을 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의 최고 대학인 키예프 세브첸코 대학의 저명한 교수들도 슬라브 고문서를 해석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안다고 젤렌스키 정권에 편승하여 대한민국에서 "우크라이나판 동북공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우크라이나 오신트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본인들이 고문서 해독한 것이 아니고 죄다 만들어 낸 소설들에 불과하며 확실한 근거와 출처가 있는 내용들 또한 아니다. 그렇게 역사 왜곡한다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쟁하고 있는 동안 자기들의 피해자 코스프레 및 피해자로써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 왜곡은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정당성에 독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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