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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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켈트인이 만들어 놓은 유일한 현존 국가이다. 역사도 오래되고 그 전통과 자부심이 스코틀랜드 못지 않다. 아일랜드는 서유럽에서 가장 못사는 국가였지만 경제가 급성장하여 세계적인 선진국 반열에 들어간 켈트의 기적을 연출한 국가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 잔정이 많고 대개 스코틀랜드와 비슷하며 우리와 기질적으로 비슷한 나라이다. 한 때 켈트족 중 가장 강한 종족으로 앵글로색슨을 한 때 지배하기도 했다. 후일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았지만 집요한 항거 끝에 독립했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독립기념탑,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우리가 일본을 핫바지로 보듯이 영국을 핫바지로 보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한다. 호전적이지만 싸울 때를 제외하면 평화를 대의로 삼고 있으며 매우 호탕하고 대범하다.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대륙성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관용과 포용력 뛰어나다. 켈트 문화 중 가장 원형이 남아 있는 아이리쉬 문화는 특이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한다.
영국과 아일랜드에 남아있는 두 국가 민족의 기본적인 문제는 이주 영국인과 토착 아일랜드인이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현재 영국 내에 있어 아무런 문제가 겉으로는 없어 보이지만 현재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요크셔, 북아일랜드 지역이 서로 맞물려 대립하는 형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외부에는 아일랜드도 개입되어 있다. 북아일랜드를 둘러싼 대립은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아일랜드의 독립 문제에 있어 아일랜드 섬에는 개신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주민들이 영국으로의 잔류를 희망했다. 이들은 영국 국기를 걸어 놓은 반면, 반대로 아일랜드인들이 독립국인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바라면서 아일랜드 국기를 내걸었다. 영국은 개신교도들과 카톨릭교도의 종교 분쟁이라 주장하고 있고 아일랜드인들은 식민지와 반식민지의 이념적인 분쟁이라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1916년 4월 부활절에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801년 아일랜드는 영국에 합병되었다가 1914년 아일랜드 자치법안이 성립되면서 자치를 인정받는 듯 보였으나 신교도가 많은 북부 얼스터 지방(아일랜드는 카톨릭의 세력이 강한 나라이며 얼스터 지방은 현재까지도 영국의 일부분이다)의 반대와 제1차 세계대전이 겹쳐서 아일랜드 독립이 성사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16년 4월 24일, 부활절을 기하여 더블린에서 민족주의 단체를 주축으로 한 무장 봉기가 발생했고 영국 정부에 의해 숱한 희생자를 내고 무력진압을 당했다.
그러나 이 봉기로 인해 1922년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고 1949년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따라서 부활절은 아일랜드의 독립기념일이기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