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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라리자니와 모하메드 갈리바프의 비교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1 12:48:24

알리 라리자니가 죽었다 한다. 그는 언론인 출신으로 1979년 IRIB 국제부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생하자  혁명수비대에 입대하여 군 경력을 쌓았고 11년 동안 군에 있었다. 그의 군 경력은 정치가로써의 길을 여는 원동력이 되었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에도 그는 10여년을 언론계에 종사했다. IRIB 국제부에 있으면서 다양한 나라에 대한 취재 및 소식을 알려오면서 역량을 쌓았고, 국제 외교적인 부분에서 뛰어난 수완을 자랑했다. 

알리 하메네이 사후, 알리 라리자니가 이란 언론에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출처 : https://krdnews.org/

그 덕택에 라리자니는 2004년 8월, 알리 하메네이의 국가안보고문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두 차례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처음에는 낙선했고, 두번째는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에서 그의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 그는 페제슈키안 대통령과 친하게 지냈고, 그의 지명으로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알리 하메네이의 최측근으로 언론과 외교에서 성과를 나타낸 인물로, 알리 하메네이의 사후, 현재 남아 있는 혁명수비대 지도층 중에서 페제슈키안과 더불어 그나마 온건적인 인물로 분류된다. 

이런 그와 대치되는 인물이 모하메드 바게르 갈리바프(Mohammad Bagher Ghalibaf)다. 갈리바프는 쿠르드족 혈통으로 19세 때 군에 입대해 당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활약했던 인물로, 모흐센 레자이가 퇴역한 후 이슬람 혁명 수비대 항공우주군 사령관이 되었을 정도로 정통 군 출신 인사로 매우 강경한 인사다. 대표적인 일이 모함마드 하타미 대통령 시기인 1999년 7월 학생 시위 때 하타미 대통령에게 "시위 진압을 하지 않으면 군이 하겠다"고 경고함으로써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신임을 받아 경찰청장이 된다. 이는 갈리바프가 얼마나 강경한 인사인지 보여주는 한 예라 볼 수 있겠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신임 라흐바르로 선출되었지만 군사적 실권은 라리자니가 계속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었다. 그러나 신임 라흐바르가 선출이 되면 이란의 정치 구조상 라흐바르가 아닌 제3의 인물이 군사적 실권을 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결정권은 라흐바르가 갖고 있고, 라흐바르가 모든 것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라리자니가 그나마 낫다고 보는 것 중에 하나가 그의 연줄 또한 미국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딸 파테메 아르데시르-라리자니(Fatemeh Ardeshir-Larijani)는 테헤란 의과대학교를 졸업하고 201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2021년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다. 

라리자니의 조카들과 자녀들 중, 4명이 영국에 있고, 2명이 미국에 있으며 1명은 캐나다, 1명은 스페인에 있다. 만약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란과 대화하려 했다면 라리자니 접촉하는 게 오히려 나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만약 라리자니가 죽은게 사실이라면 라리자니의 자리는 갈리바프가 승계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강경파로 회담 가능성을 오히려 줄인 결과가 된다. 이스라엘이 초토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저 인물 제거에만 혈안이 된 이스라엘이 라리자니를 제거했다는 것은 협상 자체를 하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는 얘기다. 라리자니 제거해봤자, 어차피 강경파들은 더 많이 득세할 것이다. 

이란에서는 그가 죽었다는 보도에 사실이 아니라는 반박과 어떤 언론사에 따라 코멘트도 하지 않고 있지만 그가 설령 죽었다 해도 전세가 달라지는 일은 없다. 그가 죽는다고 호르무즈가 해결될 것도 아니고, 이란이 항복하거나 현 정부가 뒤집힐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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