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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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군대가 동물 군대에게 패배한 역사적인 사건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특수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런 식의 특수군사작전이 역대 기록에 얼마나 있는가 봤더니 마침 호주에서 1932년에 벌어진 호주군이 에뮤(Emu)를 상대로 한 특수군사작전이 존재하고 있었다. 에뮤는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타조 같은 동물로 캥거루와 함께 호주 국장에도 들어간 동물로 알려져 있다. 생김새나 생태는 아프리카 타조나 남미 레아 같은 다른 평흉류 새들과 비슷하지만 타조나 레아에 비해 날개가 매우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발톱도 1개고 긴 목의 중간부분까지 깃털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과일, 작은 동물, 곤충, 풀뿌리와 곡식을 즐겨 먹으며 다른 타조류처럼 발톱이 매우 튼튼하고 최대 60km/h의 속력으로 달릴 수 있으며 수명은 30년 정도 산다. 호주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에뮤와 호주 군대는 왜 전쟁을 벌이게 된 것일까?

현 오스트레일리아 각지에 서식하고 있는 에뮤 무리,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1932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얼마 되지 않은 호주에서는 배운 기술이 거의 없는 퇴역군인 다수가 정부로부터 농경지를 받아 농부로 변신하면서 새로운 삶을 꾸리게 된다. 문제는 서부 지역의 벌판에 농경지들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토착 조류였던 에뮤의 영역을 침공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로 인해 인간과 조류의 갈등이 생겼다. 농부들이 농작물을 섭취하는 토끼 같은 작은 야생 동물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쳤지만, 타조와 비슷한 에뮤 무리들은 그와 같은 울타리 따위는 큰 몸으로 들이받아 가볍게 부수고 들어와 농경지를 휩쓸며 농작물들을 망치기 일쑤였다. 특히 그 해 9월은 기록적인 대기근으로 인해 전 세계가 곤경에 처한 상황이었다. 이 시기에 우크라이나 ???????? 에서는 "홀로도모르", 카자흐스탄 ???????? 에서는 "카자흐 대기근"이 발생했던 시기였기에 어떤 기후, 환경적인 변화로 인해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던 환란의 시대였던 것이다. 이 에뮤 무리들 또한 먹이가 부족한 상황에 시달려 농경지에 지속적으로 침입해 밀밭을 헤집어 놓았다.
실제로 당시 신문에서는 이들을 에뮤 군단(Emu Corps)이라고 기술했다. 그리고 당시 에뮤와 맞서 전쟁을 벌인 농부들과 군인들은 이 표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에뮤들이 한두 마리였다면 밭을 초토화시키는 멧돼지 정도 수준으로 가볍게 넘기겠지만, 멧돼지와는 달리 에뮤 군단의 수가 2만 마리가 넘는다는 것이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농부들은 거대한 에뮤 군단을 목격하고는 처음에 관공서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에뮤의 수는 지방 관공서가 인도적으로 통제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이에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경력이 있던 농부들이 기관총으로 적을 섬멸시킨 경험이 있기에 큰 조류인 에뮤정도야 잘 처리할 것으로 생각해 정부에 군 파병을 요청했다. 이와 같은 심각성을 보고 받은 호주 정부는 의회에 이를 상정해 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당시 호주 국방장관인 조지 피어스(George Pearce 1870~1952)가 대민 봉사 겸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대비한 사격 훈련을 목적으로 루이스 경기관총 2정과 탄약 1만여 발을 지참한 병력을 파병했다.
부대는 왕립포병분대가 10월 말 출정했으나 10월 31일 갑작스런 폭우가 쏟아져 일정을 미루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예정된 일정보다 늦게 도착한 군대는1932년 11월 1일부터 11월 9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 호주 서부에서 에뮤와 인간 사이에 벌어진 특수군사작전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새 때문에 전쟁을 선포한다는 것이 어이없는 일일 수도 있고 동물보호단체에 어마어마한 비난을 감수해야 하지만, 당시에는 대기근으로 인해 식량난도 심각했기 때문에 신문 1면에 에뮤와의 전쟁은 대서특필할 만한 사건이었다. 지금이라면 동물학대로 인식하여 대서특필이 될 부분이다. 물론 대영제국 연방 문화의 특유로 과장하는 습성을 이용햐 에뮤 대전쟁(Great Emu War)이라는 명칭을 붙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나라와 다르게 호주의 경우는 현대에도 동물원 코끼리가 탈주한 얘기가 일간지 1면에 실릴 정도로 동물과 연관된 사건이 대서특빌 되는 것이 이상한 문화가 아니다.
