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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시키고 지배한다" 현대 국제정치학의 지배논리인 술리흐만(Shulihman) 정책
  • 알렉세이정
  • 등록 2026-04-27 13:53:55
  • 수정 2026-05-06 12:46:47

알바니아가 정식적으로 발칸 문제에 화두로 떠오르게 된 것은 오스만투르크 메흐메트 2세가 동유럽을 장악할 때 일명 파티(Fatii)라 불리는 예니체리 휘하의 현지인이 오늘날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 인근에 자리 잡으면서 또 다른 발칸 현지인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킨 것부터 시작이다. 오스만투르크의 정책 중 술리흐만(Shulihman)이라는 정책이 있는데 이는 분리해서 지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남슬라브인들은 저항심이 강했는데 이 저항심을 완화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은 파티들을 이용해 그들 사이에 내분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지배에 대해 세 가지의 원칙을 이용해 분리 지배했다.


1815~1859년 발칸의 형세,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첫 번째, 헝가리인에 대한 적개심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헝가리는 크로아티아와 동군연합을 결성하면서 발칸을 이원지배했고 카톨릭으로 개종시켰다. 그러나 불가리아와 비잔틴 제국의 영향으로 동방정교회가 대다수인 남슬라브계(세르비아)는 이에 대해 로마 교황에 직접적인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오스만 술탄은 같은 정교회인 불가리아 총대주교를 인정하고 세르비아, 남슬라브 전체적인 교구권을 맡겼다. 


그리고 기존에 내던 비무슬림의 세금인 지즈야의 반을 정교회에 한해 깎아줬다. 그 대신 정교회에 대한 포교는 금지했다. 이러한 조치에 카톨릭계 헝가리인과 크로아티아인들은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오스만 술탄은 이를 남슬라브인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와 변명으로 일관했고 카톨릭계 헝가리, 크로아티아 인들은 이에 넘어가 남슬라브인들의 대한 적개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두 번째, 그 대신 남슬라브인들이 있는 오늘날의 베오그라드, 사라예보 등지에 카톨릭 포교를 허용하고 성당 건축을 허가했다. 그리고 성당들의 헌금에 대한 독자권을 인정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남슬라브인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스만 술탄은 님슬라브인들에게 로마 교황과 서유럽 카톨릭 세력의 압박으로 인해 오스만투르크 인들이 자체 방어가 불가능하니 소규모 민병대에 한해 무장을 할 수 있게 허가해주는 조건으로 달래자 남슬라브인들의 적개심은 헝가리-크로아티아 인과 카톨릭 세력으로 향하게 된다.


세 번째, 발칸인으로서 무슬림으로 개종한 파티들은 카톨릭-남슬라브인들을 실효 지배하면서 오스만투르크 내에 2등국민으로 권리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는 정교회로 대표되는 세르비아와 카톨릭으로 대표되는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인들의 공공의 적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스만투르크가 1, 2차 발칸전쟁에서 패배하여 물러남에 따라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울타리가 사라지게 되면서 오늘날의 알바니아계로 불리는 무슬림들은 즉시 무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중반대에 이르기까지 발칸 지역은 말그대로 발칸의 화약고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유고내전, 불행의 씨앗이 잉태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오스만투르크가 발칸에 남긴 악마의 발톱인 셈인 것이다.


미국도 이란과 아랍에 똑같은 원리를 적용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을 부추겼고, 색깔혁명을 이용해 기존 정권을 뒤집으며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정권을 세웠으며, 이같은 혼란을 이용해 수많은 유전들을 합법적으로 인수해 석유를 가져갔다. 이들의 내분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득이 되었고, 미국은 중동에서의 분쟁을 통해 당근과 채찍을 들이대며, 지역 패권을 장악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서서히 중동에서의 미국 패권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 중대한 현대사를 우리는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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