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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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켄트에서 주로 장사하는 분들은 타직인들이 많다. 타직인들은 초로수에서 투르크계 상인들의 텃새에 밀려 많은 천대를 받고 있는데 여기까지 밀려나와 장사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한편으로는 짠하다. 보통 고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기마 유목민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것을 타지크인의 기원으로 본다. 본래 중앙아시아 일대는 이들의 일파인 스키타이계 및 토하라계 기마 유목민의 영역이었으나 흉노의 발흥 이후 투르크계 민족이 서쪽으로 꾸준히 영역을 확장하면서 스텝 지역에 살던 스키타이 계통의 유목민들은 상당수가 투르크족에 동화되었다.
타지키스탄 후잔트 노천시장의 타직인들,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이 때 타지크인들의 기원이 닿는 스키타이계의 소그드인 또한 동화되었는데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거주한 인도유럽어족 후손들은 투르크족에 동화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고 중앙아시아에서 이렇게 투르크화를 피한 스키타이계 집단은 주로 '타지크'라고 불렸다. 이후 페르시아계 사만 가문이 이 지역에 사만 왕조를 세웠고 이를 계기로 이슬람화된 페르시아 문화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타지키스탄과 타지크인들은 사만 왕조를 중요시 여긴다. 훗날 투르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일대의 투르크계 민족들에게도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타지크족은 언어에서는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종교적인 부분에서는 파슈툰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유전적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의 누리스탄 지역 주민이나 파키스탄의 칼라쉬족과 연관성이 깊다. 17세기까지의 페르가나에는 호자 가문의 정권이 분립되어 있었는데, 1709~1710년 우즈베크 족의 수장이 동부 우즈베키스탄을 평정하여 코칸트 한국을 세웠다. 그리고 그 후계자들에 의하여 페르가나 전역이 통일되었다. 이 호자 가문이 잘 나갈 때 1730년경 타슈켄트에 모스크를 세웠고, 타직인들 또한 수없이 이슬람으로 개종을 선택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들어 내란이 자주 발생하고 부하라 한국이 자주 침략했다. 코칸트 한국은 제정 러시아의 침입으로 급격히 쇠퇴했다. 1875년 코칸트 한국 내부에서 발생한 반란을 구실로 출병한 제정 러시아의 투르키스탄 총독 카프만 휘하의 군대에 의해 수도 코칸트가 함락되면서 멸망하였다. 그 후 우즈베키스탄 동부는 1900년 러시아에 완전히 병합되었으며 수많은 타직인들은 러시아의 시민이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 제국은 동쪽으로 준가르를 멸망시켜 신장 위구르 자치구(동투르키스탄)를 가지게 된 청나라와 인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으로 사방에 흩어지게 된 타직인들이 청나라의 서쪽 변방을 약탈하고 청나라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가는 경우가 잦았다.
이 포로들은 오늘날 중앙아시아의 중국계 소수민족인 둔간족의 조상이라 볼 수 있다. 1830년에는 러시아가 카슈가르를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1832년 청나라와 화의를 맺었는데, 그 내용으로 볼 때 카슈가르의 관세 징수권, 코간트의 면세권, 치외행정권과 치외법권을 수행할 관리등의 파견을 담았다. 사실상 인구 300만의 소국이 청나라와 카쉬가르 권역의 이중지배를 인정받은 것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내분과 주변 국가들과의 압박으로 세력이 약해졌고, 1864년 러시아 제국이 군사를 이끌고 진출하면서 더욱 쇠약해지다가 1876년 러시아 제국에 의해 보호 조약으로 속국이 되었으며 타직인들은 러시아 제국으로 인해 디아스포라를 겪으며 유랑해야 했다. 소련 시절에도 소련의 공화국 중 타직인들의 가장 출산율이 높았고 현재도 소련에서 독립한 공화국 중 가장 출산율이 높아 타직인들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를 비난하기 위해서 사실을 좀 더 부풀려서 과장하여 언급하는 러소포비아 찌들린 자가 있다. 2024년 러시아 모스크바 크로쿠스 홀 테러 사건 용의자 4명이 타직인들인데 이들 타직인들이 러시아 내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대개 러소포비아를 가진 자들이다. 러시아 현지에서 타직인들은 3D업종에서 주로 일을 하고 있다. 대개 학력이 낮고 러시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화이트컬러와 거리가 먼 블루컬러의 일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대우를 못받는게 아니라 일을 잘하기 때문에 타지키스탄 고국에서 받는 급여보다 더 많이 받는다. 그리고 이는 타지키스탄의 국가적 외화벌이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타지키스탄을 아무리 몰라도 그렇지, 이제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발언을 한다. 타지키스탄의 1인당 GDP는 1,000불이 안 되는 국가고 별다른 자원이 없다. 다만 수자원이 풍부해 중앙아시아 각국에 물 수출을 하고 있으며 국가경제의 30%는 러시아에서 벌어온 노동자들의 외화벌이 세금에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타지키스탄에서 당장 뭘 하려 해도 할 수도 없기에 러시아에서 돈을 벌러 오는데 이들의 학력이 대체로 낮고 할 수 있는 일이 러시아 내에서 찾기 힘들다. 이는 모스크바 호텔에서 하우스키핑을 하고 있는 타직인들과 조금만 대화해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그자는 이를 차별이라 규정한다.
타직에서 학력도 낮고 전문직 종사 인력도 아닌데 그럼 러시아에서 전문직급 일을 해야 하나? 그리고 타직인들의 월급 수준은 한화로 약 20~25만원 정도 수준이고 러시아에서 잘 벌어봐야 50~60만원 사이다. 그런 자들에다 이슬람 원리주의자, 그리고 돈 3,000불 이상을 주겠다고 누군가가 꾀어내면 안 넘어갈 타직인 아무도 없다. 즉, 타직인들의 가정 형편으로 볼 때, 3,000불이면 파미르 지역에 사는 타직인 경제 수준으로는 8개월~1년을 먹고 살 수 있고 단기적으로는 수도인 두샨베에서 집 한 채 살 수 있다. 필자는 2024년 여름에도 타직에 있었고 그들의 실상을 낱낱이 봐왔다. 그런데 러소포비아 찌들어 한국에만 머물던 자들은 타직을 가본 적이나 있을까?