처음에는 기관총이 있기 때문에 큰 새 1만 마리 정도는 쉽게 토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에뮤는 달리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평지에서는 군용 트럭으로도 쫓아가기 힘들었고 거대한 체구에 지방으로 구성된 피부가 생각보다 단단하여 총에도 쉽게 죽지 않았다. 에뮤와의 대결에서 사람으로 이루어진 군대가 오히려 고전했던 것이다. 기관총을 사람끼리 전쟁하는 것처럼 원거리에서 사격해보니 시속 60km에 달하는 속도로 달리는 에뮤를 맞추는 것 자체는 쉽지 않았다. 물론 에뮤도 동물이기 때문에 머리나 다리에 총을 맞으면 죽긴 하지만 사람보다 작은 에뮤의 머리와 빠르게 뛰는 다리를 멀리서 저격하는 것도 아니고 기관총으로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기관총 소리에 놀라 떼를 지어 도주하는 일이 빈번해 기관총의 장점인 연사력을 제대로 살리기 어려웠다. 계속 고전하자 호주군은 방법을 바꾸어 트럭에 루이스 경기관총을 설치한 테크니컬을 만들어 기동사격으로 에뮤들을 섬멸하기로 했다. 당시 기준으로 볼 때 강력한 무기였던 루이스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기갑장비를 대동한 호주군이 에뮤 군단을 상대로 처음에는 무리 없이 진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전쟁은 항상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변수가 다양하게 존재하기 마련이다. 루이스 경기관총을 설치한 트럭은 출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용맹한 에뮤 한 마리가 화가 나서 육탄으로 돌격하는 바람에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또한 일반 트럭은 군용차량과 달리 험지 주행이 쉽지 않아 길이 없는 곳으로 다니기 힘들고, 결국 길이 없는 곳으로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에뮤를 포위하기에는 어려웠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에뮤 군단은 게릴라 작전까지 펼치면서 호주군을 농락하기 시작했다. 에뮤 군단이 소규모로 갈라져 곳곳의 농작물을 먹어 치우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무리 중 가장 키가 큰 에뮤가 지휘관 역할을 하여 호주군을 감시하여 무리에게 신호를 주어 흩어지게 했고 에뮤 한 무리가 인간에게 공격을 받으면 다른 무리가 다른 곳의 열린 밀밭을 유린하여 농작물을 뜯어 먹었다. 이와 같은 과정이 계속 반복되자 호주군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타 동물보다 못하다 여겼던 에뮤의 지능이 생각보다 높았던 것이다.
호주군은 지원받은 탄약 1만 발을 거의 다 사용했다. 그러나 2만 마리의 에뮤 군단에 비해 몇 백 마리 정도밖에 못 잡았고 공식집계로는 12마리 밖에 잡지 못하는 대참패를 기록했다. 게다가 당시 동물권 단체 또한 이 전쟁에 대해 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펼치며 전국 도시 곳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결국 11월 8일 의회가 전쟁의 지속에 대해 난색을 표하게 되었으며 다음날인 11월 9일 특수군사작전 종료일에 맞춰 사실상의 항복을 선언하며 전쟁이 종료되었다. 당시 군 지휘관의 인터뷰에 의하면 적의 전차보다도 상대하기 훨씬 힘든 적이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사실 이 군사작전은 트럭 1대에 기관총 2정만을 갖춘 1개 분대의 병사 만이 동원된 그저 가벼운 동물 소탕전에 불과했다. 그것도 대부분의 병사들은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무기를 손질하고 에뮤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역할을 했었다. 이는 전쟁이 거의 없는 호주라는 나라 특성상 야생 동물 잡겠다고 1만 명 단위의 병력을 투입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소규모만 보낸 것이 패착이었다.
더구나 군사작전의 목적 또한 에뮤를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농경지에서 몰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인간과 다른 병법을 사용하는 에뮤들의 움직임은 역대 인류 역사상, 군사학으로 분석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따라서 어디로 도주할지 모르는 에뮤들을 확실하게 도주경로들을 파악해야 했는데 그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만 엄연히 군대에 기관총까지 투입하고도 적군이 아닌 야생동물 무리를 몰아내지 못했다는 것이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불어 워낙 에뮤들이 잘 도주하고 들이 받을 때는 전 속력으로 달려와 특럭과 기관정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이는 매우 어려운 군사작전인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호주군이 윤리나 자연과의 공존, 비용 등등의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사단급 병력을 투입해 전쟁을 치렀다면 에뮤들을 몰살시켰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전쟁 이후 농부들은 아예 에뮤에 대비하기 위해 울타리를 거금을 들여 설치하는 등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에뮤는 그와 같은 인간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뭄이 들 때마다 울타리를 넘어와 꾸준히 농작물을 초토화시켰다.
이에 호주군도 그때마다 불려나와 에뮤 무리와 전투 및 추적을 반복했는데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에뮤 전쟁 이후로 호주 정부는 농부들에게 에뮤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직접 에뮤 소탕에 필요한 탄환을 지급했다. 그리하여 공식적으로 57,000마리 이상의 에뮤를 소탕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부가 현상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1935년에서 1960년까지 사냥당한 에뮤 개체수는 284,000마리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이후, 현재는 야생 에뮤들이 동물 보호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며 인간과 잘 지내고 있는 편이다. 타조와 닮은 독특한 외형 때문에 관광 자원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있어 우선 관리와 공존에 성공한 편에 속한다. 그리고 진짜 전쟁은 토끼들과의 전쟁이 최악의 작전으로 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